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조영준 기자] 조선시대 3대 요부로 알려진 장희빈이 지고지순한 '사랑비'로 환생해 시청자들의 마음 속을 적셨다.
SBS 드라마 '장옥정-사랑에 살다'는 지금까지 장희빈의 이미지를 뒤엎은 새로운 작품이었다. 25일 방영된 마지막 회를 끝으로 막을 내린 이 작품은 기존의 장희빈이란 인물을 새로운 캐릭터로 승화시키려고 노력했다.
최종회는 더욱 파격적이었다. 조선왕조실록에 의하면 장희빈은 자신에게 내리는 사약을 거부하려고 발버둥을 쳤다. 실록에는 장희빈이 병들어 죽어가는 인현왕후를 저주하기 위해 궁궐 안에 신당을 들여 굿을 했다고 전해진다.
'장옥정-사랑에 살다'는 이러한 역사적 기록을 허구적으로 바꾸었다. 궁궐 안에 신당을 들인 것은 인현왕후를 음해하기 위해서가 아닌, 자신의 아들이자 세자인 윤의 병을 고치기 위해서라는 허구를 도입했다. 그동안 '악녀'로만 알려진 장희빈은 시대가 흐르면서 새롭게 조명받기 시작했다. 당시 역사적인 기록이 승자인 서인들의 관점에서 기술됐기 때문에 정희빈에 대한 재 탐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역관의 종질녀로 태어나 숙종의 눈에 들어 중전까지 오른 그녀의 인생은 파란만장했다. 그러나 이러한 과정에서 숙종의 사랑을 독차지하려는 투기가 발생했고 여러 가지 악행을 저질렀다. 최고의 자리에 오른 뒤 진중하게 행동하지 못하고 지나치게 권력을 부려 민심을 잃은 것이 그녀의 실책이었다. 또한 정권을 탈환하기 위해 끈끈하게 연합한 서인들과는 달리 조정 일에 무능력한 모습을 보인 남인들도 책임을 피하기 어렵다.
이러한 일로 인해 패자가 된 장희빈은 사약을 마실 수밖에 없었다. 그녀가 남인들의 세력을 등에 업고 자신의 매력을 활용해 숙종의 마음을 얻은 것은 사실이다. 또한 숙종에 대한 소유욕 때문에 무수리 출신인 숙빈 최씨를 학대한 것도 역사적으로 기술되어 있다.
하지만 그동안 알려진 역사적인 사실을 떠나 장옥정이란 인물을 새로운 시각에서 보는 시도는 드물었다. '장옥정-사랑에 살다'가 방영되기 전, 가장 최근에 장희빈이 등장하는 드라마는 2010년에 방영된 MBC 드라마 '동이'다. 이 작품은 장희빈을 주인공으로 내세우지 않고 숙빈 최씨를 전면에 부각시킨 파격적인 설정을 시도했다.
'동이'에 등장한 장희빈(이소연 분)은 겉으로는 온화하지만 속으로는 표독스러움을 갖춘 인물로 그려졌다. 요부의 이미지를 어느 정도 털어내고 자신감 넘치고 당당한 인물로 그려졌지만 기존에 가졌던 표독스러움은 변함이 없었다.
'장옥정-사랑에 살다'의 장희빈(김태희 분)는 '동이'보다 한 걸음, 아니 두 세 걸음 더 나간 작품이다. 천민 출신은 그녀는 누구보다 욕심이 많고 이기적이지만 숙종에 대한 극진한 사랑 때문에 자신의 단점을 고치려고 노력한다. 기존에 장희빈이 가졌던 '집착'과 '소유욕'이 아닌 진실어린 마음 가짐으로 숙종을 사랑하는데 초점을 맞추었다.
조선시대 최고의 요부에서 '지고지순한 순정녀'로 변한 장옥정은 시청자들에게 신선하게 다가왔다. 지금까지와는 완전하게 다른 장옥정을 연기한 김태희도 연기 인생의 전환점을 그을 열연을 보여줬다. 결코 역대 최고의 장희빈으로 꼽기에는 무리가 있지만 '착한 옥정이'를 소화하는 데에는 나름 성공했다.
강단있는 숙종을 연기한 유아인도 인상적이었다. 여기에 지고만 살지 않는 인현왕후의 모습을 보여준 홍수현의 연기력도 빛을 발휘했다. 그러나 장희빈의 라이벌이자 중요한 캐릭터인 숙빈 최씨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많다.
'동이'에 출연한 한효주는 장희빈과 인현왕후에 그늘에 가린 숙빈 최씨를 맛깔스럽게 연기했다. 숙빈 최씨는 실록에 많이 등장하지는 않지만 조선 시대 4대 성군인 영조의 어머니로 장희빈과의 권력 다툼에서 승리를 거둔 자다. 숙빈 최씨가 주인공인 '동이'는 이 인물을 발랄하면서도 당찬 인물로 부각시켰다.
그러나 장희빈과 숙종의 애절한 사랑에 초점을 맞춘 '장옥정-사랑에 살다'에서 숙빈 최씨는 '악녀'로 그려졌다. 이 작품은 '악녀'인 장희빈을 너그러운 인물로 그렸고 지금까지 선한 이미지로 알려진 숙빈 최씨를 '요부'로 바꾸어 놓았다.
이러한 시도는 제법 참신했지만 숙빈 최씨를 연기한 한승연은 여러모로 이 인물을 제대로 살려내지 못했다. '장옥정-사랑에 살다'는 역대 가장 착한 장옥정과 최악의 숙빈 최씨가 공존하는 드라마다.
숙종과 장옥정의 애절한 마지막 순간이 그려진 마지막 장면은 시청자들을 눈물 짓게 만들었다. 그러나 숙종이 현치수에게 사약을 받는 장옥정을 몰래 데리고 도망치라는 설정은 너무나 현실성이 떨어진다.
'장옥정 사랑에 살다'는 이미숙, 정선경 그리고 김혜수가 출연한 '장희빈 작품'만큼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지 못했다. 하지만 '착한 옥정이'라는 설정은 나름 시청자들에게 어필하며 좋은 반응을 보였다.
조영준 기자 spacewalker@xportsnews.com
[사진 = 장옥정 사랑에 살다 SBS 방송장면 캡쳐, 스토리티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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