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 김현기 기자) 대한축구협회가 회장 선거 하나도 제대로 치르지 못하는 조직으로 인증받았다.
연이은 행정 난맥상으로 한국 축구에 먹칠을 했지만, 이번 사건은 그야말로 축구협회 수뇌부 무능의 끝판왕이다.
이에 따라 대한축구협회가 회장 선거에서 손을 떼고 중립적인 조직에 위탁해야 한다는 의견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다른 곳도 아닌 법원이 "공정성 현저히 침해"한다는 표현으로 대한축구협회가 선거를 운영할 수 없는 단체임을 못 박았다.
한국 축구사에 충격적인 일이 벌어졌다.
제55대 대한축구협회 회장 선거를 하루 앞두고 허정무 후보가 불공정·불합리한 절차 등을 이유로 낸 가처분 신청을 법원이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8일 열릴 예정이었던 회장 선거 일정이 기약 없이 미뤄졌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50부(임해지 부장판사)는 7일 허 후보가 축구협회를 상대로 낸 축구협회장 선거 금지 가처분 신청에 대해 인용 결정을 내렸다.
축구협회장 선거는 하루 전에 제동이 걸렸다.
앞서 허 후보는 지난달 30일 서울중앙지법에 회장선거 금지 가처분 신청을 했다.
선거운영위원회 구성이 불투명하고 일정 및 절차가 제대로 공고 안 된 점, 선거가 온라인 방식 없이 오프라인 직접 투표로만 이뤄져 동계 전지훈련에 참가하는 프로축구 지도자·선수들이 선거에서 사실상 배제되는 데다 '개인정보 제공 동의서 미제출'을 이유로 규정(최대 194명)보다 21명이 적은 선거인단을 구성한 점 등을 들어 선거 관리가 불합리하게 이뤄지고 있다는 게 가처분 신청 이유였다.
당초 법원의 인용 여부는 6일 나오는 것으로 예정됐으나 하루 미뤄졌고, 그러면서 인용이 어려운 것 아니냐는 관측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법원은 허 후보의 손을 들어줬다.
법원은 "선거의 공정을 현저히 침해하고 그로 인해 선거 절차에 영향을 미쳤다고 인정될 만한 중대한 절차적 위법이 있다"고 판단했다.
아울러 선거인단 대다수가 투명성과 공정성이 확인되지 않는 추첨 절차를 통해 구성됐다고 지적했다.
또한 선거 관리·운영회 위원으로 위촉된 사람이 누구인지 공개하지 않아 위원회가 정관 및 선거관리 규정에 부합하게 구성된 것인지 확인할 수 없었다고 법원은 부연했다. 위원 비공개는 허 후보는 물론 선거에 함께 출마한 신문선 후보도 강력하게 제기한 사항이다.
아울러 법원은 세 명이 후보로 출마한 상황에서 선거인단에서 배제된 21명의 투표수는 적어도 1차 투표에서 과반수 득표자가 없는 경우 결선투표에 올라갈 후보자를 결정하는 데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며, 이에 따라 선거가 실시될 경우 그 효력에 관해 후속 분쟁이 촉발될 가능성도 높다고 내다봤다.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일 보전의 필요성도 소명된다고 법원이 판단한 것이다.
축구협회는 허 후보 혹은 신 후보가 문제 제기를 할 때마다 또박또박 반박하며 선거 진행에 문제가 없다고 항변했다.
하지만 다른 기관도 아닌 법원이 이번 축구협회 선거가 불공정하게 진행되고 결점이 적지 않다는 것을 확인했다.
축구협회는 곧바로 "선거일을 잠정 연기한다"면서 "추후 일정이 수립되는 대로 공지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선거에는 정몽규 현 회장, 신문선 명지대 기록정보과학전문대학원 스포츠기록분석학과 초빙교수, 허정무 전 국가대표팀 감독(이상 기호순)이 출마했다.
하지만 선거 초반부터 공정성 시비가 끊이질 않았다. 허 후보는 "이미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며 4선에 도전하는 정몽규 후보와의 싸움에서 불공정하고 불합리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고 외쳤다.
신 후보 역시 "이번 선거처럼 깜깜이 선거가 없다"며 황당함을 숨기지 않았다.
둘의 주장과 허 후보의 가처분 신청을 두고 "정책이나 공약 없이 법원의 판단에 의지하려 한다"며 냉소를 보내던 일부 축구인들과 언론들은 자신들의 생각이 잘못됐다는 점을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됐다.
중요한 것은 이번 법원 인용 결정에 따라 대한축구협회가 독자적으로 선거를 치를 수 없는 조직으로 낙인 찍혔다는 것이다.
대한체육회 선거처럼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선거를 위탁하는 것이 합당하다는 의견이 적지 않게 나오고 있다. 상식적으로 대한축구협회가 선거를 계속 운영하는 것은 맞지 않다.
중앙선관위는 '공동단체등 위탁선거에 관한 법률' 및 '국민체육진흥법'에 따라 오는 14일 예정된 제42대 대한체육회장 선거를 위탁 관리하고 있다.
후보자 등록신청부터 시작해 14일 선거 마무리까지 모든 업무를 대행하는 중이다.
이런 의견에 대해 허 후보 측은 합리적이라는 견해를 제시했다. 허 후보 측 관계자는 "축구협회의 선거 운영에 대한 불공정·불합리 주장을 법원이 받아들인 것 아닌가. 대한축구협회도 유관단체이기 때문에 중앙선관위에 위탁 운영 및 관리하는 것이 마땅한 방안"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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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기 기자 spitfire@xport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