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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과 전북의 '은근한 더비'

기사입력 2007.08.25 06:18 / 기사수정 2007.08.25 06:18

박영선 기자

한때, 악명(?)을 떨쳤던 서포터즈들이 있다. 한쪽은 대전시티즌의 자주색 군단, 퍼플크루라 불리는 이들이고, 다른 한쪽은 바로 전북현대모터스의 미친녹색소년(?)들, MGB이다. 상대 서포터, 선수단 혹은 심판진과의 잦은 충돌로 양팀의 서포터가 이름이 오르내릴 때, 정작 양 서포터는 (2002년 이후로는) 충돌한 적이 없다. 오히려 양 팀의 서포터 간에는 서로에 대해 은근한 분위기가 감돈다. 비슷한 시기에 타 팀 서포터들에게 비난 받았던 경험에 의한 동병상련의 일종일 수도 있고, 대전에서 상대팀 서포터와이 충돌이 있던 날, 하필이면 원정경기가 취소된 전북 팀의 팬들이 내려가던 길에 근접한 대전월드컵 경기장을 찾으면서 당사자로 오인되었던 일에 대한 연대책임의식일 수 도 있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도 양 팀의 팬들이 대전과 전북의 경기를 반기는 것은 두 팀의 경기에서 아드레날린 분비를 자극하는 양팀 선수들에 힘의 충돌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양팀 모두 최윤열과 최진철로 대표되는 장신의 억센 수비수들을 보유하고 있으며, 상대 공격수들을 쉽사리 놓아주지 않는다. 유니폼이 찢어질 듯 거칠게 공격수를 다루는 것은 다반사. 득점을 위한 공격이 아닌 수비여도, 육체와 육체가 충돌하며 일어나는 굉음에 바로 근접한 곳에서 들을 수 있는 최적의 구조물이 또한 대전월드컵경기장, 퍼플 아레나이다.

바로 코앞에서 푸른 잔디가 펼쳐져 있고 선수들이 손에 잡힐 듯 가까운 이 구조물에서 관중석과 가장 가까이 하며 달리는 것은 윙플레이어들이다. 윙플레이어들의 성지인 대한민국인만큼 양팀은 모두 준수한 윙 플레이어들을 보유하고 있다. 특히나, 이번 올림픽 대표팀에서 함께 뛴 김창수와 최철순이 출전할 경우, 두 선수의 자웅을 겨뤄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팀에서는 오른쪽과 왼쪽으로 균형을 맞추어 달리지만, 각각의 소속팀에서는 오른쪽과 왼쪽이기에 서로 맞부딪쳐야 하는 것이 두 사람의 운명. 대표팀에서의 수비적이었던 모습과는 달리 두 선수 모두 자신의 자리에 돌아와 보여줄 공격적인 플레이가 기대된다. 큰 대회를 치르고 돌아온 어린 선수들의 성장세를 지켜보는 것 또한 양팀 팬들의 즐거움이 될 것이다.

시즌 초 무승의 대전에 단비 같은 첫 승을 보태주었던 것은 전북이었지만, 염기훈과 트레이드 된 정경호가 합세하며, 만만치 않은 전력을 구축하였다. 더욱이 경북의 까보레와 함께 득점 선두를 달리고 있는 스테보는 17경기 11득점에 지난 2경기 연속골을 기록 중이다. 이에 반해, 대전의 주포인 데닐손은 집중된 마크에 시달리며 연속 무득점 상태이고, 슈바와 브라질리아 역시 인천전에서 골에 성공하지 못한 채 0점패를 기록하고 말았다.

대전은 지난 4월 15일 전북과의 경기에서 데닐손의 2골이 있다. 그날의 득점은 데닐손의 장기인 드리블을 활용할 수 있는 공간에 대한 前 최윤겸 감독의 계산이 맞아떨어졌기 때문. 전북 지역에는 전북 수비수들만을 남겨 놓은 채, 대전의 입장에서는 공격지역에 드리블할 수 있는 공간의 여유를 유도한 것이다. 그날 대전은 수비적인 공간을 구축하며, 공격라인을 최대한 아래로 끌어 내려놓아 데닐손을 위한 공간을 확보해나갔다.

하지만, 그때와는 양팀 모두 많은 면이 달라졌다. 염기훈이 아직 전북의 선수였을 적, 염기훈과 전북은 전북의 염기훈이 아닌, 염기훈의 전북이었다. 염기훈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전북의 공격 시스템은 거칠고 노련하니, 대인마크에 능숙한 대전의 수비수들에게는 공격의 맥만을 집어 막아주면 되는, 나름 수월한 상대라고도 할 수 있었다. 더군다나, 리그초기에 만난 전북의 스테보는 아직 적응 중이었고, 오히려 대전의 신예 수비수 김형일의 악착같고 파워넘치는 수비력을 돋보이게 해주는 역할 뿐이었다. 배수진을 친 대전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올라가 있던 전북의 미드필더들의 수비에 대한 커버플레이도 유연하지 못했다.

그러던 것이, 이후 K-리그에 완벽하게 적응한 스테보는 대구와의 경기에서는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진가를 들어내었다. 염기훈과 트레이드 된 정경호는 활동량과 속도로 전북 선수들은 빠른 공수전환에 한 몫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무시할 수 없는 공격의 무게감이 있다. 공격이나 수비에서 기여도가 낮은 대전의 미들은 동료 공격수들을 고립시키거나, 미들지역에 대한 부담감을 공격수들에게도 공유하게 한다. 김호 감독이 바라는 미드필더인 권집이 김호 감독의 상대팀으로 뛰게 된다는 것이 매우 아이러니하지만, 그와 같은 패싱 능력이 탁월한 미드필더를 미리 막지 못한다면, 결정력에 속도와 활동량까지 겸비한 전북의 공격진에 의해 대전은 무려 홈에서 수세적인 모습을 보이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제자의 팀을 상대해야 하는 대전의 김호 감독과 드디어 스승 앞에 감독으로써 당당히 마주하게 된 전북의 최강희 감독과의 역학관계 또한 이날 카메라 플래시를 받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20세기 막판, 수원삼성의 감독과 코치였던 두 지도자는 21세기가 되어서는 감독과 감독으로 만나게 되었다. 상전벽해의 세월 속에 각자의 가슴에 새겨진 팀의 이름도 달라졌다. 서로서로 잘 알고 있는 만큼, 호랑이와 용의 싸움에서는 기세를 잡는 것이 중요해 보인다. 대전의 선수들 또한 전북 선수들에 대해서는 자신감이 있으며, 상승세를 타고 있는 전북 또한 기가 눌릴 태세는 아니다.

가까운 지역에 인접해 있다는 이점과 양 팀이 서로 만나면 비록 대전팬들에게 더 즐거운 경기가 많았지만, 최근 몇 년 동안 좋은 게임을 해왔던 장점들에도 불구하고, 팀의 인지도가 조금씩 하락하며, 양 팀의 경기가 더비로 올라서는 데는 아직 힘이 부치는 상태이다. 하지만, 두 팀의 경기라는 이유만으로 은근히 경기의 내용을 기대하는 이들이 있고, 8월 26일의 경기 또한 박빙의 게임이 될 것이라 예상된다.

극단적인 대립의 더비관계는 아니더라도, 은근하게 서로에 대해 신경 쓰이는 면이 많은 두 팀. 조윤환, 최윤겸 감독 체제에서는 니폼니쉬 감독의 제자간의 자존심의 대결구도를 보여 왔던 것이 후임 감독 간에는 스승과 제자간의 사제의 대결구도로 까지 이어지며, 오히려 예전보다도  자존심이 더욱 신경 쓰이는 사이가 되어 버렸다. 물러서는 자 없이 한여름밤을 후끈하게 달아 올릴 하지만, 은근한 두 팀의 난타전을 기대해 본다.

 



박영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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