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 김지한 기자] '아시아 최대 스포츠 축제'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이 12일 저녁(한국시각) 개막한다. 45개국 1만4천여명의 선수단이 참가해 역대 최다 규모로 치러질 이번 대회에서 한국 역시 1천13명의 선수단을 파견, 4회 연속 종합 2위를 목표하고 있다.
지난 1951년 인도 뉴델리에서 처음 대회가 열린 이래 한국은 아시안게임에서 모두 7번이나 종합 2위를 차지했다. 1966년 제5회 방콕 아시안게임에서 처음 2위에 오른 뒤 1986년 서울 아시안게임부터는 단 한 차례(1994년 히로시마)를 제외하고는 2위를 놓친 적이 없을 만큼 아시아 스포츠 강국의 위상을 보여줘 왔다.
역대 아시안게임에서 한국이 거둔 최고 성적은 2002년 부산 대회였다. 당시 한국은 금메달 96개, 은메달 80개, 동메달 84개를 목에 걸며 모두 260개의 메달을 획득했다. 1986년 서울 대회에서는 금메달 93개를 따내 94개를 획득한 중국에 단 한 개차로 뒤져 아쉽게 종합 우승에 실패하기도 했다.
60년을 자랑하는 역사만큼이나 한국 스포츠사(史)에 길이 남을 명승부도 많았다. 1982년, 2002년 대회에서는 한국 농구가 중국을 극적으로 따돌리고 우승을 차지해 농구팬들의 열렬한 환호를 받았다. 두 번 모두 객관적인 실력에서 중국에 뒤졌지만 끈질기게 물고 늘어진 끝에 대역전극을 이뤄내며 기분좋게 우승을 거두는데 성공했다. 또 1986년 대회에서는 남자 탁구 단체전에서 5시간 20분 대접전 끝에 마지막 주자였던 안재형의 맹활약으로 중국을 5-4로 꺾고 드라마같은 금메달 장면을 연출해냈다.
'영원한 맞수' 한일 라이벌전도 많았다. 1994년 히로시마 아시안게임 축구 8강전에서는 한국이 황선홍의 2골에 힘입어 3-2 짜릿한 승리를 거뒀다. 승부를 결정짓는 패널티킥 골을 성공시킨 뒤 재치있는 '어퍼컷 세레머니'를 펼친 황선홍의 모습은 당시 반향을 불러 일으키기도 했다. 또 이 대회 마지막날에 열린 남자 마라톤에서는 황영조가 일본의 하야타를 꺾고 우승을 차지하며 원폭에 희생당한 징용 한국인들의 한을 조금이나마 풀어냈다.
또 1998년 방콕 아시안게임에서는 럭비 대표팀이 일본을 7인제, 15인제에서 모두 우승을 차지하며 당시 IMF 구제금융으로 실의에 빠진 국민들에 새로운 희망이 되기도 했다.
아시안게임이 배출한 스타는 곧 한국 스포츠의 스타로 연결됐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다. 1970년과 74년 대회에서 연달아 수영 2관왕에 오른 조오련을 비롯해 1982년 3관왕, 1986년 2관왕에 올랐던 '아시아의 미녀' 최윤희, 1982년과 86년 남자 200m에서 2연패를 달성한 장재근 등은 아시안게임에서 나온 '스타 중의 스타'였다.
그중에서도 1986년 여자 중장거리 3관왕을 차지한 임춘애는 단연 돋보였다. 대회 전까지만 해도 이렇다 할 주목을 받지 못했던 임춘애는 여자 800m에서 1위로 들어온 선수의 실격으로 '행운의 금메달'을 따낸 뒤, 1500m, 3000m에서 뛰어난 실력으로 금메달을 목에 걸며 혜성같이 스타로 등장했다. 어려운 가정 환경에서 꿈을 키웠던 그녀의 이야기는 당시 엄청난 반향을 불러 일으키기도 했다.
구기 종목에서는 야구 드림팀과 핸드볼을 빼놓을 수 없다. 1998년 사상 첫 금메달을 위해 박찬호라는 메이저리거까지 불러들이는 등 프로 선수들 위주로 구성됐던 '야구 드림팀'은 보기 좋게 금메달을 따내 국민들의 환호를 받았다. 또 여자 핸드볼은 1990년 첫 선을 보인 이후 단 한 번도 빼놓지 않고 우승을 차지하며 전승 우승 신화를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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