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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팬페이지] 이제는 떠난, 강동우를 추억하며…

기사입력 2011.04.10 10:06 / 기사수정 2011.04.10 10:07

삼성 기자



1998년 10월 LG와의 플레이오프 2차전의 일입니다. LG의 타자 이병규가 중견수 뒤쪽으로 큼지막한 타구를 날렸고 당시 삼성의 신인이자 중견수였던 강동우는 전력을 다해 홈런성 공을 잡았습니다. 그런데 무언가 이상했습니다. 강동우는 펜스에 부딪히며 공을잡고, 그라운드에 쓰러져 계속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쓰러진 상태에서도 공은 그는 글러브에 공을 꼭 잡고 있었고 많은 팬들을 감동시켰습니다.

그러나 이게 웬일, 청천벽력같은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정강이뼈가 골절당하는 부상을 입으며 선수 생명까지 위협받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98년 방콕 아시안게임에도 출전이 불가능해졌죠. 다리에 철심을 박고 재활에 매진, 2000년 기적같이 복귀를 하게 됩니다. 그리고 2002년 2할8푼8리의 타율을 기록하고, 한국시리즈에서도 필요한 순간에 중요 역할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2004년, 타율 2할9푼5리로 자기역할을 톡톡히 한 강동우는 현대 유니콘스와의 한국시리즈에서 9경기에서 단 1할6푼1리만을 기록하며 부진하게 됩니다. 특히 배영수가 비공인 10이닝 노히트노런을 기록한 4차전, 12회말 2사 만루에서 상대투수인 조용준이 던진 공이 강동우의 몸쪽으로 들어왔고 맞았다면 그대로 끝내기 밀어내기 사구가 될수 있었으나 그는 이를 피했고 결국 아웃되며 경기는 무승부로 끝나게 됩니다.

일부 팬들은 그의 정신력을 비난했으나 많은 삼성팬들은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6년전 그가 당한 치명적인 부상을 알기때문이었죠. 그리고 9차전 2사에 대타로 나온 강동우는 불운하게도 땅볼로 아웃이 되며 역대 최고의 KS명승부로 회자되는 그 시리즈의 마지막 타자가 됩니다.

2005년에 2할4푼으로 다시 부진한 그는 조금씩 자리를 잃어갔고 결국, 2006년 두산의 강봉규, 김창희와 트레이드가 됩니다. 그 후 두산과 기아에서 3년간 부진하다 2009년 한화로 둥지를 옮긴 그는 다시 35세의 나이에 타율 3할과 27도루를 기록하며 부활을 하게됩니다. 꼭 11년만에 이뤄낸 3할이었습니다.

지난해 잠시 주춤한 그는 37살의 노장임에도 한화의 주전 우익수자리를 꿋꿋이 지키고 있습니다. 그리고 보란듯이 4월 6일과 8일, 홈런과 타점을 기록하며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있습니다.

그가 기록한 신인타자의 3할타율은 아직까지 나오고 있지 않습니다. 비록 지금은 타팀의 선수지만 그의 모습을 기억하는 삼성팬들은 언제나 그를 응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가 현재 타석에 서고 수비 하는 모습만으로도 고마움을 느낍니다.

한 번의 크나큰 부상으로 선수생명까지 위협받았지만, 포기를 모르는 그의 야구인생은 계속될 것입니다.

[사진 = 강동우 ⓒ 한화 이글스 제공]



삼성 논객 : 이승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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