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 김정현 기자) “기다리는 게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언젠가는 기회가 온다고 믿었습니다. 그 기회가 왔을 때, 절실하게 임한다면 당연히 좋은 결과가 돌아올 것입니다.”
광주FC 골키퍼 윤평국이 27라운드 성남과의 경기 후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윤평국은 이날 성남의 결정적인 슈팅을 여러 차례 막아내며 광주의 무실점 승리와 함께 팀의 3연승을 이끌었다.
윤평국은 2013년 K리그 신인드래프트에서 5순위로 인천에 입단했지만 두 시즌 동안 엔트리에 단 한 번도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이후 윤평국은 2015년 군 입대를 택했고, 그해 3월 21일 상주상무 소속으로 경기 명단에 처음 이름을 올렸다. 하지만 실제로 경기에 출장하는 데까지는 또다시 213일이 더 걸렸고, 10월 20일 안양전에서 마침내 K리그 무대에 데뷔했다.
윤평국은 전역 후 광주로 둥지를 옮겼으나, 2017시즌에도 당시 광주의 주전 골키퍼였던 윤보상의 백업으로 세 경기를 뛰는 데 그쳤다. 그러던 2018시즌 윤보상이 군에 입대하며 윤평국은 여섯 시즌 만에 주전 자리를 꿰찼고, 24경기에 나와 26실점을 하며 안정적인 모습을 보였다.
이를 바탕으로 이듬해인 2019시즌에도 광주의 골문을 지켰고, 26경기 24실점으로 광주의 K리그2 우승에 이바지했다. 하지만 2020시즌 K리그1에 복귀한 광주는 윤평국과 이진형이 각각 14경기, 13경기에 출장하며 무한 경쟁체제에 돌입했다. 올 시즌에는 친정팀 광주로 돌아온 윤보상이 주전 골키퍼로 낙점됐고, 윤평국은 다시 벤치를 지켜야만 했다.
언제 올지 모를 기회를 잡기 위해 노력한 윤평국에게 다시 한번 기회가 찾아왔다. 윤평국은 지난 25라운드 인천전부터 선발로 출장했고, 이후 세 경기에서 단 한 골만 허용하며 광주의 3연승을 이끄는 등 자신의 가치를 증명했다.
골키퍼는 팀에서 유일한 포지션으로, 어렵게 프로팀에 입단하더라도 주전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또다시 바늘구멍과 같은 경쟁을 거쳐야 한다.
2013시즌부터 2021시즌 28라운드 종료 현재까지 K리그1 공식경기의 출전선수명단에 단 한번이라도 이름을 올린 적이 있는 선수의 수는 총 1,380명이다. 포지션별로는 FW가 135명, DF가 448명, MF가 402명, GK가 135명이었다.
이 1,380명의 선수들 중 대기 명단에 이름을 올린 적은 있지만 실제 경기에는 한 번도 나서지 못한 선수는 포지션별로 GK가 49명(약 36%)로 가장 많았고, DF는 43명(10%), MF는 28명(7%), FW는 17명(4%) 순이었다. GK는 다른 포지션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은 비율인 약 1/3이 넘는 선수들이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출장기회를 잡기 위해 구슬땀을 흘리고 있는 것이다.
또한 2013시즌부터 2021시즌 28라운드까지 K리그1에서 경기 중 교체 투입은 총 11,738번 있었다. 그런데 이 중 GK 교체는 46번에 불과했고, 특히 27라운드만 치러진 지난 2020시즌에는 GK 교체 투입이 단 한 차례도 없었다. 골키퍼에게 돌아오는 출장 기회 자체가 적고, 그 적은 기회마저도 소수의 주전급 선수들에게 집중되어 있다는 것이 수치로 드러난다.
인내와 도전 끝에 기회를 잡은 백업 골키퍼들을 종종 찾아볼 수 있다. 최근에 널리 알려진 사례는 울산의 2020 AFC 챔피언스리그(ACL) 우승을 이끈 골키퍼 조수혁이다. 조수혁은 주전 조현우가 ACL에 불참하며 기회를 잡았고, 조별리그 다섯 경기 5실점, 토너먼트 네 경기 2실점을 기록하며 무패우승의 일등공신이 되었다. 조수혁은 최근 울산과 3년 재계약에 성공했다.
수원FC ‘원클럽맨’ 박배종은 지난 2020시즌 K리그2에서 부상을 당한 유현을 대신해 하반기 11경기에 선발로 출장했고, 11실점, 클린시트 6회 등을 기록하며 승격에 일조했다. 현재 강원의 주전 골키퍼인 이범수는 2010년 전북에서 프로 데뷔 후 여러 팀을 오가며 자리를 잡지 못했지만, 2017년 경남으로 이적해 21경기 18실점으로 경남의 승격을 이끌었다.
포항의 수문장 강현무도 최초 명단 등록 후 476일 만에 데뷔했고, 지난해 국가대표로 뽑힌 이창근(제주) 역시 첫 경기를 뛰는 데 328일이 걸렸다. 한국프로축구연맹 전산상 검색 가능 범위내에서 데뷔 기간이 가장 길었던 골키퍼는 1999년 제주(당시 부천SK)에 입단한 김지운이다. 김지운은 1999년 4월 24일 엔트리에 처음 이름을 올린 뒤 무려 2,528일 뒤인 2006년 3월 26일 그라운드를 밟았다.
자신과 같은 상황의 동료들을 응원한 윤평국의 한마디는 지금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을 많은 K리거들에게 희망이 됐을 것이다. 그들의 절실함과 그들이 흘리는 땀을 응원하는 팬들의 모습은 스포츠가 우리에게 선사하는 또 하나의 감동 포인트다.
사진=프로축구연맹
김정현 기자 sbjhk8031@xport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