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신명철 칼럼니스트] 메이저리그에서 한국인 신인왕이 나올 수 있을까.
단순 비교를 해 보자. 1992년 바르셀로나 대회부터 2008년 베이징 대회까지 5차례 열린 올림픽 야구 종목에서 한국은 금메달 1개와 동메달 1개로 쿠바(금 3 은 2), 미국(금 1 동 2)에 이어 3위에 올라 있다. 일본은 은메달 1개, 동메달 2개로 4위다. 1938년 영국 대회부터 2011년 파나마 대회까지 39차례 열린 야구 월드컵(옛 세계야구선수권대회)에서 한국은 금메달 1개와 은메달 5개, 동메달 2개로 쿠바(금 25 은 4 동 2), 미국(금 4 은 7 동 4), 베네수엘라(금 3 은 2 동 4), 콜롬비아(금 2 은 2 동 2)에 이어 5위를 달리고 있다. 일본은 은메달 1개와 동메달 5개로 메달을 차지한 15개 나라 가운데 12위에 그치고 있다.
일본은 도쿄에서 열린 1980년 대회에서 3위(한국 2위), 서울에서 벌어진 1982년 대회에서 2위(한국 1위)를 하는 등 세계선수권대회에서 계속 한국에 밀렸다. 일본은 이 대회에 프로 선수들이 출전하지는 않았다.
2006년 첫 대회 이후 3차례 열린 월드베이스볼클래식에서는 일본이 한국에 앞선다. 금메달 2개와 동메달 1개로 도미니카공화국(금 1)과 한국(은 1 동 1)을 제치고 1위에 올라 있다. 그러나 같은 조에서 1, 2위를 한 나라가 준결승을 치르는 등 희한한 대회 방식에 힘입은 바 큰 결과다. 제1회 대회의 경우 한국은 1라운드에서 3-2, 2라운드에서 2-1로 일본을 연파했으나 같은 조의 일본과 치른 준결승에서 0-6으로 져 결승에 오르지 못했다. 일본은 결승에서 쿠바를 10-6으로 꺾고 초대 우승국이 됐다.
제2회 대회에서 한국과 일본은 1라운드에서는 2-14와 1-0으로, 3라운드에서는 4-1과 2-6으로 각각 승패를 나눠 가졌다. 이 대회에서도 한국과 일본은 2라운드에서 조 2위와 1위였지만 바뀐 대회 방식에 따라 건너 편 조의 1위 베네수엘라, 2위 미국과 준결승을 치러 각각 10-2, 9-4로 이겨 결승에서 맞붙었다. 일본은 연장 접전 끝에 한국을 5-3으로 누르고 2연속 우승했다.
한국은 메달 집계에서는 일본에 뒤지지만 2013년 제3회 대회까지 포함한 종합 승패에서는 14승5패(승률 .737)로 일본(17승7패 .708)을 누르고 2위에 올라 있다. 그만큼 잘 싸웠다는 얘기다. 베네수엘라가 1위(14승4패 .778), 쿠바가 4위(l3승7패 .650)다.
주요 국제 대회 성적을 살펴보면 한국(그동안 1905년으로 알려져 있었으나 여러 자료를 재확인한 결과 1904년인 것으로 최근 확인됐다)보다 훨씬 앞선 1872년 야구를 도입했고 한국보다 50여년 먼저 프로 야구를 출범한 일본이 오히려 한국에 뒤지고 있다.
그런데 세계 야구의 최고봉이라고 할 수 있는 메이저리그에서 한국은 아직까지 신인왕을 배출하지 못하고 있다. ‘100승 투수’는 있는데. 1960년대 말 이원국, 1980년대 초 박철순이 마이너리그에서 땀을 흘리며 가꿔 놓은 기반 위에 1990년대 중반 드디어 한국인 첫 메이저리거가 된 박찬호(로스앤젤레스 다저스)는 아시아 선수 최다인 124승을 기록했지만 풀 타임 메이저리거 첫해인 1996년 시즌 성적이 5승5패였기에 신인왕을 넘볼 수 없었다.
전해인 1995년 노모 히데오는 13승6패 평균자책점 2.54 탈삼진 236개로 일본인 선수로는 처음으로 메이저리그 신인왕이 됐다. 노모 히데오는 1989년 잠실 구장에서 열린 제15회 아시아야구선수권대회 한국과 경기에서 5-1 완투승을 거둬 일본이 한국, 대만과 공동 우승하는 데 기여하는 등 아마추어(신일본제철) 시절부터 국제 무대에 이름을 알렸다. 당시 잠실 구장 백스톱 뒤에는 요미우리 자이언츠를 비롯한 일본 12개 프로 구단 스카우트 관계자들이 진을 치고 노모 히데오를 들여다봤다. 노모 히데오는 이듬해 긴데쓰 버팔로스 유니폼을 입었다. 일본 리그에서 5시즌 동안 78승46패의 성적을 거둔 뒤 1994년 말 태평양을 건넌 노모 히데오는 미국 서부 지역의 명문 다저스에서 메이저리거 생활을 시작했다.
올 시즌 다저스에서 맹활약하고 있는 류현진은 노모 히데오와 비슷한 길을 걷고 있다. 21일 현재 12승4패 평균잭점 2.95 탈삼진 126개이니 평균자책점을 조금만 더 끌어내리고 탈삼진 개수를 늘리면 노모 히데오의 데뷔 시즌 성적과 거의 비슷한 수준이 될 수 있다. 다저스의 남은 경기 일정으로 볼 때 7차례 정도 등판 기회가 있을 것으로 보여 실현 가능성이 꽤 있다.
한국인 첫 메이저리그 신인왕이 되려면 류현진은 셸비 밀러(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11승8패 평균자책점 2.98), 호세 페르난데스 (마이애미 말린스, 9승5패 평균자책점 2.41) 등 투수들과는 물론 팀 동료 야시엘 푸이그(타율 .351 11홈런 27타점)와도 겨뤄야 한다. 어쩌면 야시엘 푸이그가 올 시즌 내셔널리그 신인왕 경쟁에 큰 변수가 될지도 모른다.
개인 타이틀을 놓고 팀 내 경쟁이 벌어지면 어떤 결과가 나오게 되는지 글쓴이로서는 잊을 없는 기억이 있다. 프로 야구 출범 4번째 시즌이 열린 1985년 삼성 라이온즈는 전기 리그 1위를 차지한데 이어 여세를 몰아 후기 리그에서도 정상에 오르며 한국시리즈를 아예 없애고 우승했다. 삼성 라이온즈 김영덕 감독은 전해 롯데에 3승4패로 밀리며 한국시리즈 정상에 오르지 못했던 일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는지 후기 리그 중반 피치를 올리며 한국 프로 야구 사상 유일하게 한국시리즈가 열리지 않은 시즌을 만들어 버렸다.
그해 10월 8일 오전 서울 역삼동 동일빌딩 7층 한국야구위원회에서는 시즌 최우수선수(MVP)와 신인왕을 뽑는 기자단 투표가 있었다. 같은 시각 대구 시내 제일모직 공장 수위실 뒤편에 붙어 있는 삼성 구단 사무실에서는 구단 관계자들이 서울에서 진행되는 투표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다. 당시에는 구단 사무국 규모가 그리 크지 않아서 삼성 구단 대구 사무소는 제일모직 공장 입구에 있는 수위실에서 더부살이를 하고 있었다.
낮 12시가 얼마 남지 않은 시각, 뜻밖의 소식이 서울에서 들려왔다. 전, 후기 리그 통합 우승의 주역인 장효조와 김시진, 이만수 가운데 하나가 아닌 해태 타이거즈 김성한이 시즌 MVP가 됐다는 것이었다. 유력한 시즌 MVP 후보였던 장효조는 슬그머니 구단 사무실에서 빠져 나와 수위실에서 공장 쪽으로 향해 양쪽으로 길게 뻗어 있는 배수로에 걸터앉았다. 장효조의 얼굴에는 만감이 교차하는 듯한 표정이 얼핏 스쳐 지나갔지만 이내 담담한 얼굴을 되찾았다. 장효조가 시즌 MVP가 되면 현지에서 인터뷰를 하기 위해 대구로 달려온 글쓴이가 오히려 맥이 더 빠졌다. 장효조와 글쓴이는 잠시 말 없이 서로를 바라보다 씩 웃었다. 웃은 이유는 둘 모두 말하지 않았지만 서로 상대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는 듯했다.
그날 투표 방식은 기자단 13명이 각자 후보 3명을 적어 내는데 1위 10점, 2위 5점, 3위 2점의 점수를 매겼다. 그 결과 홈런 공동 1위, 타율 3위, 타점 2위인 김성한이 타율과 출루율 1위, 타점 3위인 장효조를 89점-66점으로 제치고 MVP가 됐다. 김일융과 함께 시즌 최다승(25)을 기록한 김시진은 52점을 얻었다.
1983년 해태 타이거즈가 우승할 때 이만수가 MVP가 된데 이어 프로 야구 4시즌 사이에 두 번이나 우승 구단이 아닌 구단에서 시즌 MVP가 나왔다. 전례도 있어 장효조의 시즌 MVP 탈락을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보는 팬들도 있었지만 상당수 팬은 장효조가 “상복이 없어도 정말 없다”며 안타까워했다. 야구 팬들이 그런 생각을 할 만했다.
2년 전인 1983년 신인왕 투표에서 장효조는 타율과 출루율 1위, 홈런과 타점 3위 등 뛰어난 성적을 올리고도 OB 베어스 박종훈에게 밀리는 불운을 겪었다. 이른바 ‘중고 신인’으로 참신성이 떨어진다는 이유에서였다. 굳이 따지자면 틀린 말은 아니었다. 장효조는 1982년 프로 야구가 출범하기 전 아마추어 실업 야구와 대학 야구, 고교 야구에서 최고의 타자로 맹활약했기 때문이다. 1982년 서울 세계야구선수권대회에 출전하기 위해 1년 늦게 프로 유니폼을 입었지만 장효조는 그러나 엄연한 신인이었다. 아마추어→프로, 프로→프로로 사례는 다르지만 노모 히데오도 신인이었고 류현진도 신인이다.
신명철 칼럼니스트 sports@xportsnews.com
[사진=류현진 ⓒ 게티이미지 코리아]
김덕중 기자 djkim@xport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