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최종편집일 2024-11-26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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껍데기집 아르바이트에서 한국시리즈 투수로 [엑:스토리]

기사입력 2021.12.28 19:00 / 기사수정 2021.12.28 21:41

김현세 기자

(엑스포츠뉴스 김현세 기자) "그때 '나는 야구 아니면 할 줄 아는 게 없나' 싶었죠."

권휘(21, 두산 베어스)는 초등학교 시절 야구 꿈나무 육성 프로그램 '날려라 홈런왕'에 지원했었다. 그런데 두 차례 면접 끝에 탈락했다. 어린 마음에 "나도 꼭 TV에 나오고 만다"는 오기가 생겼다. 그 길로 아버지에게 "야구부에 보내 달라"고 말했다. 엘리트 체육 코스를 밟으며 야구 명문 덕수고에 진학했는데, 이번에는 신인 드래프트에서 외면당했다. 부모님은 대학에 가기를 바랐지만 그는 모험을 택했다. 

"대학은 분명 안정적인 선택지였지만, 한편으로는 호주 리그에 가 보고 싶었다. 그때 부모님과 마찰도 있었고 집을 나가기도 했다. 결국 부모님께서 내 편이 돼 주셨다. 호주에 있는 동안 정말 뜻깊은 시간을 보냈다. 그 시절이 없었다면 프로야구선수가 되지 못했을 거다. 그곳에서 내 수준을 알고 왔다. '나는 선수도 아니구나'라고 생각하며 귀국했다. 돌아 온 뒤에는 아르바이트를 해 가며 고쳐야 할 점을 싹 다 고쳤다. 그리고 얼마 뒤 두산에 육성선수로 입단하게 됐다."

권휘는 "야구하면서 돈 벌 수 있다는 게 정말 행복하다"며 웃었다. 야구를 하는 동안에는 전혀 알지 못했던 사회를 겪어 봤기에 더욱 절실했다. 호주에서 귀국한 뒤에는 편의점 등 여러 곳에 이력서를 넣어 봤지만 경력이 없다는 이유로 떨어졌다. 당시에는 "어느 곳이든 경쟁하기 쉬운 곳은 결코 없었다"며 "'나는 야구 아니면 할 줄 아는 게 없나' 싶었다"고 생각했다. 어렵게 돼지 껍데기 전문점에서 일할 수 있었던 그는 병행하던 야구에도 더욱 열중할 수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입단한 두산에서도 경험은 좋은 자양분이었다. 올 시즌 개막 엔트리에 들지 못한 권휘는 지난 4월 1군에 등록됐는데, 한 경기 만에 2군행을 통보받았다. 그는 "1군 등록 사흘째 처음 등판했는데 1이닝 2실점하고 바로 내려갔다"며 "그게 큰 동기부여가 됐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돌아 봤다.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재정비하고 8월 말 다시 등록된 뒤에는 단 한 번도 내려가지 않았다. 올 시즌 평균자책점 2.66으로 가능성을 보인 그는 생애 첫 한국시리즈에서도 자신 있게 공을 던졌다.

김태형 감독은 "권휘가 자신감은 우리나라 최고"라며 기특해했었다. 권휘는 "감독님께서 내게도 '자신감은 세계 1등이다'라고 웃으면서 장난치신다"며 "자신감도 자신감이지만, 마운드 위에서 조금이라도 부정적인 생각을 하게 되면 내게 좋을 게 단 하나도 없더라. 물론 사람이 매번 자신감 넘칠 수는 없지 않나. 게다가 나는 또 구위가 엄청난 투수가 아니다. 그래서 더 악과 깡으로 던지려 노력한다"고 이야기했다.

자신감만큼이나 감정 표출도 호쾌하게 한다. 권휘는 "가끔 눈치를 볼 때도 있다"며 웃더니 "사실 프로에 어렵게 입단했다 보니 마운드 위에서 더욱 절실하다. 그만큼 더 집중하게 돼 삼진 잡는 게 정말 행복하더라. 솔직히 점수 차가 크든 작든 그 긴장되는 순간에 '여기서 삼진 잡으면 포효해야지'라고 생각하는 건 절대 아니다. 다만 감정을 표출할 때 희열이 있다. 형들은 '엄청 웃기다'며 내 투구 폼도 따라하지만, 그래도 너무 행복했다. 팬 분들과 기쁨을 함께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좋지만, 내년부터는 상황을 봐 가며 세리머니하고 싶다. 그런데 그보다 일단 타이트한 상황에 등판할 수 있는 선수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권휘는 "내년에도 팀에 보탬이 되고 싶은 건 당연하다. 내년에는 더 많은 이닝과 투구 수를 던지며 풀타임을 소화할 수 있는 체력을 만들겠다. 감독님께서도 '체력을 보완해 오라'고 말씀해 주셨다. 새겨 듣고 열심히 훈련하고 있다. 더 좋은 선수가 되도록 지금 이 시기를 허투루 보내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사진=엑스포츠뉴스DB

김현세 기자 kkachi@xport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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