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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수첩] 영등위, 김기덕 영화 '뫼비우스' 상영기회 박탈, 꼭 이래야만 하나

기사입력 2013.07.18 18:05 / 기사수정 2013.07.18 18:07

나유리 기자


[엑스포츠뉴스=나유리 기자] 김기덕 감독의 신작 '뫼비우스'가 두번째 '제한상영가' 등급 판정을 받으면서 논란의 중심에 섰다.

영화 '뫼비우스'는 배우 조재현과 서영주 주연으로 아버지의 외도로 파괴된 가정에서 성장한 남자가 속세를 떠나게 되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더욱이 전작 '피에타'로 지난해 베니스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김기덕 감독의 신작이어서 팬들의 기대를 모으고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그런데 지난 6월초 개봉을 준비 중이던 '뫼비우스'에 대해 영상물등급위원회(이하 영등위)는 '제한상영가' 등급을 매겼다. 이에 김기덕 감독은 "그동안 만들어온 18편의 영화 가치를 조금이라도 인정한다면 대한민국 성인들이 이 영화를 보고 판단할 수 있는 기회를 달라"며 재분류를 신청했다. 게다가 김 감독은 50초 분량에 달하는12컷을 삭제해서 재심의 용으로 제출했다.  

하지만 결과는 변하지 않았다. 영등위는 지난 16일 다시 한번 '뫼비우스'에 '제한상영가' 등급 꼬리표를 붙였다.

'뫼비우스'는 아직 공식적인 시사회를 열지 않았기 때문에 영화의 내용을 아는 사람은 영화사 관계자나 심의 위원들 정도지만, 알려진 바에 따르면 문제가 되는 장면은 어머니와 아들의 성관계 장면과 아버지가 자신의 성기를 자르는 장면 등이다.



텍스트 자체로만 받아들인다면 다소 충격적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김기덕 감독은 "사고로 성기를 상실한 이 세상 어딘가에 있을 소수의 마음을 영화로 절박하게 표현"했다면서  "'뫼비우스'가 그간 내가 만든 18편의 영화보다 얼마나 더 음란하고 타락했는지 묻고싶다"며 항변하고 있다.

다수의 영화팬들도 "김기덕 감독의 전작들도 그렇고, 박찬욱의 '올드보이' 같은 영화에서도 근친(상간)은 다뤄져 왔다. 그러나 근친은 '소재'일 뿐 '주제'가 아니었다. 그것은 우리가 판단할 몫이다"라며 영등위의 판단에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이에 대한 영등위의 공식적인 입장은 이렇다. "'뫼비우스'는 포르노 동영상의 노출과 구체적이고 길게 묘사된 모자(母子)간의 성관계 장면이 비윤리적이며, 인간의 존엄성을 해한다는 이유로 제한상영가로 등급 분류됐다. 팬들이 '올드보이'와 같은 사례를 언급하고 있지만 '뫼비우스'는 동일한 소재를 다뤘더라도 표현 강도나 기법이 다르다."

영등위 공식 홈페이지에 제시된 '뫼비우스'의 표현정도 분류 표에서도  '선정성' 부분이 가장 높게 나타나 있다. 



만약 김기덕 감독이 '제한상영가' 등급를 수용한다면 한국 관객들은 극장에서 '뫼비우스'를 볼 수 없게 된다. '제한상영가' 등급의 영화는 '청소년관람불가' 등급과 달리 전용 극장에서만 상영이 허가된다. 그러나 현재 한국에는 '제한상영가' 영화를 관람할 수 있는 극장은 한군데도 없다. 사실상 영등위가 '뫼비우스'에 대해 개봉불가 판정을 내린 것이나 다름 없는 것이다. 

이쯤되니 영등위가 초점을 '선정성'에만 맞춘 것은 아닌지 궁금해진다.

김기덕 감독의 말대로 그가 그동안 만든 18편에 이르는 작품들은 거의 매번 선정성 문제에 휘말렸다. 등장인물들은 대부분 매춘을 하거나, 매춘을 하게 되거나, 인신매매를 일삼거나, 강간과 폭력에 익숙한 이들이다. 그러나 김기덕 영화들이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명작'의 대열에 합류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영화에는 자극적인 소재에 매이지 않았을 때 비로소 보게되는 건강한 메시지가 담겨있기 때문이다.

물론 김기덕 영화가 불쾌하다든지, 불편하다고 말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한번은 봐도, 두번은 못보겠다"고 하는 이들도 있다. 매춘을 하는 여자의 모습이나 시체를 수거하러 다니는 남자의 모습을 화면에서 보기를 원치 않는 이들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혹자는 김기덕 영화가 사회적 약자, 특히 여성에게 폭력적인 시선을 갖고 있기 때문에 싫다고 잘라 말하지만, 사실 누구도 김기덕만큼 고통받는 약자들을 진솔하게 그려내지 못한다. 단지 진실을 있는 그대로 스크린 위에 펼쳐놨을때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받아들이느냐는 관객의 재량이다.



물론 영화는 표현 수위에 따라 연령대별로 구분해서 보여질 필요는 있다. 감수성이 채 여물지 않은 어린 아이나 청소년들에게 지나치게 자극적인 성적 묘사나 폭력 장면을 보여주는 것은 정서 발달상 좋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은 우리 사회가 합의한 부분이고, 영등위가 존재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번 영등위 결정에 대해 지지하는 의견이 있을 수 있다. 그런 이들은 근친상간이 등장하고 성기를 절단하는 영화가 어떻게 버젓이 극장에 걸리게 놔둘 수 있느냐고 목청을 높일 것이다. 하지만 그동안 나온 18편의 김기덕 영화가 영등위가 우려하듯이 '윤리적'으로 어떤 문제를 야기한 적이 있는가, 김기덕 영화들이 상영된 결과 '인간의 존엄성'이 더 훼손된 흔적이 있는가.

오히려 김기덕 영화들로 인해 '윤리적인 지평'이 더 넓어지고, 현실에서 인간의 존엄성이 얼마나 짓밟히고 있는가에 대한 반성을 촉발한 경우가 더 많았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세계 유수의 국제영화제에서 그를 상찬하고 그를 격려했겠는가.

이렇게 말하면, 외국의 평가나 시선에 휘둘리는 줏대없는 태도라거나, 서양숭배주의라고 몰아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오히려 김기덕 감독의 영화가 국적을 초월해 인간의 보편적 정서와 인간성에 호소하는 영화라고 보는 것이 온당하지 않을까. 자신의 취향에 맞지 않는다고, 장면들이 불쾌하고 불편하다고 김기덕 영화들이 전달하는 메시지를 외면하고 폄훼하려 드는 것이 되레 편파적이고 속좁은 행동이 아닐까.   




'뫼비우스' 개봉에 강한 의지를 갖고있는 김기덕 감독은 세번째 등급 심의를 준비하고 있다. 또 심의와 상관없이 "제한상영가 등급과 관련해 찬반시사회를 열겠다. 현장에서 바로 투표를 해 반대가 30%이상이면 개봉을 포기하겠다"고 밝혔다. 자신의 작품에 대한 자신감으로도 읽힌다. 

영등위는 공식 홈페이지에 '뫼비우스'의 등급과 관련해 문의글을 남기는 영화팬들에게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꾸준히 한국영화의 지평을 넓히고 계신 김기덕 감독님의 노고에 대해 우리 위원회에서도 존중하고 있음을 말씀드린다"고 덧붙였다.

꼭 여기서 김기덕 감독이 그동안 해외영화제에서 얼마나 대단한 상을 탔었는지, 한국 영화의 위상을 어느 정도 높였는지, 혹시 보수 색을 띄는 정권이 문화 예술 표현의 자유를 더 깐깐하게 심사하는 것은 아닌지 가타부타 하지는 않겠다.

그러나 영등위의 말이 진실이라면 "두번의 '제한상영가'로 피가 마르는 시간을 보내고 있고, 밤새 살을 자르듯 필름을 잘라 다시 재심의를 준비한다"는 김기덕 감독의 '노고'를 '존중'해야 한다.

영화의 작품성과 완성도에 대한 판단은 온전히 관객의 몫이다.

나유리 기자 NYR@xportsnews.com

[사진 = ⓒ 화인컷 제공, 엑스포츠뉴스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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