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11.07.13 07:35 / 기사수정 2011.07.13 07:35
2000년대 초반 야구 팬들은 매 경기 결과와 함께 이들이 홈런을 쳤는지 여부를 꼭 확인하곤 했다. 이승엽(오릭스)과 심정수(은퇴). 한 명은 일본 프로야구로 건너간 지가 7년이고, 또 다른 한 명은 현역 은퇴 후 미국에서 유학 중이다. 이들은 2002년과 2003년 2년 연속 꿈만 같은 홈런 레이스를 주도하며 야구 팬들의 향수를 자아낸 주인공들. 결과적으로 이승엽이 47개와 56개라는 기록적인 홈런을 뽑아내며 2년 연속 승자가 됐으나 46개와 53개를 쏘아 올린 심정수의 활약도 대단했다. 오히려 심정수라는 페이스 메이커가 있었기에 이승엽의 홈런도 더욱 빛이 날 수 있었다.
▲ 페이스 메이커의 위력
당시 야구 팬들이 이승엽과 심정수의 홈런 경쟁에 주목했던 이유는 둘이 동시에 엄청난 양의 홈런을 양산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근거리에서 시즌 내내 긴장감 넘치는 홈런 레이스를 펼쳤기 때문이었다. 특히 2002년에는 시즌 마지막 날 이승엽이 극적인 홈런을 쏘아 올려 단독 홈런왕에 오른 바 있고 2003년에는 당시 소속팀 삼성과 현대가 KIA와 함께 치열한 선두 다툼을 펼친 것과 맞물려 둘의 홈런 경쟁은 더욱 관심을 모았다. 맞대결서 홈런을 주고 받는 경우도 허다했다. 둘은 그렇게 서로 견제하며 진화했다. 라이벌이었지만 알고 보면 둘은 공생관계였다.
하지만, 2003년 이후 이승엽이 한국을 떠났고 심정수는 공교롭게도 이승엽이라는 라이벌이 떠난 뒤 내리막길을 걷다가 은퇴했다. 그리고 한국프로야구는 이후 둘에 버금가는 홈런 레이스 경쟁자를 찾지 못하고 있다. 2000년대 중반 극심했던 투고 타저 현상으로 인해 30개 초반에서 홈런왕이 탄생하며 관심이 식기도 했지만 근본적으로 강력했던 홈런 페이스 메이커가 없었다는 것도 아쉬운 대목이었다.
▲ 8년만에…
그런데 8년이 지난 올 시즌, 2002~2003년의 이승엽-심정수 모드가 재탄생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주인공은 이대호(롯데)와 최형우(삼성). 13일 현재 둘은 각각 20개와 19개의 홈런을 쏘아 올리며 본격적인 진검 승부를 준비하고 있다. 최형우가 12일 목동 넥센전서 투런포를 쳐내며 다시 이대호를 압박했다. 지금 같은 페이스라면 이대호는 35개, 최형우는 34개를 쏘아올릴 수 있다. 당시 이승엽-심정수의 페이스에는 턱없이 모자라다.
그러나 두 선수가 시즌 내내 꾸준하게 홈런을 쏘아 올리며 서로 견제하고 있다는 걸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이대호는 4월부터 4-9-6-1, 최형우는 3-9-4-3개로 5월 이후 숨을 고르고 있는 분위기이지만 꾸준히 홈런을 치고 있고 이대호가 달아나면 최형우가 꾸준히 추격을 하고 있는 모양새다. 더욱이 장마와 올스타 브레이크가 끝나는 이달 말부터는 본격적으로 힘을 낼 가능성이 있다.
이대호의 경우 이미 작년 44개의 홈런을 쏘아 올렸고 12일 사직 한화전서 8년 연속 100안타 고지에 오르며 타격에 관해 이미 정점에 오른 타자다. 8년전 당시 이승엽-심정수도 완성형 타자로 불렸다. 최형우는 아직 이대호보다 한 수 아래로 평가받고 있지만 지난 3년간 19-23-24개의 홈런을 쳐냈고 올 시즌 모든 개인 타격 기록의 커리어 하이를 향해 달리고 있다. 홈런뿐 아니라 타격 기술도 진일보했다는 평을 듣고 있어 설령 홈런왕을 차지하지 못하더라도 시즌 막판까지 적어도 이대호의 홈런 페이스 메이커로는 손색이 없어 보이고 역전하지 말라는 법도 없다.
경쟁의 효과는 무섭다. 페이스 메이커와 함께 달리는 주자의 속도는 더욱 빨라지기 마련이다. 8년전 이승엽과 심정수의 홈런 양산 기술도 대단했지만, 서로 페이스 메이커가 돼 더욱 홈런 개수를 늘려간 영향도 분명히 있었다. 더욱이 8년 전에 비해 현재 한국프로야구의 투수 수준은 분명히 성장한 상태라는 걸 감안할 필요가 있다. 그만큼 홈런 쳐내기가 쉬운 일이 아니다. 어쩌면 이대호와 최형우는 당시보다 더 어려운 환경 속에서 홈런 레이스를 주도하고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또한, 돌이켜보면 지난 8년간 시즌내내 2명 이상의 타자가 홈런왕 경쟁을 이어간 경우는 많았지만, 서로 시즌 초반부터 부상 없이 꾸준히, 그리고 치열하게 견제를 하는 수준은 되지 못했다. 그러나 현재 이대호는 타격 기술이 완성된 타자이고, 최형우는 거칠 것 없이 성장하는 타자다. 일단 시즌 반환점이 도는 지금까지 서로 꾸준히 홈런을 쳐내면서 견제를 하고 있다. 단순히 홈런 개수, 그리고 승자를 가르기에 앞서, 꾸준히 경쟁하는 모양새만 갖춰진다면, 8년전에 버금가는 긴장감 넘치는 스토리를 만들어갈지도 모르는 일이다. 이대호와 최형우의 홈런 경쟁은 그래서 꼭 지켜봐야 할 가치가 있는 아름다운 그림이다.
[사진=이대호 최형우 ⓒ 엑스포츠뉴스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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