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최종편집일 2024-09-20 2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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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축구의 '사다리 전법'을 아시나요?

기사입력 2006.02.28 02:16 / 기사수정 2006.02.28 02:16

손병하 기자

36년에 걸쳐 유럽과 남미 그리고 북중미에 있는 7개 나라를 돌며 520만 명이라는 순수 관중 유치에 성공한 월드컵은 세계 최대의 스포츠 축제로 확실한 자리매김에 성공했다. 

특히 1954년 스위스 월드컵부터 첫 선을 보인 TV 중계는 1960년대에 이르면서 다양한 영상산업의 발달과 함께 월드컵의 TV 중계 및 기록 영화 제작이 가능해져 더 많은 나라 사람들이 월드컵의 감동을 화면을 통해 느낄 수 있게 됐다.

세계 최고의 축구 축제를 안방과 영화관에서 볼 수 있게 되자 사람들은 월드컵에 더 큰 관심을 나타내기 시작했고, 그 인기와 열기는 입소문과 문자로만 알려지던 것에 비해 훨씬 더 충격적이고 빠르게 전파돼 갔다. 월드컵의 인기와 열기에 제대로 가속도가 붙기 시작한 것이다.

◆ 제8회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

▲ 개최 배경

▲ 잉글랜드 월드컵 포스터
ⓒ fifaworldcup.com
제7회 대회를 결정하기 위해 리스본에서 열린 FIFA 총회에서 개최국이 남미의 칠레로 돌아가자 유럽 국가들은 일제히 다음 대회 유치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했다. 7회 대회의 남미 개최가 확정됨에 따라 8회 대회는 유럽에서 개최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이미 월드컵의 막강파워를 실감한 유럽의 많은 나라는 이런 기회를 놓치고 싶어하지 않았다. 월드컵 개최가 가져다주는 엄청난 효과에 매료된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그중에서도 잉글랜드와 서독은 곧바로 8회 대회의 유치를 위한 경쟁 체제에 돌입했다. 특히 서독은 전 대회의 개최 실패에 따라 절치부심하고 다시 월드컵을 개최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전쟁 도발국이란 오명을 씻고 국제 사회에 새로운 모습으로 어필하기 위해 월드컵은 굉장히 좋은 기회였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7회 대회의 유치 경쟁을 통해 얻은 노하우나 축구 관련 기반시설도 잘 갖추어져 있어 서독은 어느 정도 월드컵 개최를 확신하고 있었다.

하지만 잉글랜드 역시 만만치 않았다. 축구 종주국임을 자부하며 월드컵 초기에 오만했던 잉글랜드는 걷잡을 수 없이 불어나는 월드컵의 인기와 경제 효과, 그리고 엄청난 국가 이미지 상승에 매료될 수밖에 없었다. 또 하나, 1963년은 잉글랜드 축구협회(FA) 창립 100주년 이기도 해 잉글랜드는 월드컵 유치에 총력을 기울였다.

유례없이 치열했던 8회 대회 개최권을 놓고 고심하던 FIFA는 1960년 총회 직전 포기를 선언한 스페인을 제외하고 투표를 실시하게 된다. 이 투표에서 잉글랜드는 서독에 그야말로 간발의 차로 앞섰고 월드컵 역사 36년 만에 축구 종주국이 대회 유치에 성공했다. 서독은 모든 것이 준비돼 있었지만 전쟁 도발국이란 상처를 끝내 감추지 못해 두 대회 연속 개최권을 얻는 데 실패하고 말았다.

▲ 본선 경기 사진
ⓒ fifaworldcup.com

▲월드컵 뒷얘기

월드컵은 남미와 유럽의 축제?

잉글랜드 월드컵은 축구 종주국에서 열리는 축제였지만 전 세계인의 축제가 되지는 못했었다. 당시 FIFA는 지역 예선에서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수준이 너무 떨어진다고 판단해 아시아와 아프리카 오세아니아를 한 조에 묶어 버렸다. 이에 불만을 품은 아프리카는 예선에 참가할 계획이었던 16개 나라 모두가 기권을 선언해 버렸고, 대부분의 아시아 국가들도 불참했다. 지역예선에는 한국과 북한 그리고 오세아니아의 호주만이 참가했을 뿐이었다.

월드컵 효과가 그 누구보다도 필요했던 제3세계 국가들이 유럽과 남미만을 인정하는 FIFA의 태도에 불만을 품기 시작했다. 세계인의 축제를 모토로 내걸고 숨가쁘게 달려왔던 FIFA가 인종과 대륙이라는 또, 평등이라는 새로운 장애물에 부딪히게 된 것이었다.

월드컵 트로피를 찾아주세요!

잉글랜드 월드컵이 우승 트로피 없이 치러질 위기에 놓였었다. 월드컵 홍보를 위해 일반인에게 공개됐던 '줄리메컵'이 대회 개막을 8일 앞두고 사라진 것이다. 줄리메컵 이후 만들어진 FIFA 컵의 경우 FIFA 본부에서 진품을 보관하고 우승국에게는 모조품이 수여되지만, 당시에는 FIFA의 초대회장인 줄리메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진 이 트로피 하나밖에 없었다.

천지가 개벽할 이 사건으로 온 나라는 발칵 뒤집혔으며 상금까지 걸고 줄리메컵을 찾아나섰다. 사람의 힘으로 찾지 못했던 줄리메컵을 대회 개막 하루 전에 간신히 찾았는데, 런던 교외 한 농부의 집 숲 속에서 피클스라는 개가 물고 나타난 것이다. 이후 줄리메컵은 최초의 월드컵 3회 우승국인 브라질에 영구 수여되지만, 브라질 역시 줄리메컵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AGAIN 1966'의 원조, 북한의 돌풍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은 두 개의 이변이 일어난 대회로 기억되고 있다. 하나는 펠레가 이끌던 브라질의 조별리그 탈락이었고, 다른 하나는 박두익이 이끌던 북한의 돌풍이었다. 북한은 동양의 펠레로 이름 붙여진 박두익을 필두로 박승진 이동운 양성진 등 최고의 선수들이 활약하던 시기이기도 했다. 당시 최강 중 하나였던 소련과 유럽의 강호 이탈리아 그리고 전 대회 개최국이었던 칠레와 한 조에 편성된 북한은 소련과의 첫 경기에서 0-3으로 패했지만, 칠레와의 경기를 1-1로 비기고 이탈리아를 1-0으로 물리치며 준준결승에 진출했다.

장신의 유럽 선수들과 공중볼을 경쟁하기 위해 동료 선수들이 헤딩하는 선수의 뒤를 받쳐주는 '사다리 전법'으로 유명했던 북한은 준준결승에서도 에우제비오가 이끄는 포르투갈에 전반 26분까지 3-0으로 앞섰지만 이후 5골을 허용하면서 3-5의 쓰라린 역전패를 기록하고 말았다. 하지만 이 대회에서 보여준 북한의 돌풍으로 FIFA는 제3세계의 축구 실력을 다시 보는 계기가 돼 더 이상 아프리카와 아시아를 홀대할 수 없게 됐다.

▲ 결승전이 열렸던 웸블리 경기장
ⓒ fifaworldcup.com


가장 미심쩍은 월드컵 결승골

1966년 7월 30일 런던의 웸블리 경기장에서는 잉글랜드와 서독의 월드컵 결승전이 펼쳐졌다. 10 만에 육박하는 대관중이 운집했다. 경기는 후반 종료까지 2-2 라는 스코어가 말해주듯 치열한 공방전으로 이어졌다. 1934년 이탈리아 월드컵 이후 무려 32년 만에 결승전은 연장으로 들어갔다. 승부는 잉글랜드의 제프 허스트의 발끝에서 갈렸다. 경기 시작 100분이 막 넘어갈 무렵 잉글랜드의 알랜 볼이 오른쪽 측면에서 올려준 크로스를 허스트가 슈팅으로 연결했고 이 공은 크로스바 아래쪽을 맞고 골 라인으로 떨어졌다.

관중들은 웅성거리기 시작했고 선수들은 주심의 판정을 기다리고 있었다. 스위스 출신의 고트프리드 디엔스트 주심은 토피크 바하라모프 소련 부심과 논의를 계속했다. 긴 협의 끝에 주심은 골로 인정했고, 잉글랜드 선수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그라운드로 뛰쳐나갔다. 이후 허스트가 한 골을 더 추가해 잉글랜드가 우승컵을 차지하긴 했지만 허스트의 골은 '웸블리 골'이라고 불리며 아직도 논란거리가 되고 있다.

'정말 선 안쪽에 떨어졌을까?' 이 사건을 계기로 잉글랜드와 서독은 서로를 향해 더 사납게 으르렁거리게 됐다.

대회 기록

*대회기간 : 1966.7.11 - 1966.7.30(20일간)
*참 가 국 : 아르헨티나, 브라질, 불가리아, 칠레, 잉글랜드, 프랑스, 헝가리, 이탈리아, 멕시코, 북한, 포르투갈, 스페인, 스위스, 우루과이, 소련, 서독 (총 16개국)
*개최도시 : 런던, 맨체스터 등 7개 도시
*총 득 점 : 89골, 평균 득점 2.78골
*총 관 중 : 1,627,000명, 평균 관중 50,844명
*득 점 왕 : 에우제비오(9골, 포르투갈)
*결 승 전 : 잉글랜드 vs 서독(연장전 포함 4 : 2, 잉글랜드 우승)
황제가 이끄는 브라질의 예선 탈락과 '사다리 전법'과 빠른 축구로 세계 축구 강호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던 북한의 돌퐁으로 잉글랜드 월드컵은 숱한 화제를 만들며 월드컵 역사상 최고의 대회로 기록됐다.또 TV 중계가 본격적으로 이뤄지면서 그 인기는 더 없이 높아져만 갔다.

하지만 유럽과 남미만을 중시했던 FIFA의 잘못된 사고방식은 월드컵을 유럽과 남미만의 축구 축제로 잘못 만들어가고 있었으며 명실상부한 세계인의 축제가 되기 위해 아프리카와 아시아 그리고 북아메리카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지지와 동참을 이끌어내야 하는 새로운 과제를 떠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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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병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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