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07.07.10 20:32 / 기사수정 2007.07.10 20:32
[엑스포츠뉴스=박현철 기자] 형식적인 '계도'만이 아닌 제대로 된 '발본색원'을
여자농구계를 넘어 여자 스포츠계를 뒤흔들었던 박명수 전 우리은행 감독 성추행 사태는 가해자의 처벌로 일단 급한 불은 끈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열악한 여자 스포츠계의 현실이 극단적으로 나타나 있다. 우리은행 측이 선수단 운영 전권을 박 전 감독에게 승계한 것이 1차적인 원인이다.
선수와 감독이 아닌, 직원과 고용주?
박 전 감독은 유수종 전 감독 아래에서 15년가량 코치로 일했던 사람이다. 회사 측에선 우리은행 선수단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고 고대하던 우리은행의 우승을 이끈 그에게 선수단 운영 전권을 넘겼다.
선수와 감독이 아닌 직원과 고용주의 관계나 마찬가지로 변한 것이다. 우리은행은 예기치 못한 사태에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 셈'이 되었고 선량한 지도자들까지 도매금으로 묶여 버렸다.
그러나 문제는 이에 그치지 않는다. 익명의 설문조사, 성희롱 예방 교육 등 형식적인 '계도'만이 아닌 본격적인 '처우 개선'이 필요하다. 절차적인, 때에 맞춘 형식적인 행사보다 비시즌 훈련기간에도 선수단과 프런트, 실무진 간의 유대가 필요하다.
오랜 합숙 생활 속에 선수들은 안과 밖으로 압박을 받으며 생활한다. 조직력이 강화되고 팀 구성원 간의 유대감이 돈독해 지는 등의 장점도 있지만 그만큼 폐쇄적으로 변해 제 목소리를 내기 힘들다. 프런트와 선수단 간의 원활하고 긴밀한 관계가 이어질 때 선수들의 멋진 플레이와 구단의 성적 향상이 나올 것이다.
'그녀'들의 빠듯한 샐러리캡
2006년 안산 신한은행은 센터 정선민을 연봉 2억 100만 원에 데려오면서 심장이상이 발견된 연봉 9천만 원의 센터 강지숙(현 금호생명)을 임의은퇴시키고 연봉 7천만 원의 가드 박선영을 부천 신세계로 이적시켰다. 8억의 빠듯한 샐러리캡 때문.
열심히 뛴 선수가 보상받는 자유계약제도(FA)는 열심히 뛴 일부 선수를 불안하게 한다. 강지숙과 박선영은 팀 내 주전급 선수로 활약했던 선수들이었다. 그러나 더 큰 대어가 들어오면서 설 자리를 잃고 다른 둥지를 찾아가는 신세로 전락했다.
여자배구 쪽은 더욱 심각하다. 2006~2007' V 리그 종료 후 FA가 된 정대영과 이숙자는 GS 칼텍스로 둥지를 틀며 1억 이상의 연봉을 보장받았다. 여자배구 1팀의 샐러리캡은 7억.
정대영과 이숙자의 전 소속팀인 현대건설은 이미 FA 한유미를 잔류시키는데 1억 2천만 원을 소비했다. 두 선수가 잔류했다 쳐도 세 명의 연봉으로 3억가량이 들어간다. FA 후에는 신인 드래프트가 열림을 감안, 나머지 4억으로 다른 10명의 연봉을 지급하려면 여력이 많지 않다.
FA 여파로 설 자리를 잃고 여자배구를 떠난 선수들이 많다. 현대건설에선 궂은 일을 도맡던 박선미가 은퇴했다. 국가대표 세터 김사니의 입단으로 설 자리를 잃었던 KT&G의 주전 세터 출신 이효희는 일방적인 구단제시액에 어쩔 수 없이 계약한 후 흥국생명으로 이적했다.
나름대로 좋은 활약을 하고도 삭감된 연봉을 제시받으며 울며 겨자먹기로 계약하거나 은퇴를 택한 선수가 많다. 이는 여자농구 쪽도 마찬가지다. 연봉총액상한을 높이고 제대로 된 연봉 고과를 통해 제대로 된 연봉책정을 하는 등 본격적인 처우 개선이 없다면 선수생명을 위협받는 피해자는 더 많이 생겨난다.
유사 사례 방지만이 아닌 '여성이 운동하기 좋은' 환경을
이번 사태의 피해 선수는 여자농구를 이끌어 갈 미래의 대들보로 손꼽히던 선수다. 선수 생명을 볼모 잡혀 제 기량을 떨치지 못할 뻔했던 그녀는 용기를 갖고 '제2의 피해자'를 만들지 않기 위해 자신이 나서 가려진 실상을 밝혔다.
이전에도 선수가 구타당하는 비슷한 사례가 있었으나 가해자 처벌 등 사태 해결에만 급급, 제대로 된 처방을 내리지 못한 것이 이런 비극을 낳은 것과 같다.
이 사태에 초점을 맞추어 유사 사례가 일어나지 않게 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와 동시에 원론적이고 상투적인 해결만이 아닌 실생활에서 그녀들의 애로 사항을 차근차근 고쳐나가 '여성도 운동하기 좋은' 곳으로 만들어 가는 것이 가장 중요하지 않을까?
<사진-한국 여자프로농구 연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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