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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동전설(海東傳說)8 (1) 위험한 손님들

기사입력 2007.02.27 04:21 / 기사수정 2007.02.27 04:21

김종수 기자

글: 김종수/그림: 이영화 화백

"마…막아!"

교관의 호통소리에 화들짝 놀란 임혁은 죽을힘을 다해 하늘로 솟구쳤다. 상대선수가 공을 던지는 것을 막아서기 위함이었다.
씨익…
공중에 뜬 찰나의 순간 임혁은 분명히 보았다. 조금의 중심도 흐트러지지 않은 채 가볍게 손목을 꺾고있는 상대선수의 웃는 얼굴을 말이다.
철썩!
필사적인 수비에도 불구하고 어느새 그물주머니는 또다시 출렁거리고 말았다.

'도…도대체, 뭐 이런 놈이 다 있지…?'

상대선수를 바라보는 임혁의 얼굴은 경악, 그 자체였다.

팔짱을 낀 채 심각한 얼굴로 경기를 관전하는 두 명의 중년사내…대머리에 짙은 눈썹을 한 이는 밀양현의 농구교관 남궁철이었고, 단정하게 머리를 빗어 올린 사내는 정읍현의 농구교관 홍경택이었다.

"대단하군. 대단해, 어떻게 저렇게 뛰어난 격발수(擊發手)를 발굴할 수 있었지?"

홍경택을 돌아보며 남궁철이 물었다.

"대단하면 뭐해? 어차피 저 녀석하나뿐인걸…경기는 자네의 밀양현이 앞서고있잖아?"

빙긋이 웃는 얼굴로 홍경택이 대답했다.
기실 그랬다. 밀양현은 현재 십여 점 차이로 정읍현을 앞서고있었고, 정읍현은 한 선수의 뛰어난 활약으로 근근히 뒤를 따라붙고 있는 상황이었다.

"허허…엄살떨기는,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정읍현은 우리 밀양현의 상대가 되지 못했네. 자네도 알다시피 삼, 사십 점은 우습게 벌어졌지 않은가? 대단해, 정말 대단해."

경기를 이기고있는 남궁철의 얼굴이 오히려 더 초조해 보였다.

"저 녀석이 누구의 동생인지 알고 있나?"

"누구의 동생이라니? 그렇다면 저 녀석의 형도 농구를 하고있다는 말인가?"

"그랬었지…한때는…"

말끝을 흐리는 홍경택의 얼굴에 씁쓸한 빛이 스쳤다.

"저 녀석 이름을 잘 생각해보게,"

"이름…? 그러니까 저 녀석 이름이 백…"

"백재승이야. 백재승, 한때 해동국의 차세대 격발수로 각광을 받았던 백동호의 동생이지."

"뭐…뭐야? 중화국 청소년대표와의 친선시합에서 숨을 거둔, 그 백동호…?"

남궁철의 얼굴 가득 놀란 표정이 그려졌다.

"그래, 형의 몫까지 해낼 것이라고, 밤낮으로 연습에 몰두하는 녀석이지. 저 실력은 어디서 갑자기 튀어나온 것이 아니야."

홍경택의 음성은 계속해서 침울해져갔다.

 

 

"헉헉…"

임혁은 난생처음으로 다리에 쥐가 나는 것을 느꼈다.
큰 키에 긴 팔과 다리, 장신답지 않은 빠른 몸놀림은 임혁을 해동국 전체에서도 주목받는 명 수비수중하나로 이름 날리게 했다. 상대가 누구든지 간에 자신에게 걸리면 평균득점을 절반이하로 떨어뜨린다는 자신감에 불타던 그였다.
하지만 오늘…임혁은 백재승의 수비를 전혀 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점수를 허용하고 있는 판국이었다.
최대한 자세를 무너뜨리려고 함에도 백재승은 단단한 석상처럼 언제나 안정된 자세로 공을 던지고 있었다. 설혹 몸은 무너뜨려도 그의 눈은 언제나 그물주머니를 향하고 있었고, 손목은 조금의 기복도 허용하지 않았다.

"우상이었던 형의 죽음…그것이 저 녀석을 저렇게 엄청난 격발수로 만들어버린 것이야. 저 실력으로도 현재 가장 열심히 노력하는 녀석이지."

백재승을 쳐다보는 홍경택의 얼굴에 옅은 안쓰러움이 번져갔다. 그러나, 홍경택은 모르고있었다. 백재승에게는 형의 한(恨)외에 그 못지 않은 또 다른 커다란 이유가 있다는 것을…


번잡한 저잣거리의 한가운데를 네 명의 중년여인들이 걸어가고 있었다. 백재승의 모친인 임재령과 그의 세 친구, 조현정, 엄은정, 박선자였다.

"이야! 저것 괜찮은데…한번 둘러보고 가자."

포목점 앞을 지나가던 임재령이 밝은 웃음을 띄고 총총걸음을 옮겼다.

"……"

웬일인지 세 여인은 서로의 얼굴만 마주쳐다보며 뒤를 따라가지 않았다.

"왜 그래? 무슨 문제 있어?"

여인들을 돌아보며 임재령이 물었다.

"저, 저기 재령아…오늘이 네 아들, 경기가 있는 날인데, 안 가봐도 돼?"

서로 눈치를 보던 중 조현정이 먼저 입을 열었다.

"그…그래, 포목은 다음에 구경해도 되니까 어서 가봐라."

"나도 같은 생각이다. 그래도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고, 식구인데…"

나머지 두 여인들도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그러나 싸늘하게 굳어진 임재령의 표정에 더 이상은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잘 들어, 아들이면 다 똑같은 아들인지 알아? 내가 사랑하는 사람사이에서 낳은 아들은 죽은 우리 동호밖에 없어. 그 아인 어쩔 수 없이 데리고 있을 뿐이야. 함부로 남의 일에 참견하지마."

"무슨 말을 그렇게…하니? 그래도 네 속에서 낳은 아들인데…?"

"웃기지마! 내가 진정 낳고 싶어서 마음으로, 가슴으로 낳은 아들은 죽은 동호뿐이라고 했잖아. 재승이는 어쩔 수 없는 현실 때문에…우리 동호를 고생시키지 않기 위해서 머리로 낳은 아들이었을 뿐이야."

임재령의 눈에서 불꽃이 튀었다.

"……"

"도대체 왜? 아무도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야? 아악!"

임재령은 또다시 습관적으로 발작을 일으켰고, 세 여인은 그런 임재령을 진정시키려 한참을 고생해야만 했다.

"도대체 무슨 소리야? 가슴으로 낳은 아들은 뭐고, 머리로 낳은 아들은 뭐야?"

"신경 쓰지 말고 그냥 가자고, 실성한 여인네 같은데…"

영문을 알리 없는 행인들의 수근거림이 저잣거리 이곳저곳에서 들려왔다.

 


"젠장! 뭐이리 시끄러워?"

저잣거리를 지나 연무관 앞에 선 중년사내의 이맛살이 잔뜩 찡그려지고있었다. 시커먼 얼굴색에 두 개인지, 세 개인지 구분이 안될 정도로 축 늘어진 턱 살, 가뜩이나 작은 눈은 살 속에 파묻혀 안으로 푹 들어가 버렸다.

"그러게 말입니다. 이까짓 농구가 뭐 그리 좋다고…"

삿갓을 눌러쓴 뒤쪽의 사내가 슬며시 다가오며 맞장구를 쳤다. 깡마른 체구에 펄럭거리는 옷, 알 수 없는 살기(殺氣)가 전신에서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일단 안으로 들어가자. 그리고 기회를 봐서 확실하게 목을 따버리도록."

"예. 형님."

비대한 체구의 중년사내. 그의 이름은 왕정국이었다. 저잣거리 주먹패인 복호살수파(伏虎煞手派)의 두목으로 소년원에서 농구선수로 뛰고있는 최정열을 처치하기 위해 이곳을 찾은 것이었다. 깡마른 체구의 사내는 하청이라는 사내로 밤 세계에서 유명한 칼잡이였다. 최정열을 해치우기 위해 왕정국이 직접 데리고 심복이다.

"망할 놈 같으니라고…삼 년이면 출소한다는 놈이 저깟 농구에 미쳐, 오 년이 넘어가도록 우리를 안 찾아. 다른 놈들에게 본 떼를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저놈을 죽여버려야 한다. 자 가자."

뒤뚱뒤뚱 왕정국이 앞장서 연무관으로 들어갔고, 하청이 뒤를 따랐다. 

※ 본 작품은 프로농구잡지 월간 '점프볼'을 통해 연재된 소설입니다.



김종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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