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07.08.28 23:59 / 기사수정 2007.08.28 23:59
[엑스포츠뉴스=박영선기자] 2007년 8월 26일 대전. 열대어들을 위한 수족관을 흉내 낸 듯한 날씨였다. 경기장은 스콜 같은 비가 쏟아지기 전부터 공기 중에는 습기가 가득했고, 모든 것이 미끈거리거나 달라붙어 왔다.
전북 현대를 홈으로 불러들인 대전 시티즌의 출전 선수명단에는 돌아온 선수들의 이름이 여럿 보였다. 그중 올림픽 대표에서 돌아온 김창수는 가장 짧은 거리를 돌아온 셈이다. 14명의 대전 선수들 중에는 드디어 혹은 이제야 김호의 대전에 탑승한 김용태가 있었고, 5월부터 부상이었다는 주승진의 이름도 함께였다.
주승진은 K-리그에 넓은 팬층을 확보하고 있다. 눈에 띄는 스타는 아니더라도, 대전의 팬이 아닌 다른 팀의 팬들에게도 상당히 알려진 선수다. 내셔널리그의 미포조선 선수였던 그가, 구단 직원이 될 수도 있던 안정된 미래를 버리고 K-리거가 되기 위해 모험을 감행한 것은 유명한 이야기다.
대전에 입단하게 된 그의 이야기는 K-리그에 대해 가슴 깊은 곳으로부터 자부심을 느끼게 해준다. 또한, 보통 사람들이 바라는 모범적이고 성실한 자의 성공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조용하고 겸손하며 사람 좋은 미소를 하고 있는 그를 통해 '그래도 세상은 이치대로 돌아가고 있는 살만 한 곳'이라는 위안이 교훈처럼 남는다.
전북전 앞에 일주일 전에 치러진 인천전에서 필드에 나와 있던 사진기자들은 고작 해야 너덧 명뿐이었다. 그러던 것이, 고종수의 이름이 선발 명단에 뜬 26일 전북 전에서는 대전 쪽 필드만 세어보아도 그 수가 인천전의 배는 넘어 보였다.
고종수는 대전의 피치에 돌아와 뛰고 있지만, 사람들은 그를 기다리고 있다. 그들의 기억 속에서 화려한 덤블링을 하던 어리고 재기 넘치던 그를 기다리고 있는 듯하다. 비록 기다림의 시간이 지나면서 그를 향한 대포(전문사진기자들이 사용하는 렌즈를 부르는 은어)들의 숫자는 점점 줄어들고 있지만, 기자들에게는 여전히 대전의 선수들 중에 고종수만한 화두가 없다.
그들에게 고종수라는 이름은 장사가 된다. 전북 전 경기 후에도 서울에서 내려온 기자들은 그날 경기의 MVP인 슈바나, 득점을 기록한 브라질리아 대신 고종수를 불러내었다.
전반전 대전의 벤치는 조용하다. 최윤겸 감독 시절과는 달리 일어서서 피치의 선수들을 독려하는 선수는 없다. 조용히 앉아 동료의 움직임만 예의 주시 할 뿐이다. 그렇게 벤치에 앉아 있는 것도 잠시, 언제나 그래 왔듯 하나둘씩 일어선다.
몸을 풀기 위해 엔드라인 부근으로 모인다. 다른 날보다 많이 나와 있던 사진 기자들에게는 그런 선수들의 움직임이 방해가 된다. 미리 나와 자리를 잡은 자신들이 토박인 게다. 자신들이 움직이는 대신 선수들에게 다른 쪽에서 훈련해 줄 것을 부탁한다. 번거로운 그들의 부탁에 거절하거나 싫은 티를 낼 대전 선수는 없었다. 그들을 피해 콘을 다시 배열해 놓고는 불평 없이 몸을 푼다.
전반전 대전의 득점 기회들은 무위로 끝났지만, 후반전은 달랐다. 브라질리아와 슈바의 2골로 대전은 앞서 나갔다. 대전의 벤치에서 엔드라인 부근에서 몸을 풀고 있던 주승진을 부른다. 승진이! 승진이!
관중의 함성과 서포터들 간의 응원 소리에 벤치의 목소리는 쉽게 묻혀 버린다. 한 두 번 만에 엔드라인 부근까지 가있는 선수들에게 이름이 전달되진 않는다. 벤치의 요란한 수신호를 보고서야, 선수들은 벤치의 호명에 집중한다.
승진이! 승진이!
자신의 이름이 불린 것을 안 주승진이 달린다. 그리고 그는
웃고 있었다. 그의 자리인 왼쪽 측면 수비수인 장현규가 잘 해주고 있었고, 별다른 일이 없다면, 그의 복귀전은 다음으로 미뤄지는 듯하던 차에 갑작스런 호출이었다. 예전에 20살의 양동원이 그러했었다. 처음 홈 데뷔전을 치루던 날, 정식 리그경기는 아니었지만, 배제대 올스타와의 친선 경기에 교체되어 출전할 때, 그와 같이 주승진도 설렘과 기쁨의 미소를 걸고 벤치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여전히 사람 좋은 미소였다.
젖은 트레이닝 복을 벗고, 자신의 자리에 곱게 개어 놓았던 유니폼으로 갈아입는다. 벤치 뒤 W석에서는 그의 분주한 움직임을 알아채고 주승진의 이름을 연호해 주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러던 것이, 갑작스레 그가 자주색 유니폼 위에 다시금 팀 조끼를 덫 껴입었다. 그리고는 조금 전에 있던 엔드라인 부근으로 돌아간다.
대전의 첫 번째 교체 카드는 고종수에게로 돌아갔다. 임영주가 나오고 고종수가 들어간다. 그리고 두 번째 카드마저도
민영기와 김용태의 교체로 돌아갔다.
5월 16일 올림픽 대표팀 예멘 원정길을 마치고 돌아온 김창수가 곧바로 전남전에 교체로 투입되었었다. 예멘에서의 원정 경기를 마친지 3일 만이었다. 언뜻 혹사로 보일 수도 있는 기용이었다.
경기를 마친 기자들 중 몇 명이 김창수를 붙잡았다. 올림픽 대표팀으로써의 소감과 각오를 물어보는데, 쑥스러운 듯 김창수는 기자들과는 눈도 마주치지 못한 채 한쪽 팔로는 제 몸을 감싸며 소곤소곤 얘기한다. 뒤편에서 조금 떨어져 듣고 있자니 무슨 말인지 하나도 들리지 않을 정도였다. 기자의 질문만이 무슨 대화인지 알려주고 있었다. 그러던 중, 한 기자가 오늘의 기용에 대해 물어왔다. 해외 원정 뒤 귀국 후에 바로 경기를 치르자니 힘들지 않느냐는 나름 선수를 생각하는 듯한 질문. 그에 대한 김창수의 대답은
"제가 뛰고 싶다고 했는데요"
좀 전과는 달리, 질문한 기자의 얼굴을 마주보며 분명하고 강한 어세다. 바로 전 쑥스러워 어쩔 줄 모르던 그 모습이 싹 걷혀진 채였다. 김창수를 잘 알고 있는 어떤 이는 그 정도면 나름 화가나 있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한다. 그 사람은 그 자리에 없었으니, 그것이 정말 화가 난 것인지 어쩌지는 모를 일이다. 다만, 자신의 플레이에 대한 칭찬에도 대답을 주저할 만큼 숫기없던 선수가 물러서지 않는 것이 있었다는 것만은 확실했다. 뛰는 것을 참 좋아하는 선수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도 몸은 조금 힘들어도 (경기를) 뛸 수 있는 것이 좋고, 그래서 그런 지금 행복하다는 그의 말이 잘 이해되지 않았다. 살다 보면, 몸이 힘들다는 핑계에, 마음이 힘들다는 핑계에, 달리는 것을 멈추고, 몸을 돌돌 말아 웅크려버리고 만다. 한참을 그리 있어도 괜찮다. 누군가가 깨우치려 들라치면, 벌러덩 배를 내밀고 들어 누워 상대에게 낭패를 입힐 수 도 있다.
시간을 사치스럽게 게으름으로 소비하다가 결국엔, 스스로 자신에게 화살을 돌리고 만다.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 것인지, 그것을 찾는 것조차도 쉽지 않은 삶이다. 그렇다고 해서 축구라는 목표가 있는 축구선수의 삶이 더 쉬워 보이지는 않는다.
예전에 대전의 주장인 강정훈이
"선수에게 게임에 뛰지 못하는 것만큼 괴로운 것은 없어요"
라던 말을 했던 당시에는 그냥 그런가 했었다. 누구라도 자신의 직업에서 인정받지 못하고, 생계를 위한 돈을 벌지 못하고, 누군가에게 뒤처졌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을 때 던져지는 세상의 끝에 떨어졌다는 괴로움일 것이라 생각했다. 강정훈이 주전이 아니었던 것을 본 적이 별로 없었던 탓에 그의 말은 신인선수 시절에 누구나 겪는 담금질의 시간이 조금은 괴로웠더라는 이야기인가보다 했었다.
그런데 출전을 준비하던 주승진의 표정으로 조금이나마 알듯 했다. 주승진은 더 이상 축구 선수로써 적은 나이가 아니다. 그는 처음부터, 대전에 입단하여, K-리거가 되었던 29살 적부터 적은 나이가 아니었다. 그런데도 달리기 위해 자신과의 모험을 걸었다. 많은 이들이 무모하거나 밑지는 도전이라고들 생각했었고, 그가 K-리그에서 뛸 수 있는 햇수에 대해서 넉넉하게 생각하는 이들도 드물었다.
그러던 것이 벌써 5년, 10년이라는 세월의 반이 지났다. 그런데도 여전히 축구는 그를 웃게 할 수 있었다. 게임에 뛸 수 있다는 것에 웃음이 비집고 밀려나오는 것을 막지 못할 만큼 그렇게나 달리고 싶다는 마음을 간직한 채 그들은 몇 년을 살아 온 걸까? 그래서 축구를 위해 달릴 수 있는 지금이 행복하다는 소년이 있고, 게임에 나오지 못하면 마음이 제일 먼저 아프다는 선수도 있는 것이다.
그들이 빛을 밝히는 작은 행복과 웃음에 오히려 그들이 축구를 계속 해나갈 수 있게 해주는 이유가 담겨 있다. 축구가 가져다주는 커다란 부와 명예가 축구를 하는 이유의 전부가 아니었다. 그들이 축구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수많은 것들 중에는 축구가 아니어도 가질 수 있는 것들이 있다. 축구선수가 되지 않았다면 피오렌티나의 바티스투타는 의사가 되거나 혹은 예수가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피치에서 달릴 수 있다는 게 저리도 행복하다고 하니, 그래서 축구 선수가 되었을 게고, 부와 명예를 손에 쥐여주지 못하는 팀이라도 존재의 가치는 충분한 것이다. 경기가 끝난 후 더 많은 기자가 자신에게 달려오지 않아도, 누군가 자신의 이름을 다른 선수보다도 더 크게 불러주지 않아도, 달릴 수 있는 스스로 있으니, 저리도 청렴하게 웃을 수 있구나.
날씨처럼 끈끈하게 이어지는, 삶이라 살아가는 게 아닌 불꽃이라 부를 수 있는 빛을 발하는 그들은 달려가고 있었다.
대전의 마지막 세 번째 교체카드에 드디어 주승진의 이름이 불렸다. 뒤로 밀린 교체 순서에 시무룩하거나, 자신을 주목하고 있는 수많은 시선에 짐짓 점잖은 척 양악 관절에 힘을 줄 수도 있었을 터인데, 여전히 주승진은 웃고 있었다.
고개를 숙여 사람들의 시선을 피하고는 있었지만, 그는 행복하고 즐거워 보였다.
주승진은 이날 1골 1도움을 기록한 슈바와 후반 35분 교체되어 필드로 들어갔다. 여느 때보다 조금은 더 밝은 얼굴로 그는 슈바를 맞이했다. 팀은 2-0으로 이기고 있었고, 3개월여 만에 돌아온 퍼플 아레나에 대전의 관중은 여전히 뜨거웠다.
그가 달려 들어간 피치는 여전히 초록이다. 그리고 그와 함께한 친구들의 유니폼은 여전히 붉은 적자주다.
그에게서 조금은 세월의 자국이 보이는 듯해도, 달라지지 않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축구를 향한 사람들의 마음. 축구장 안에 담긴 치장하지 않는 사람의 마음을 그대로 그의 축구도 담백한 미소를 지으며 달려가고 있다.
* 이 글은 본지에 독점 게재하는 외부 필자의 글로, 내용이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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