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신명철 칼럼니스트] 한국 스포츠 메카의 심장이 다시 뛰기 시작했다. 27일과 28일 잠실올림픽주경기장에서는 2013년 동아시아축구연맹(EAFF)선수권대회 남녀부 4경기가 열렸다. 1988년 서울 올림픽의 잔영이 남아 있는 그곳에서 오랜만에 스포츠 팬들의 함성이 울려 퍼졌다.
잠실(蠶室, 누에를 치는 방)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조선 시대 뽕나무가 우거져 있던 곳에 스포츠 시설이 들어서기 시작한 건 1970년대 후반의 일이다. 요즘은 프로 농구 서울 삼성이 홈 경기장으로 쓰고 있는 잠실체육관이 1979년 4월 문을 열었다. 선수들이 경기 전 몸을 풀 수 있는 보조 코트가 경기장 옆에 붙어 있는 건 당시로서는 놀라운 일이었다. 1963년 이후 개관 이후 오랫동안 실내 스포츠의 중심이었던 장충체육관에는 보조 코트가 없어 선수들이 체육관 복도에서 워밍업을 했다.
국제 대회를 치르는 데 전혀 문제가 없는 잠실체육관의 개관은 1980년대 서울 아시아경기대회와 서울 올림픽, 양대 스포츠 제전의 터전이 되는 ‘잠실 스포츠 콤플렉스’의 출발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그 무렵 서울시는 이제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 동대문운동장과 리모델리을 하고 있는 장충체육관 등 기존 시설로는 국내외 스포츠 수요에 대응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1976년 10월 잠실종합운동장 건설 기본 계획을 세웠다.
1970년 서울에서 제6회 아시아경기대회를 열려고 했을 때 육상 등 주경기장으로 활용할 계획이었던 동대문운동장에는 400m 트랙이 갖춰진 보조 경기장이 없을 정도로 우리나라의 스포츠 시설은 열악했다. 재정 문제로 대회를 반납해 방콕이 서울 대신 대회를 개최했지만 무리해서 서울에서 대회를 치렀더라도 문제투성이가 될 뻔했다.
서울시는 대한탁구협회가 건설할 계획이었던 1973년 사라예보 세계탁구선수권대회 여자 단체전 제패 기념관을 흡수해 이를 종합운동장 내 체육관으로 확장해 건설할 것을 결정하고 1976년 12월 착공했다. 1977년 11월에는 주경기장과 실내 수영장 건설에 착수했다.
체육관에 이어 실내수영장이 1980년 12월 완공됐다. 1981년 9월과 11월 각각 1988년 제24회 하계 올림픽과 1986년 제10회 하계 아시아경기대회의 서울 개최가 확정되면서 잠실종합운동장 건설 사업에 박차가 가해졌다. 1982년 6월 야구장이 준공됐고 주경기장은 1984년 9월 개장했다.
잠실체육관이 문을 연 뒤 첫 국제 대회로 제7회 세계여자농구선수권대회(한국 준우승)가 1979년 4월 29일부터 5월 13일까지 열렸고 이후 잠실벌에서는 수많은 국제 대회가 열렸다. 야구 팬들은 1982년 9월 14일 한대화의 극적인 3점 홈런으로 일본을 5-2로 꺾고 우승한 제27회 세계야구선수권대회를 기억할 것이고 축구 팬들은 1986년 10월 5일 사우디아라비아를 2-0(득점자 조광래 변병주)으로 누르고 아시아경기대회에서 처음으로 단독 우승한 짜릿한 순간이 아직도 머릿속에 남아 있을 터이다.
그러나 그 어떤 경기보다도 1988년 9월 17일 서울 올림픽 개막식은 이 시대를 사는 스포츠 애호가들에게 가슴 벅찬 기억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그날 글쓴이는 올림픽주경기장에 있지 않았다. 이제는 고층 건물이 들어선 코엑스에 마련된 메인프레스센터에 있는 스포츠서울 부스에 홀로 앉아 이제 막 보도 통제가 풀린 성화 점화자 관련 기사를 쓰고 있었다. 하루 전에 열린 최종 리허설에서 개막식 관련 내용은 이미 취재한 뒤였다. 그때 취재한 기사 한 꼭지를 소개한다.
이화여자대학교 무용과 2학년 최경은은 자신이 출연하는 서울 올림픽 개막식 식전 행사 프로그램 ‘태초의 빛’ 순서를 기다리며 마음속으로 수없이 되뇌었다. ‘잘하자, 잘하자.’ 그의 앞뒤에 있는 출연자들은 아예 소리 내 다짐하고 있었다. “잘해야 해, 잘해야 해.” 이화여자대학교 무용과 1~4학년 전원과 서울 시내 여러 고교에서 무용을 전공하는 여학생들 그리고 세종대학교 무용과 남학생 등 1300여 명의 출연자들은 저마다 기도하고 있었다. 잠시 뒤 잠실올림픽주경기장에는 이들이 그리는 ‘WELCOME’ ‘어서 오세요’ 글씨가 아로새겨졌고 공연 마지막에는 개막식 식전 행사에서 가장 많은 박수와 환성이 터진 선명한 빛깔의 서울 올림픽 엠블럼이 펼쳐졌다. 여름 방학 내내 효창운동장과 동대문운동장에서 땀 흘려 준비한 출연자들은 공연이 끝나고 서로를 격려했다. 감격에 겨워 눈물을 흘리는 출연자들도 있었다. 서울 올림픽은 이들과 같은 출연자와 2만7천여 명의 자원 봉사자들의 손에 의해 세계 스포츠사에 길이 남을 대회가 됐다.
그때 행사에 출연했던 학생들은 이제 마흔 줄에 접어들었을 터. 아무튼 서울시는 이번 대회를 준비하면서 잔디도 새로 깔고 조명 시설도 손을 보는 등 대대적으로 보수 공사를 했다고 한다. 그동안 잠실올림픽주경기장은 공연과 집회 등 원래 목적 외 용도로 많이 사용됐다. 한국 스포츠의 현주소이기도 했고 좁혀 보면 축구계가 풀지 못한 과제이기도 했다.
글쓴이는 1988년 서울 올림픽 직후 1972년 뮌헨 올림픽이 열린 우리나라의 잠실종합운동장 같은 곳을 둘러본 적이 있다. 수영장에서는 어린이부터 할머니까지 생활 체육 동호인들이 헤엄을 치고 있었다. 이웃한 8만 명 수용 규모의 주경기장인 올림픽슈타디온은 낮 시간이어서 비어 있었지만 뮌헨 올림픽 이후 서독 분데스리가 FC 바이에른 뮌헨이 홈 구장으로 쓰고 있었다. 1974년 서독 월드컵 서독-네덜란드의 결승전과 1988년 유럽축구선수권대회 네덜란드-소련의 결승전이 이곳에서 열렸다.
1990년대 들어 TSV 1860 뮌헨이 바이에른 뮌헨과 ‘한 지붕 두 가족’이 돼 2006년 독일 월드컵을 앞두고 지은 알리안츠 아레나로 옮기기 전까지 공동 홈 구장으로 사용했다. 두 구단이 떠난 뒤에도 이곳에서는 인공 눈을 이용한 스키 경기, 육상경기, 모터사이클 경기, 2012년 UEFA(유럽축구연맹) 여자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등 여러 종목의 대회가 열리고 있다.
물론 마이클 잭슨과 다이아나 로스, 본 조비, 마돈나, AC/DC, 셀렌 디온, 엘튼 존 등 세계적인 대중음악가들의 공연도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올해 상반기에도 몇 차례 공연이 성황리에 열렸다. 그러나 역시 주목해야 할 사실은 2005년까지 바이에른 뮌헨과 1860 뮌헨의 공동 홈 구장이었다는 점이다.
언제까지 A매치만 바라보고 있을 것인가. 인구 1천만 명의 거대 도시에 프로 축구 클럽이 달랑 하나 뿐이라는 사실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리그의 발전 없이 A대표팀의 경기력 향상을 기대하는 건 나무에 올라가서 물고기를 찾는 것과 같다.
신명철 칼럼니스트 sports@xportsnews.com
[사진=잠실올림픽주경기장 ⓒ 엑스포츠뉴스 김성진 기자]
김덕중 기자 djkim@xport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