[엑스포츠뉴스=조용운 기자] "지난주부턴 이상하게 날짜를 세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이제 두 번의 훈련과 한 번의 경기만 남았습니다."
이영표(36·밴쿠버 화이트캡스)가 숨 가쁘게 달려온 14년을 마무리하는 소감을 입에 담았다. 남들이 가기 꺼리던 길을 앞서 행하며 후회 없이 움직였던 철인도 끝맺음 앞에서는 시원섭섭함이 교차했다.
초롱이에서 철인으로 진화한 이영표가 현역 선수로 마지막 1경기만 남겨두고 있다. 오는 28일 홈구장에서 열리는 콜로라도 라피즈전은 올 시즌 밴쿠버의 최종전이자 이영표의 축구인생을 끝내는 경기다. "1년 더 현역 연장을 하고 은퇴를 하겠다"던 지난해 연말 선언한 대로 이영표가 은퇴를 선언했다.
이영표 이름 3글자에 든든했던 지난 14년이었다. 2000년 안양 치타스를 통해 프로에 등장한 이영표가 다양한 포지션을 경험한 뒤 왼쪽을 주된 영역으로 삼기 시작하면서 한국축구는 걱정없는 시간을 보냈다. 워낙 특출난 재능에 노력까지 겸비한 존재 덕에 감독들도 고민 없이 이영표의 이름을 가장 먼저 적었다. 때에 따라 왼쪽과 오른쪽을 번갈아 이영표에게 맡길 만큼 존재감은 상당했다.
그래서 생긴 논란도 있다. 왼발잡이 왼쪽 풀백의 중요성이 커지던 2000년대 중반 이영표에게 변화의 압박이 가해졌다. 김동진 등 후배들의 무서운 도전이 있기도 했다. 하지만 이영표는 토트넘 훗스퍼와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등을 거치면서 익힌 노련함으로 오른발잡이가 왼쪽에서 사는 법을 몸소 보여줬다. 이후에는 누구도 이영표의 주발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 현 대표팀의 왼쪽 풀백 김진수(니가타 알비렉스)와 윤석영(퀸즈파크 레인저스), 박주호(마인츠) 등 왼발잡이 수비수가 당연히 자리를 잡는 것과 비교하면 얼마나 어려웠던 일인지 짐작할 수 있다.
14년의 프로생활 동안 이영표가 가장 앞선에 나선 적은 별로 없다. 동시대 박지성(PSV 아인트호벤)에 가려진 감도 있지만 상대적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덜 받는 수비수의 포지션도 한 몫했다. 그랬기에 그가 간 길이 최초였던 적은 없다.
개척자의 역할을 다른 이에게 넘긴 이영표는 대신 개발자 역할을 자처했다. 이영표가 간 길은 항상 멈춰있거나 척박한 상태였다. 그의 전진이 있어야만 길이 만들어졌다. 수비수로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서 살아남은 효과는 이후 한국인 프리미어리거의 다수 배출을 낳았고 도르트문트 이적은 한동안 끊겼던 한국인 분데스리거의 가치를 상징했다. 이후 무대를 아시아와 미국 등 변방으로 옮겼지만 이영표의 상징적인 움직임은 계속됐다.
멈출 것 같지 않던 이영표의 뜀박질이 이제 멈춘다. 이미 알고 있었음에도 10개월 넘게 잘 뛰는 모습만 봐왔던 터라 믿기지 않음이 앞선다. 영웅의 끝맺음이 한국무대가 아닌 것을 아쉬워하며 28일 지구 반대편에서 보여줄 이영표의 마지막 길에 박수를 보낼 뿐이다.
조용운 기자 puyol@xportsnews.com
[사진=이영표 ⓒ Gettyimages/멀티비츠]
조용운 기자 puyol@xport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