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조영준 기자] "지나온 길을 뒤돌아보면 기뻤던 적도 많지만 아쉬움도 많아요. 1년을 쉰 뒤 다시 복귀했을 때 저를 받아주신 인삼공사 팀이 너무나 고맙죠. 그렇게 해서 리그 우승도 경험했고 올림픽에도 출전할 수 있었으니까요. 특히 (한)송이와 함께 런던에 가게 됐으니 가문의 영광이죠.(웃음)"
배구공을 만진지 19년이 흘렀지만 자신의 꿈을 이루지 못했다. ‘왕년의 거포’ 한유미(30, 전 인삼공사)는 한국 여자배구를 대표하는 공격수로 성장했지만 쓰디쓴 경험도 체험했다. 특히 올림픽 무대에 서지 못한 점이 못내 아쉬웠다. 어린 시절에 찾아온 리그 우승도 잡을 수 있는 구름 조각과 같았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마법처럼 다가왔다. 올해 평생의 목표를 모두 이룬 그는 은퇴를 선언했다. 지난 9월 코트를 떠날 의사를 밝힌 그는 '제2의 인생'을 위해 새로운 바다로 노 젓기를 시작했다.
런던에서 체험한 뜨거운 여름, 평생 잊지 못할 추억
한국여자배구는 36년 만에 올림픽 4강 진출이라는 신화를 이룩했다. 그 현장에 동참한 한유미는 '평생 동안 잊지 못할 추억'이라고 정의했다. 비록 임효숙(30, 전 도로공사), 하준임(22, 도로공사)과 함께 벤치를 지켰지만 모든 열정을 내뱉으면서 주전 선수들을 응원했다.
"벤치와 선수 대기 존을 저희들은 '닭장'으로 불러요. 대표팀에 들어올 때 주전으로 뛰는 것보다 제게 주어진 역할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생각이 강했죠. 송이를 대신해 몇 번 경기에 출전한 기회는 있었지만 코트에 있는 선수들을 독려하는 시간이 많았습니다. 저보다 (임)효숙이가 더욱 열정적으로 응원을 했는데 나중에는 목이 쉴 정도였어요.(웃음)"
런던올림픽과 그랑프리 대회 그리고 아시아배구연맹(AVC)컵을 모두 소화한 그는 무려 반년동안 대표 동료들과 함께 지냈다. 예전부터 모두 알고 친하게 지냈던 사이였지만 특별한 경험을 공유하면서 더욱 끈끈한 사이로 발전했다.
"런던올림픽에서 좋은 성적을 올린 점도 좋았지만 중요한 것은 '누구와 어떤 과정을 보낸 것'이었어요. 오랜 시간동안 함께 있었고 슬픔과 기쁨을 함께하다보니 예전보다 더욱 끈끈한 사이가 된 것 같습니다. 올림픽에 출전한 12명의 선수들끼리 지킨 약속이 있어요. 바로 12명이 함께 연결돼있는 카카오톡은 절대 삭제하지 말자는 거였죠.(웃음)"
여자배구의 강호인 브라질과 이탈리아를 꺾고 4강에 오를 때 느낀 환희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었다. 당초의 목표를 초과달성했지만 눈앞에 다가온 메달을 놓친 점은 지금 생각해도 아쉬웠다.
"일본과의 동메달 결정전은 지금 생각해도 너무나 안타깝죠. 우선 우리는 예선 조에 강팀들만 모여 있다 보니 굉장히 어렵게 경기를 치러나갔어요. 일본은 그 반대였죠. 우리보다 훨씬 쉬운 조에서 경기를 치렀고 그들이 생각한 시나리오대로 된 것 같아요. 준비도 굉장히 철저하게 한 것 같았고… 일본배구의 치밀한 계획성은 인정해야할 부분인 것 같아요."
비록 메달을 목에 걸고 입국하지 못했지만 여자배구대표팀은 뜨거운 환영을 받았다. 주요 선수들은 각종 예능프로에 출연했고 대중들의 큰 사랑을 받았다.
"아주 유명한 예능 프로에 우리들이 출연할 예정이었는데 서로 시간이 맞지 않아 무산됐어요. 우리는 정말 그 프로에 출연하고 싶어했죠.(웃음) 저는 케이블 방송에 출연했는데 송이는 공중파에 나갔어요. 개그콘서트에 (김)연경이와 함께 출연했는데 그 이후로 송이를 알아보는 분들이 부쩍 늘었습니다.(웃음) 예능프로에 출연한 경험도 매우 재미있었는데 애들이 거침없이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웃음) 방송용이 아니라 평소 우리의 모습을 그래도 보여준 셈이죠."
지도자로 돌아오는 그 날까지
코트를 떠난 그는 현재 서울 강남의 한 어학학원에서 '열공' 중이다. 그동안 배우고 싶었던 영어공부에 흠뻑 빠져있는 그는 자신의 미래를 조금씩 설계해나가고 있다.
"앞으로의 목표는 지도자인데 배구에 대한 공부도 중요하지만 어학 공부도 정말 필요한 것 같아요. 국제 대회에 나가면 이러한 점을 절실히 느끼죠. 후배들에게도 어학 공부는 꼭 권유해주고 싶습니다. 또한 국제대회 출전도 반드시 해야한다고 말해주고 싶어요."
한유미는 "송이가 올림픽이란 큰 무대를 경험하면서 많이 성장했다”고 밝혔다. 그는 “국내 대회에만 안주하면 결코 기량이 발전하지 못한다"고 강조했다. 나보다 더 기량이 뛰어난 선수들과 함께 훈련을 하면 자극 효과를 얻을 수 있고 세계적인 선수들과 경기를 해봐야 '우물안 개구리'에서 벗어날 수 있다.
소속팀은 물론 대표팀에서도 제 역할을 다하려면 선수들의 꾸준한 관리와 노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체계적인 행정이 뒷받침돼야 선수들의 기량이 만개할 수 있다. 한유미는 "너무 힘든 일정 속에 선수들이 남몰래 우는 경우도 있다. 힘들게 운동을 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아무런 체계 없이 힘들게 하는 것과 철저한 시스템 속에서 힘들게 하는 것은 차이가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유미는 프로배구 2012~2013 개막일인 3일 은퇴식을 가진다. 같은 팀의 김세영(31, 전 인삼공사)과 함께 치르는 은퇴식은 인삼공사와 현대건설의 여자부 개막식에 앞서 열린다. 그는 "런던올림픽 4강 열기가 국내리그로 이어지길 기원한다"고 밝혔다.
"지난간 길을 뒤돌아보면 아쉬움이 많아요. '인생의 진리를 왜 이리 뒤늦게 알았나'하며 후회할 때가 있죠. 평소에 독서를 많이 하는데 좀더 일찍 깨달았으면 하는 점이 많습니다. 20년동안 운동을 했기 때문에 쉬는 시간은 극히 적었어요. 그 순간을 좀 더 유익하게 보냈으면 하는 후회감이 듭니다. 선수들이 한우말만 파지 말고 자아실현을 위한 시간도 가졌으면 합니다."
[사진 = 한유미, 한송이 (C) 엑스포츠뉴스DB]
조영준 기자 spacewalker@xport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