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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 스틸] 안타까운 이방인, 옥스프링

기사입력 2007.11.07 14:07 / 기사수정 2007.11.07 14:07

박현철 기자

[엑스포츠뉴스=박현철 기자] SK 와이번스의 첫 한국시리즈 우승으로 막을 내린 2007' 시즌 프로야구. '회자 정리(會者定離)'라는 말이 있듯이 올 시즌 8개 구단에서 첫 선을 보였던 '파란 눈의 이방인' 중 적지 않은 선수들이 소속팀과 이별하는 절차를 밟고 있는 중입니다.

특히, 다른 선수들과의 융화가 중요한 야구에서 시즌 도중에 한국 땅을 밟은 외국인 선수들 중에는 성적표보다 더 좋은 잠재력을 지닌 선수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팀의 목표치에 맞지 않아 좋은 평가를 못 받았습니다만 경기력을 따져보면 그들의 실력은 성적표 그 이상이었습니다.

필자가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안타까운 이방인. 그는 바로 LG 트윈스의 크리스 옥스프링(30. 사진)입니다. 그는 메이저리그 첫 경험을 쓰라리게 한 뒤 소극적인 투구로 변한 투수입니다.

대단한 변화구를 지닌 옥스프링

필자가 옥스프링을 처음 접했던 때는 2004년 아테네 올림픽 호주와 일본의 4강전이었습니다. 당시 옥스프링은 과감한 투구로 일본의 녹록지 않은 타자들을 덕아웃으로 돌아서게 했지요.

옥스프링은 일본 타자들이 웬만해선 초구를 건들지 않는다는 점을 착안, 초구를 과감하게 스트라이크 존에 꽂아 넣었습니다. 특히, 그가 자랑한 커브는 아래로 떨어지는 각이 워낙 좋아 떨어지는 변화구에 강한 일본 타자들조차 쉽게 공략하지 못했지요.

그런 그가 LG 트윈스 유니폼을 입고 마운드에 선다는 데 필자는 흥분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만 30세의 나이 때문에 메이저리그로 쉽사리 복귀하진 못했지만 9월에는 분명 밀워키 브루어스의 홈인 밀러 파크 마운드를 밟을 만한 투수였기 때문입니다.

변화구는 분명 좋았습니다. 커브와 체인지업은 분명 대단했고 지난 9월 18일 두산 베어스전에서는 너클성 포크볼을 구사하더군요. 변화구만 따지고 보면 국내 무대를 밟은 외국인 투수 중 최고로 손꼽을 만했지요.

그러나 처음 한국무대를 밟았을 때 옥스프링의 투구는 실망 그 자체였습니다. 좋은 공이 있음에도 스트라이크 존 바깥으로 볼이 자주 빠졌고 이는 어려운 경기 운영으로 나타났습니다. 퀄리티 스타트 기준을 간신히 채우는 6이닝을 던지고도 투구 수는 110개를 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쓰라린 MLB 첫 경험

이는 2005년 9월 3일(한국시간) 샌디에이고 파드레스 유니폼을 입고 밀워키와의 원정경기에서 처음 메이저리그 무대를 밟았을 때로 돌아가면 그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옥스프링은 밀러 파크에서 메이저리그 무대 데뷔전을 가졌습니다.

좋은 변화구를 앞세워 공격적인 피칭을 가져갔던 옥스프링. 그러나 그는 당시 밀워키의 주포 제프 젠킨스(33)에게 커브를 구사하다가 만루홈런을 얻어맞는 등 호된 신고식을 치렀습니다. 5.1이닝 6피안타 5실점의 투구내용 입니다.

이후 옥스프링은 나머지 4경기에서 6.2이닝 동안 3안타만을 맞았습니다. 이는 스트라이크 존 바깥쪽을 겨냥한 투심을 구사했기 때문입니다. 거기에 투수 지향적이었던 펫코 파크나 다저스타디움에서 등판한 덕도 보았고요.

2005' 시즌이 끝난 후 옥스프링은 샌디에이고의 선발 후보로 물망에 오르다가 한신 타이거스의 제안에 일본행 비행기에 올랐습니다. 당시 한신에는 호주 대표팀에서 한솥밥을 먹었던 좌완 제프 윌리엄스(35)가 있어 옥스프링의 발걸음은 가벼운 편이었습니다.

그러나 신중한, 아니 '소심한 야노씨'를 만난 것은 옥스프링에게 나쁜 결과가 되었습니다. 한신의 주전 포수인 야노 아키히로(39)는 상대 타자에게 한 방을 내주는 것을 굉장히 두려워하는 포수라 옥스프링에게 바깥쪽 볼과 가운데 높은 유인구를 주로 주문했지요.

'소심한 오빠' 때문에 '여자친구'가 짜증내듯, 화라도 냈다면 다행이었을 겁니다. 그러나 안 좋은 추억을 지닌 옥스프링은 더욱 불안하고 어려운 투구를 펼치다 '5이닝 용 투수'라는 오명을 썼습니다. 5회만 되면 스트라이크 존 바깥으로 빠지는 볼을 남발하다가 강판하기 일쑤였던 겁니다.

옥스프링의 일본 무대 성적은 4승 3패 평균자책점 5.12. 메이저리그 구단의 선발 후보로 촉망받던 늦깎이 인재는 1년 만에 일본에서 실패한 투수가 되어 마이너리그로 향했습니다.

다시 볼 수 있을까?

양상문(46) LG 투수코치는 옥스프링에 대해 '투구 내용이 기록보다 훨씬 뛰어났다. 내년에는 더욱 발전한 모습으로 LG 마운드를 이끌 것'이라며 그의 투구를 높이 샀습니다.

만약 옥스프링이 처음부터 LG 마운드에서 버티고 있었다면 어땠을까요? 주전 포수 조인성(32)은 안정적인 투수리드를 추구하는 포수입니다. 이는 반대로 말하면 안쪽보다는 바깥쪽 승부를 자주한다는 이야기도 됩니다.

그러나 구위나 변화구가 뛰어난 투수와 호흡을 맞출 때는 이따금 과감한 승부를 가져가면서 재미를 보기도 합니다. 만약 옥스프링이 스프링캠프 때부터 조인성과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면, 조인성이 과감한 승부를 좀 더 가져갔다면 결과는 달라졌을 것입니다.

조인성은 블로킹 능력이 좋고 송구능력 또한 좋습니다. 옥스프링의 투구폼도 간결한 편이라 빠른 주자를 내보낸 부담이 조금은 덜합니다. 생각을 바꾸면 과감히 승부해도 크게 실패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옥스프링은 좋은 투심패스트볼과 컷 패스트볼을 지니고 있습니다. 메이저리그와 일본에서 보여주었던 옥스프링의 투심은 다니엘 리오스(35. 두산)의 그것보다 휘는 각은 작지만 속도는 더 나았습니다. 투심 구속이 93mph(약 150km/h)을 기록하기도 하더군요.

단, 전제조건이 있습니다. 만루 홈런을 맞은 쓰라린 과거를 떨쳐내고 자신을 믿는 투구를 펼쳐야 한다는 점. 기복이 심해질 우려가 있기도 하지만 옥스프링이 '강심장'을 갖게 된다면 그는 다음 시즌 어디에 있던지 더 좋은 투구를 펼칠 수 있을 것입니다.



옥스프링 외에도 초반 승운이 없었던 KIA 타이거즈의 제이슨 홀 스코비(28. 8승 10패 평균자책점 3.92), 상위팀에는 강한 면모를 보였으나 코칭스태프의 믿음은 사지 못했던 삼성 라이온즈의 브라이언 매존(31. 7승 11패 평균자책점 4.18) 등은 개인적으로 아쉽다는 생각입니다.

마이너리그 시절 분명 좋은 무기(스코비-슬라이더, 매존-컷 패스트볼)를 갖추고 있어 기대를 갖게 했던 선수들입니다. 그러나 승운이 없기도 했고 도중에 한국으로 들어와 적응하면서 좋은 성적표를 받아든다는 게 쉬운 생활은 아니었겠죠.

보이는 기록이 전부는 아닐 것입니다. 경기를 지켜보면서 '아, 아깝다.'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선수들. 그들이 다음 시즌 다른 곳에서 뛰더라도 좋은 모습으로 자신들의 삶을 펼치길 바랍니다.

<사진=LG 트윈스, MLB.COM>



박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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