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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다메리까!] ① 쿠스코, '잉카의 심장'이자 페루 축구의 자존심

기사입력 2010.10.27 14:33 / 기사수정 2010.10.27 15:12

윤인섭 기자

 [엑스포츠뉴스=윤인섭 기자의 수다메리까!] - 풋볼 아메리까노(9)

  

우리에게 페루는 '잉카'란 단어로 대변된다.

현재 페루의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중심지는 명실상부 태평양 연안의 리마에 집중됐지만, 우리에게 더 익숙한 이름은 페루의 수도가 아닌, 잉카의 옛 수도 쿠스코이고 ‘페루’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쿠스코 근교의 신비로운 잉카 유적, 마추픽추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잉카의 고도' 쿠스코는 단지 과거만 담고 있는 것이 아니다. 오늘날 인구 50만 규모의 도시로 성장, 페루 '7대 도시' 중 하나가 되었고 중심가에는 페루에서 가장 세련된 클럽들이 성황을 이룬다. 그리고 도시 중심에서 약간 동쪽에 있는 완착지구에는 페루에서 세 번째 규모의 잉카 가르실라소 경기장(42,000석)이 자리한다.
 
잉카 가르실라소 경기장의 주인은 현재 페루 1부리그 소속의 클럽 씨엔씨아노이다. 지난 코파 수다메리카나(코파 리베르타도레스에 이어 두 번째 권위의 남미 클럽 대항전) 2003대회에서 아르헨티나 강호, 리베르플라테를 꺾고 우승을 차지, 페루 축구 역사상 유일한 남미 챔피언에 오른 클럽이다.
 
비록 씨엔씨아노는 리마의 3대 클럽(우니베르시타리오, 알리안사, 스포르팅 크리스탈)에 밀려 국내리그에서 단 한 차례도 정상에 오르지 못했지만, '잉카의 후예(씨엔씨아노의 별칭)'들은 리마 클럽들이 두 번이나 실패한 남미 제패에 성공, 페루 축구의 자존심을 세웠다.
 
이번 [풋볼 아메리까노]의 주제는 '잉카의 심장' 쿠스코이다. 오늘날 페루에서 쿠스코가 가지는 의미, 그리고 페루 축구사의 한 획을 그은 쿠스코의 씨엔씨아노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을 갖겠다.
 

1. 아메리카의 로마, 쿠스코  
 
12세기경, 잉카의 초대 황제 망코 카팍이 안데스 산맥 깊숙한 곳에 위치한 해발 3,300m의 벌판에 도읍을 정한다. 그것이 바로 남미 최초의 도시, 쿠스코의 출발이자 '태양과 황금의 문명' 잉카 제국의 시작이다.
 
쿠스코를 기점으로 활발한 정복 사업을 펼친 잉카 제국은 16세기에 이르러 지금의 에콰도르, 페루, 칠레, 볼리비아를 아우르는 남-북 3,000km, 동서 700km의 대제국을 형성했다. 잉카의 위세에 맞게, 수도 쿠스코 역시 인구 100만을 헤아리는 대도시로 발전했다. 당시 유럽 최대도시였던 파리, 나폴리, 이스탄불의 인구가 고작 15만이었음을 고려했을 때 그 규모는 엄청난 것이었다.
 
그러나 1533년, 프란시스코 피사로에 정복당한 쿠스코는 철저히 파괴된다. 거대한 신전과 왕궁의 자리는 식민지 풍의 화려한 건물로 대체되었고 도시를 장식한 각종 금은보화는 잔악한 스페인 군대의 약탈에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비록 스페인 군대에 정복당한 이후, 화려한 식민지 풍의 도시로 탈바꿈했지만, 여전히 쿠스코 거리 곳곳의 돌담에서는 잉카의 숨결을 느낄 수 있다.
 


어떤 점에서는 스페인의 식민 지배 흔적이 쿠스코의 볼거리를 더욱 다채롭게 하기도 한다. 스페인 양식과 잉카의 양식이 절묘하게 조화된 것이야말로 쿠스코의 가장 큰 특징이기 때문이다. 또한, 조금만 시내를 벗어나면 잉카 제국의 신비로운 유적을 마음껏 감상할 수 있다는 것도 쿠스코를 더욱 빛나게 한다.
 
쿠스코는 지난 1983년,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에 등재되어 오늘날 '아메리카의 로마'란 별칭으로 통한다. 페루사의 상징적인 공간으로 오늘날 페루의 정체성이 깃든 장소이며 지난 2007년에는 아메리카 대륙의 문화적 수도로 선정, 라틴 아메리카를 대표하는 역사적 유적지가 되었다.    
 
그 명성만큼, 쿠스코는 페루에서 가장 많은 관광객이 찾는 명소이다. 연간 백만 이상의 관광객이 쿠스코를 방문하며 이들 관광객의 지출은 페루 경제를 지탱하는 가장 중요한 수입원이 된다.
 
2. 페루 축구의 불명예
 
비록, 월드컵에 모습을 보인지 30년이 다 되어가지만, 페루는 한때 남미 무대를 호령하던 축구 강국이었다.

자국에서 열린 1939년 코파 아메리카를 제패했고, 홈 앤 어웨이 방식으로 치러진 1975년 코파 아메리카 대회에서는 페루 축구의 불세출 스타, 테오필로 쿠비야스를 앞세워 두 번째 남미 정상에 오르는 기쁨을 맞이했다.
 
또한, 1974년 서독 월드컵과 1978년 아르헨티나 월드컵에서 8강에 진출, 세계 축구계에도 페루 축구의 실력을 증명한 바 있다.
 
그러나 대표팀이 이룩한 업적에 비해, 페루 국내리그의 대외적 업적은 한없이 초라하기만 하다. 페루 리그는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1972년 대회의 우니베르시타리오, 1997년 대회에의 스포르팅 크리스탈이 이룩한 준우승이 남미 클럽 대항전에서 이룩한 최고 성적이다.
 
페루는 남미의 축구 약소국 볼리비아, 베네수엘라와 함께 남미 클럽 대항전에서 우승하지 못한 세 나라가 되어 그들의 자존심에 커다란 짐을 안았다. 게다가 오늘날에는, 금세기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대회에서 단 한 번의 8강 진출팀을 배출하지 못한 유일한 남미 국가란 오명도 함께 붙고 있다.
 
결국, 자국리그의 수준이 뒷받침되지 않는 상황에서 페루 대표팀의 황금기도 오래가지 못했다. 지난 1982년, 스페인 월드컵을 끝으로 페루는 더 이상 월드컵과 연을 맺지 못했고 이번 남아공 월드컵 남미 지역예선 꼴찌로 전락, 페루 축구 몰락의 대미를 장식했다. 

3. 잉카의 후예, 페루 축구의 숙원을 풀다
 
2003년 12월 19일은 페루 축구의 오랜 숙원이 이뤄진 날이다. 페루의 아마존 거점도시, 이키토스에서 벌어진 씨엔씨아노와 리베르플라테와의 코파 수다메리카나 2003 결승전에서 씨엔씨아노가 리베르에 1-0 승리를 거두고 페루 클럽으로는 처음으로 남미 정상에 오른 것이다.
 
당시 씨엔씨아노는 자국리그의 강호 알리안사 리마, 칠레의 3강 중 하나이던 우니베르시닷 카톨리카를 꺾고 8강에 진출했지만, 그들을 우승후보로 인정하는 전문가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러나 씨엔씨아노의 기세는 무서웠다. 8강에서 호비뉴와 엘라누가 활약하던 산투스를 꺾는 이변을 연출했고 준결승에서는 콜롬비아 최강, 아틀레티코 나씨오날을 홈과 원정에서 모두 격파했다. 그리고 대망의 결승전. 씨엔씨아노의 상대는 마르셀로 살라스, 마르셀로 가야르도, 루초 곤살레스 등이 버틴 아르헨티나의 강호, 리베르플라테였다.
 
비록 1차전을 원정경기로 치렀지만, 아르헨티나의 심장, 모누멘탈 경기장에서 씨엔씨아노는 전혀 위축되지 않았다. 오히려 조직적인 공격으로 경기를 주도, 홈팀을 상대로 3골을 몰아쳤고 리베르는 후반 40분에 터진 살라스의 동점골로 겨우 패배를 모면했다.
 
그런데 2차전을 앞두고 씨엔씨아노는 다시 한번 위기에 봉착한다. 남미축구협회 측에서 씨엔씨아노의 쿠스코 홈구장 규모(당시 22,000석, 2004년, 코파 아메리카 대회 유치를 위해 현재의 42,000석으로 증축)를 문제 삼아 결승전 장소를 변경한 것이다. 그런데 하필이면, 장소가 씨엔씨아노의 철천지 라이벌, FBC 멜가르의 홈구장이었던 것이다. 게다가 해발 3,300m의 고지대에 있는 쿠스코와 달리, 아마존 정글 한가운데 있는 이키토스는 씨엔씨아노의 홈 이점을 살리기에 최악의 조건이었다.
 
이러한 악조건 속에서도 '잉카의 후예'들은 기필코 우승을 검어 줬다. 후반 33분, 파라과이 출신의 수비수 카를로스 루고가 프리킥 상황에서 날카로운 오른발 감아 차기 슈팅으로 결승골을 기록한 것이다. 페루 축구 유일의 남미 정상을 이끈 역사적인 골이다.
 
그리고 이듬해 벌어진 레코파 수다메리카나(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우승팀과 코파 수다메리카나 우승팀 사이에서 벌어지는 남미의 슈퍼컵)에서 씨엔씨아노는 보카 후니오르스를 꺾고 다시 한번 우승을 차지, 아르헨티나의 양강을 거꾸러뜨린 진정한 남미 챔피언이 되었다.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은 페루 축구의 유일한 남미 챔피언, 씨엔씨아노가 자국 리그에선 단 한 차례도 정상에 오르지 못했다는 것이다. 씨엔씨아노는 전반기 우승팀과 후반기 우승팀이 격돌하는 페루 1부리그의 결승전에 세 차례 올랐지만, 알리안사와 스포르팅 크리스탈 등, 페루 축구를 주름잡는 리마 클럽들에 연신 발목이 잡히며 우승 문턱에서 좌절하곤 했다.
 
그러나 여태껏, 리마의 어떤 클럽도 잉카의 후예들이 이룩한 업적을 재현하지 못하고 있다. 비록, 국내리그에서 그 주도권은 현 페루의 수도에 빼앗겼지만, 옛 잉카의 심장은 그렇게 페루 축구의 자존심을 세워 놓았다.
 
현재 씨엔씨아노는 지난 2008년, 클럽 재정이 파산 직전에 이르러 전력이 급하락, 현재 페루 1부리그에서 강등권 탈출을 위한 사투를 벌이고 있다.    
 
[사진: 잉카 가르실라소 경기장, 아르마스 광장, 잉카 돌담길, 2003년 코파 수다메리카 우승 세레모니(C) 쿠스코 INFO.COM, 쿠스코 지방 정부 홈페이지, 씨엔씨아노 팬페이지 엘 씨엔씨아노.COM]
  


윤인섭 기자 press@xport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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