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 윤승재 기자)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을 앞둔 한국 쇼트트랙 대표팀 분위기는 침울했다. 평창 금메달리스트 임효준이 성추행 사건으로 국가대표 자격이 박탈됐고, 대회 직전엔 심석희의 뒷담화 논란이 불거지면서 분위기가 최악으로 치달았다. 여기에 부상 선수까지 나오며 전력이 약화됐고, 설상가상 감독도 선임하지 못하고 전임 코치 체제로 올림픽에 출전했다.
최고참 곽윤기와 김아랑의 어깨가 무거울 수밖에 없었다. 어린 선수들을 이끌며 논란으로 어수선한 분위기를 잡아야 했고 약체라는 평가 속에서 ‘효자 종목’이라는 타이틀도 지켜내야 했다. 심지어 김아랑은 심석희 뒷담화 논란의 대상자이기도 해 자신의 마음을 추스르는 데에도 힘써야 했다. 여러모로 좋지 않은 상황 속에서 분위기도 성적도 모두 신경 써야 했던 두 베테랑이었다.
하지만 그 어려운 것을 쇼트트랙 대표팀이 해냈다. 대회 초반 혼성 계주 탈락과 석연찮은 판정 의혹으로 분위기가 더 가라앉을 법도 했지만, 곧바로 분위기를 잘 수습하며 메달 5개(금2, 은3)를 수확, 쇼트트랙 강국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역시 곽윤기, 김아랑 두 베테랑 선수가 있었다.
곽윤기는 대표팀의 맏형으로서 선수단의 분위기를 끌어 올리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해냈다. 후배들에게 스스럼없이 대하고 대회 도중 자신의 유튜브 채널 ‘꽉잡아윤기’를 운영하면서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자처했다. 훈련 중엔 남녀부 가리지 않고 후배들에게 값진 조언을 해주면서 선수들의 사기를 끌어 올리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하지만 곽윤기의 역할은 분위기 메이커에서만 머물지 않았다. 남자 쇼트트랙 대표팀이 5,000m 계주에서 12년 만의 메달을 따게 된 데에는 곽윤기의 역할이 컸다. 준결승에서 극적인 인코스 추월로 팀 결승행에 결정적인 역할을 해냈고, 결승에서도 최종 주자로 나서 끝까지 2위 자리를 지켜내며 팀에 은메달을 안겼다.
쇼트트랙 팀의 호성적에 김아랑의 역할도 무시할 수 없다. 여자부 맏언니로서 곽윤기와 함께 분위기를 끌어 올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한편, 여자 3,000m 계주에선 베테랑다운 전략 소화와 실력으로 팀에 메달을 안기는 데 일조했다. 계주 결승전에선 상대의 흐름을 끊는 고의 부정출발 전략을 잘 소화해주면서 불리한 위치에서 시작했음에도 은메달을 획득하는 데 원동력 역할을 했다.
사실 김아랑은 대회를 앞두고 갑작스런 일들이 많았다. 심석희 논란으로 마음고생을 한 것은 물론, 지난해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올림픽 개인전 출전 자격을 얻지 못했으나 대회 직전 징계와 부상으로 선수들이 이탈하면서 갑자기 개인전을 준비해야 하는 당황스러운 일들이 반복됐다. 팀보다도 개인을 추슬러야 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김아랑은 맏언니로서의 책임감으로 제 역할을 다하며 팀에 메달을 안겼다.
이번 대회가 마지막 올림픽이었던 곽윤기도 우여곡절이 많았다. 특히 중국의 편파 판정을 우려하는 소신 발언을 했다가 SNS 악플 테러를 받는 일도 경험했다. 하지만 오히려 곽윤기는 의연하게 대처하는 한편, 후배들의 방패 역할까지 자처하면서 맏형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해냈다. 그리고 그 결과 곽윤기는 한국에 은메달을 안기면서 자신의 ‘라스트 댄스’를 훌륭히 마쳤다.
좌절에서 환호로, 시작부터 암울했던 쇼트트랙 대표팀은 웃으며 대회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논란과 약체 평가, 편파 판정까지 모두 극복하고 얻은 값진 성과로서, 곽윤기-김아랑 두 베테랑 선수의 노력이 함께 빛났던 대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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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승재 기자 yogiyoon@xport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