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조영준 기자] 런던올림픽에서 '4강 신화'를 만들어낸 한국여자배구대표팀이 아시아 6위에 머물렀다. 김연경(24, 페네르바체)을 비롯한 대표팀 주축선수들이 대거 빠진 여자대표팀은 지난 16일 카자흐스탄 알마티 발루안 숄라크 스포츠센터에서 열린 AVC컵 5~6위 결정전에서 일본에 0-3(18-25, 17-25, 11-25)으로 완패했다.
주력 선수들이 빠진 상태에서 열린 대회라 의미는 크지 않다. 하지만 런던올림픽 4강에 진출한 성과를 놓고 봤을 때 아시아 6위에 머문 점은 여러모로 아쉬움이 크다. 특히 일본에 완패를 당한 점도 아쉬움으로 남는다.
배구에서 한일전은 빼놓을 수 없는 '백미'다. 양국은 타 종목처럼 한일전은 절대로 물러설 수 없는 경기로 생각한다. 90년대와 2000년대 초반까지 한국배구는 남녀 모두 일본에 우위를 보였다.
무엇보다 일본을 만나면 펄펄 나는 '킬러'들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90년대 한국여자배구의 전성기를 이끈 장윤희(42) 현 MBC배구해설위원은 대표적인 '일본 킬러'였다. 170cm에 불과한 단신 공격수였지만 기본기가 뛰어났고 작은 신장을 커버한 점프력도 일품이었다.
장윤희를 비롯해 이도희, 정선혜, 홍지연, 박수정 등 호남정유(현 GS칼텍스) 선수들이 주축을 이룬 대표팀은 일본에 강세를 보였다. 특히 1994년 히로시마 아시안게임에서는 중국과 일본을 차례로 꺾고 금메달을 획득하는 쾌거를 올렸다.
당시 상황에 대해 장윤희 위원은 "그 때 우리의 조직력은 한층 탄탄했지만 일본은 수비와 조직력이 갖춰지지 않던 시절도 있었다. 기억에 남는 선수로는 오바야시 모토코(전 일본 여자배구 국가대표)가 있는데 왼손잡이인데다가 볼을 때리는 각도 좋아서 막기 힘들었다"고 회상했다.
한국 대표팀의 탄탄한 조직력을 완성한 이는 당시 호남정유의 수문장이었던 김철용 감독이었다. 장윤희 위원은 "감독님은 한일전에서 정신력을 강조하셨다. '일본'이란 단어만 나와도 이를 갈게끔 만드셨다. 이러한 요소가 강한 정신력으로 이어졌다"고 밝혔다.
한일전에서 나타나는 정신력에 대해 신진식 현 홍익대 감독은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출전권을 놓고 일본과 맞붙은 경기는 여전히 생생하다. 당시 일본의 '주포'는 나카가이치 유이치(전 신일본제철)였는데 일본 관중들의 응원이 대단해 압도당하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반드시 올림픽에 가야겠다는 생각으로 경기에 집중하다 보니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당시 신진식 감독은 나카가이치와 치열한 득점 경쟁을 펼쳤다. 배구를 비교적 늦게 시작한 나카가이치는 공격에 능한 반면 수비는 약했지만 신진식은 공수를 모두 갖춘 올라운드 플레이어였다. 신진식의 활약에 힘입은 한국은 일본을 세트스코어 3-1로 꺾고 애틀랜타 올림픽 출전권을 확보했다.
새로운 일본 킬러로 급부상한 이는 '여자배구의 대들보' 김연경이다. 김연경은 지난 5월 일본 도쿄에서 열린 런던올림픽 세계예선전에서 '도쿄 대첩'을 이끈 장본인이다. 당시 코트에서 김연경과 함께 뛴 주전 센터 양효진(22, 현대건설)은 "(김)연경이 언니가 워낙 잘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너무 잘하는 모습에 깜짝 놀랐다"고 전했다.
이 경기에서 김연경은 홀로 34득점을 쓸어 담으며 일본에게 당한 22연패의 사슬을 끊었다. 실제로 한일전을 중계한 일본 방송은 경기가 시작되기 전 남자 공격수들의 상대로 블로킹과 수비 연습을 하는 일본대표팀의 모습을 보여줬다. 일본은 김연경을 막기 위해 철저하게 대비했지만 높은 타점과 스피드 여기에 넓은 시야까지 갖춘 김연경의 맹공에 무릎을 꿇고 말았다.
김연경은 일본전에 대한 얘기가 나올 때마다 "일본을 이기고 싶다는 마음은 항상 가지고 있다. 일본은 잘하는 부분도 있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을 제대로 살리면 충분히 해볼 수 있는 상대"라고 일관적으로 대답했다.
우리가 일본을 제압하던 시절에는 탄탄한 조직력과 대표적인 '일본 킬러'가 있었다. 그러나 대표팀 운영이 일본처럼 체계적으로 운영되지 못하면서 패하는 경기가 많아지고 있다. 배구의 볼거리 중 하나는 단연 한일전이다. 탄탄한 대표팀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과 일본전에 강한 선수들이 나타나는 것이 한일전 승리를 위한 지름길이다.
[사진 = 김연경, 장윤희, 신진식 (C) 엑스포츠뉴스DB]
조영준 기자 spacewalker@xport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