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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가는 그를 위한 변명

기사입력 2007.07.31 09:43 / 기사수정 2007.07.31 09:43

김경주 기자

    

[엑스포츠뉴스=김경주 기자] 히딩크 감독 이후 한국 국가대표팀의 수장 자리는 항상 위태롭기만 했다.  쿠엘류-본프레레-아드보카트 - 베어벡에 이르기까지 항상 등장은 화려했지만, 그 끝은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그리고 그 끝 또한 빼다 박은 듯 비슷하다.

일단 빈자리엔 누구나 잘 알 만한 외국인 명장의 이름이 오르내린다. 축협에서도 접촉 중, 이라는 청신호를 보내며 이에 맞춰 언론은 확정이라도 된 양 다투어 명장 소개에 이른다. 그러나 그런 감독들이 한국 땅을 밟은 일은 없다시피 했다.

과도한 몸값과 까다로운 조건을 내세워 처음 그 들이 데려오마, 장담했던 감독이 아닌 다소간엔 엉뚱하기까지 한 감독이 한국 대표팀을 맡게 된다. 그리고 이들은 한국에 도착함과 동시에 성적을 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채 반년도 지나지 않아서 언론의 집중포화를 맞아야 하고 또 떠나야 만하기 때문이다. 자기 자신이 가지고 있는 축구의 신념 따위는 보여줄 여력조차 없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한국 국가 대표팀처럼 단기간에 확실한 성적을 내줘야 하는 팀도 드물다. 그렇게, 그 앞에 섰던 모든 이들과 마찬가지로, '지한파', 누구보다 한국 선수를 잘 안다는 베어벡 감독이 떠난다.

처음 베어벡 감독이 새 감독으로 내정되었을 때의 반응은, 지금만큼 부정적이지 않았다. 앞서 말했던 것처럼 베어벡은 '지한파' 감독이라 불릴 정도로 한국 축구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외국인 감독이었고 대한민국 축구를 천국까지 끌어올린 히딩크 감독이 인정한 지도력을 가진 인물이 아니었던가. 

그가 지휘봉을 잡은 지 1년 2개월. 자신의 모든 신념을 보여주기엔 그리 긴 시간이 아니었다. 짧은 기간 동안에도 그는 대표팀에 젊은 피를 대거 수혈해 나가며 세대교체를 노렸다. 강민수, 김치우, 염기훈, 이근호 등 어리고 능력 있는 선수들을 당장 승리보다는 긴 미래를 내다보고 발탁했고, 포백 수비라인에 모두 젊은 선수들을 채워 넣는 모험을 감행했다. 이러한 시도는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둬, 당장 아시안컵에서도 (부진한 공격에 가려 빛을 보지는 못했지만) 6경기 3실점으로 상대의 공격을 효과적으로 틀어막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베어벡이 조건 없는 옹호를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가 4-2-3-1이라는 어찌 보면 상당히 '재미없는' 전술을 택한 데에는 재미를 포기하더라도 얻을 수 있는 절대적인 '승리'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대표팀은 수비를 제외하고는 헤매는데 급급했다. 전술에 녹아들지 못한 공격진은 침묵에 침묵을 거듭했다. 원톱으로 나선 조재진은 출전 경기 전부를 통틀어 슈팅 1개에 그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그가 고집에 가까울 정도로 신임하고 출전시켰던 것에 비하면 너무나도 보잘것없는 활약이다.

어쩌면 베어벡은 그가 6년 가까이 봐 온 대한민국 선수들을 그리고 여론을 과대평가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아직은 그 들이 완벽하게 소화하기 어려운 전술을 내놓았던 것이고 그것을 소화할 수 있도록 짜맞춰 나가는 과정에서, 더 이상 기다리지 못한 여론과 언론에 치여 결국 스스로 모든 것을 포기하고 떠나가는 것일지도 모른다. 

지금 대한민국 축구엔 '기다림'이라는 미덕이 없다. 당장 눈에 보이는 성과가 아니고서는 인정하지 않는 것은 물론 당장 ‘책임’을 추궁한다. 히딩크가 만들어 놓은 이 대한민국 축구의 천국이, 9개월 동안의 철저한 합숙과 선수 선발과정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것을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다만, 그가 만들어 놓은 구름 위의 행복만이 기억에 남아, 다른 누군가에게도 같은 것을 요구할 뿐이다. 비단 베어벡 뿐만이 아니다. 이미 그 앞에도 세 명의 이방인이 똑같은 대우를 받고 한국을 떠나지 않았는가? 지금은 다른 누가 와서 이 자리를 맡는다 치더라도 비슷한 상황이 펼쳐질 것이다. 시작과 동시에 최상의 결과를 원할 것이고, 멀리 보기보다는 당장 한 경기 승리를 위한 근시안적인 선수 선발을 원할 것이다.

또한, 우려스러운 것은 이러한 흔들기에 감독을 지탱하고 보호해줘야 할 축협이 앞장서서 감독을 흔들고 있다는 점이다. 그 들이 보호해야 할 것은 자신들이 직접 접촉하고 선별해서 뽑은 감독이지, 여론과 언론이 아니라는 것을 축협은 아직 깨닫지 못한 듯하다.

어찌되었든 이제 대표팀은 새 감독을 맞아야 한다. 새 감독을 맞아서, 또 다시 새로운 대표팀을 구축해 나가야 한다. 새로운 전술과 새로운 선수 구성을 받아들이는 데는 또 얼마간의 적응 기간이 필요할 것이고 초반은 또 삐걱댈지도 모른다. 또 급하게 옷을 벗으라 외칠지 모른다. 그러나 이제는 조금 더 진중하게 감독을 선발하고 그가 자신의 신념을 충분히 펼칠 수 있도록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 지금 우리는 같은 장면을 몇 번이고 반복해 보고 있지 않은가.

부디, 한국을 떠나는 베어벡의 초라하고 씁쓸한 뒷모습이 이 지겨운 상황의 마지막 반복이기를 바래본다.



김경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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