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조용운 기자] 홈팀의 텃세로 치부하기엔 대회 운영이 너무 형편없다. 어린 아이들이 뛰어 노는 장소를 국가대표팀의 훈련장으로 제공하는 아랍에미리트연합(UAE)의 막가파식 운영에 한국 남자배구 대표팀이 혀를 내둘렀다.
박기원 감독이 이끄는 대표팀은 지난 27일 아시아남자배구선수권대회가 열리는 UAE 두바이에 입성했다. 첫날부터 잡음이 끊이지 않고 발생한 통에 박 감독은 "내가 그동안 수많은 국제대회를 치러봤지만 대회 운영이 이렇게 엉망인 경우는 처음이다"고 격앙된 모습을 보였다.
UAE 조직위원회가 제공한 훈련장과 훈련 시간이 말썽이다. 대표팀은 훈련장까지 이동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얘기를 듣고 오후 3시에 집합을 마쳤지만 조직위의 한국 담당자가 20분이 지나도록 나타나지 않았다. 뒤늦게 나타난 담당자의 말이 가관이었다. 시간이 정해져 있는데 이렇게 늦게 오면 어떡하냐는 대표팀의 물음에 담당자는 "No Problem(문제없다)"이라는 말 한마디로 상황을 정리했다. 미안해하는 기색도 없었다.
대표팀의 이동을 위해 담당자가 몰고 온 차도 엉망이었다. 24인승 소형 버스가 대표팀을 기다리고 있었다. 한국 선수단은 총 20명이다. 대표팀 12명의 평균 신장은 191.75㎝이고 코칭스태프 역시 모두 장신이다. 좁디 좁은 버스 안에 빽빽하게 끼어 앉은 선수단은 다리 한 번 펴지 못한 채 그대로 40분을 이동했다. 짐칸이 협소해 아이스박스와 대형 캐리어는 버스 통로에 쌓았다.
노진수 코치는 "장시간 버스를 타는 것 자체만으로도 선수들은 컨디션에 좋지 않은 영향을 받는다"며 "버스가 좁아 다리까지 구부리고 이동하고 있다. 이럴 경우 훈련 과정에서 부상이 발생할 수도 있다"며 우려를 나타냈다.
더 큰 문제는 연습장이었다. 문을 열고 코트에 들어선 선수단은 눈을 의심했다. 대표팀이 연습할 코트 바로 옆에 인근 지역 학생들이 아무런 제재 없이 체육활동을 하고 있었다. 코트 가운데 쳐진 장막이 경계선 역할을 했다. 국가대표 선수들이 훈련하는 코트 위에 맨발의 아이들이 소리를 지르며 뛰어다녔다. 텃새를 떠나 대회 운영을 위한 기본조차 되어 있지 않은 모양새였다.
이해할 수 없는 조직위의 행정은 계속됐다. 이번 대회 훈련 일정을 임의로 정한 조직위는 대표팀 훈련 시간을 오전 8시로 배정했다. 이동시간까지 감안하면 대표팀은 이른 아침부터 움직여야 한다. 컨디션을 최우선으로 삼아야 하는 상황에서 잠도 충분히 못 자고 아침식사까지 걸러야 하는 스케줄은 이해가 가지 않는 상황이었다.
코칭스태프는 일정 변경을 요구했다. "이미 24개팀의 일정이 모두 짜여 졌기 때문에 일정을 바꾸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손사래를 치던 담당자는 박 감독까지 나서 강하게 항의를 하자 조직위에 문의해보겠다며 한 발 물러섰다.
결국 27일 두 차례나 시간을 재조정하는 해프닝 끝에 대표팀은 오후 2시에 훈련을 하게 됐다. 시간은 바꿨지만 대표팀은 손해를 감수해야 했다. 이날은 대회 기간 중 유일하게 메인 경기장에서 훈련할 수 있는 기회였지만 정상적인 훈련을 위해 메인 경기장이 아닌 인근 보조경기장으로 연습 장소를 옮겼다.
박 감독은 "그동안 수많은 국제대회에 참가해봤지만 운영이 이 정도로 엉망인 경우는 정말 처음이다"며 "본 대회가 시작도 하기 전에 이렇게 많은 문제가 발생해 걱정이 많다. 선수들이 어수선한 주변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도록 더욱 신경을 쓰겠다"고 말했다.
조용운 기자 puyol@xportsnews.com
[사진=대표팀 훈련 스케줄 ⓒ 대한배구협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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