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조영준 기자] '기본과 원칙' 우리 사회에서 가장 널리 통용되는 단어다. 또한, 사회생활을 하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로 손꼽히고 있다.
기본과 원칙이 중요하다는 것은 누구나 쉽게 인정을 한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생각만큼 지켜지지 않고 있다. 프로배구에서 오랫동안 강자로 군림하고 있는 삼성화재의 배구는 한국배구가 추구해야할 표본은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이 팀이 기본과 원칙을 철저하게 지키면서 정상의 자리를 유지하고 있는 점은 주목할만 하다.
삼성화재는 올 시즌 21번의 경기를 치르면서 단 2번 밖에 패하지 않았다. 지난 시즌과 비교해 전력은 좋아졌지만 현대캐피탈과 대한항공과 비교해 국내 선수들의 자원이 풍부한 것도 아니다.
물론, 많은 이들은 가빈 슈미트(26, 캐나다)라는 걸출한 공격수가 있기 때문에 삼성화재가 강하다고 생각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가빈은 삼성화재에 있어서 없어서는 안 될 선수다. 그러나 삼성화재라는 큰 원을 그려봤을 때, 가빈은 곡선의 한 부분일 뿐이었다. 삼성화재의 신치용 감독과 노장 선수들, 그리고 전문가들은 삼성화재만이 가진 '기본과 원칙'이 하나의 큰 원을 그릴 수 있었다고 밝혔다.
가빈 슈미트, 대단한 선수지만 약점도 많은 선수다
신 감독은 팀의 '절대 공격수'인 가빈에 대해 "공격의 높이는 대단하다. 하지만, 기술은 떨어지고 수비는 빵점이다"라고 평가했다.
또한, 신 감독은 "대한항공의 마틴과 비교해 가빈은 블로킹 능력도 떨어진다"라고 덧붙었다. 국내 배구는 세계적인 흐름인 '스피드 배구'가 아닌 높이와 정교함을 추구하고 있다. 외국인 선수들과 비교해 국내 선수들의 평균적인 블로킹 높이는 떨어진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높이와 힘으로 승부할 수 있는 외국인 선수가 V리그에서 성공 사례를 남겼다.
삼성화재는 가빈의 공격력을 극대화시키기 위한 전력을 구축했다. 가빈의 입맛에 맞춰주는 토스를 올리려면 안정된 서브와 리시브가 필요하다. 여오현(33)-석진욱(36)이 구축하고 있는 리시브 라인은 국내 최강이다. 여기에 주전 세터 유광우도 지난 시즌과 비교해 안정감을 찾았다.
상대 코트를 가로지르는 호쾌한 공격이 이루어지려면 안정된 리시브와 토스가 필요하다. 국내 팀들 중, 이 과정에 가장 충실한 팀은 삼성화재다. 또한, 삼성화재는 수비로 걷어 올린 볼을 공격수에게 연결해주는 2단 토스도 정교하다. 공격수를 살려주는 궂은 일이 워낙 충실하다보니 가빈이 '괴물 공격수'로 거듭날 수 있었다.
보이지 않는 플레이의 가치를 알고 충실한 것이 주효
신 감독은 "한국을 대표하는 공격수인 문성민과 김요한, 그리고 박철우가 수비가 되는 선수들이었다면 아시아 제패는 쉽게 이루어졌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신 감독을 비롯한 많은 지도자들은 "국가대표 선수들을 뽑으면 수비가 아닌 공격만 잘하는 선수들이 대부분이다"라고 지적했다.
많은 선수들은 팬들의 눈에 쉽게 노출되는 호쾌한 스파이크를 좋아한다. 고등학교와 대학교 시절에도 힘든 수비보다 재미있는 공격에 치중하는 사례가 빈번이 일어난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박희상(40, 드림식스 감독)과 석진욱(36, 삼성화재) 같은 '배구 도사'들이 좀처럼 나타나지 않고 있다.
신 감독은 "경기를 잘하려면 배구 이해도가 가장 중요하다. 배구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우선, 눈에 보이지 않는 플레이인 수비와 서브리시브, 그리고 2단 토스의 가치를 제대로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삼성화재의 배구는 현대캐피탈과 대한항공과 비교해 화려하지 않다. 하지만, 이 팀과 비교해 '눈에 보이지 않는 플레이'에 충실했다. 이러한 점 때문에 지금과 같은 성적을 남길 수 있었다고 신 감독은 털어놓았다.
신 감독은 "조직력이 완성되려면 선수들의 희생이 필요하다. 선수들이 모두 화려하게 보이는 공격만 하려고 한다면 결코 제대로된 조직력을 만들 수 없다. 나는 박철우와 같은 공격수에게도 2단 토스와 수비 등 기본기를 가르친다. 눈에 보이지 않는 플레이의 가치를 모르면 결코 좋은 배구 선수가 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삼성화재가 기본기에 충실한 점은 경기를 통해 수차례 드러났다. 특히, 18일 열린 현대캐피탈과의 경기에서는 이러한 부분이 극명하게 나타났다. 삼성화재의 선수들은 적극적으로 수비 가담에 나섰다. 또한, 2단 연결이 현대캐피탈과 비교해 한층 정교했다. 배구에서 선수들이 기피하는 '궂은일'에 충실했던 점이 삼성화재를 강팀으로 완성할 수 있었다.
삼성화재 배구에서 배워야할 점과 극복해야 할 점은 공존한다
브라질은 오랫동안 남자배구의 최강국으로 남아있다. 브라질은 개인기가 뛰어난 선수들로 구성된 장점이 있다. 그러나 모든 선수들이 토스에 능하고 생각하는 플레이를 할 수 있었기 때문에 '세계 최강'이 될 수 있었다.
'월드 리베로' 여오현은 "브라질과 경기를 할 때, 모든 선수들이 기본기가 좋고 2단 토스에 능했다. 그렇게 큰 선수들이 볼을 쫓아가는 집중력을 보인 점도 인상적이었다"고 밝혔다.
삼성화재는 5세트 경기에서 쉽게 지지 않는다. 이 부분에 대해 신 감독은 "10년이 넘긴 기간동안 삼성화재는 5세트 경기 승률이 80%정도에 이른다. 이런 수치가 가능했던 것은 필요 없는 범실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대한항공과 현대캐피탈 등은 삼성화재와 접전을 펼치지는 중요한 고비에서 무너지는 경우가 많았다.
수비와 서브리시브, 그리고 2단 연결의 가치를 인정하고 이 부분에 충실했던 점은 삼성화재 배구가 남긴 교훈이다. 하지만, 한국배구가 한 단계 도약하려면 삼성화재의 배구를 극복하는 것도 중요하다.
삼성화재의 배구를 극복하려면 기본기에 충실함은 물론, 그 팀이 가진 장점을 십분 발휘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정교함을 가지고 세계적인 추세인 '스피드 배구'를 완성하는 점도 새로운 대안이다.
[사진 = 삼성화재, 석진욱 (C) 엑스포츠뉴스DB]
조영준 기자 spacewalker@xport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