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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정무 특집-1] '원정 16강'을 완성한 허정무호의 30개월

기사입력 2010.06.30 18:25 / 기사수정 2010.07.01 09:52

김지한 기자



[엑스포츠뉴스=김지한 기자] 2007년 말, 한국 축구는 변화가 필요했다. 그해 여름에 열린 아시안컵에서 만족할 만 한 성과를 내지 못한 핌 베어벡 감독이 물러나면서 독일월드컵 본선 이후 1년 만에 대대적인 수술이 불가피했기 때문이다. 후임 감독으로 제라르 울리에 같은 외국인 명장들의 이름이 거명됐지만 결국 한국 축구의 선택은 '국내파' 허정무 감독이었다. 2000년 이후 약 7년 만에 국내파 감독이 한국 축구의 수장으로 나섰고, 성적 부진으로 퇴진한 허정무 감독에게는 명예 회복의 기회가 찾아왔다.
 
모처럼 맞이한 국내파 감독에 대한 찬반 여론은 엇갈렸다. '아직은 때가 아니다'는 불가론과 '국내파 감독에게도 이제는 기회를 줄 때가 됐다'는 긍정론이 맞섰다. 하지만 이미 1998년 방콕 아시안게임, 2000년 시드니올림픽, 레바논 아시안컵에서 좋은 성적을 내지 못했던 전력 때문에 허정무 감독에 대한 시선이 곱지 않았던 것은 사실이었다.

숱한 논란과 어려움을 겪으면서 한때는 난파 직전까지 갔던 허정무호(號). 그러나 월드컵 본선 7회 연속 진출의 금자탑을 쌓은데 이어 뚝심을 앞세운 지도력으로 탄탄한 경기력을 갖춘 팀으로 성장시키며, 사상 첫 원정 월드컵 16강 진출의 꿈을 이뤄냈다. 2년 6개월동안 '당당하고 유쾌한 도전'을 펼치며 한국 축구의 역사를 새로 쓴 허정무 감독, 그리고 대표팀의 발자취를 돌아본다.

선수 발굴에 초점을 맞춘 태동기

허정무 감독은 대표팀 감독에 취임하면서 "축구 인생의 전부를 걸겠다"며 당찬 포부를 밝혔다. 그러면서 그가 먼저 추진한 것은 바로 새로운 선수들을 발굴하는 것이었다. 이미 지난 1998년부터 3년간 국가대표, 올림픽대표팀을 동시에 맡았을 때도 허 감독은 박지성, 이영표, 설기현 같은 신예들을 대거 발굴해 '한국 축구의 희망'으로 성장시킨 경험을 갖고 있다. 허 감독의 의지에 따라 국가대표 경험이 전무하다시피 한 선수들이 대거 발탁됐고, 2008년 1월 31일 칠레와의 평가전에서 마침내 첫 선을 보였다.

하지만 '첫 술에 배부를 수는 없는' 법이었다. 경험이 부족한 선수들을 데리고 짧은 시간에 조직력을 갖춘 팀으로 만들 수는 없었다. 결국 후반 10분, 곤잘로 피에로에게 결승골을 허용하면서 0-1로 패하고 '쓰라린 첫 시합'을 치러야 했다.

그래도 그 첫 패배가 허정무호에는 달콤한 약이 됐다. 투르크메니스탄과의 월드컵 3차예선 경기에서 4-0 대승을 거둔 것을 시작으로 동아시아컵에서 중국에 3-2로 짜릿한 역전승을 기록하며 상승세를 탔다. 결국 이어 열린 북한, 일본과의 경기에서 무승부를 거뒀던 허정무호는 2005년에 빼앗겼던 동아시아컵을 가져오는데 성공했다. 비교적 순조로운 출발이었다.

그러나 곧바로 위기는 찾아왔다. 박지성, 이영표, 설기현 등 해외파가 모두 합류한 북한과의 월드컵 3차예선 경기에서 골문을 쉽게 공략하지 못하며 0-0으로 비겼다. 이어 요르단과의 경기에서 압도하는 경기를 펼치지 못한 채 1-0, 2-2로 경기를 마치며 불안한 행보를 이어갔다. 새로운 선수를 발굴하는데 다소 초점을 맞추다보니 전체적으로 톱니바퀴처럼 맞물려가는 조직력을 만들지 못했고, 조금씩 허점이 노출되면서 부진했던 것이다. 그리고 최종예선 1차전 북한과의 경기에서 1-1 무승부를 거두자 허정무 감독에 대한 경질의 목소리가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심각한 위기가 닥친 것이다.



세대 교체-전술 변화로 변화 이룬 발전기

그러나 허정무 감독은 별다른 흔들림없이 묵묵히 팀을 이끌어 나갔다. 그리고 이전에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카드를 꺼내들며 반전의 기회를 만들었다. 바로 젊은 선수들을 대거 중용시켜 세대 교체를 꾀하고 대표팀의 주 전술을 바꿔 조직력을 향상시키겠다는 것이었다.

이전에도 시도했지만 큰 효과를 보지 못했던 4-4-2 전술을 허정무 감독은 주요 필승 카드로 꺼내들었다. 선수 개인의 특징을 극대화시켜 보다 빠르고 공격적이며 안정적인 축구를 구사할 수 있는 전술로 여겼기 때문이다. 특히 U-20 월드컵, 베이징올림픽 등을 통해 좋은 활약을 펼친 기성용, 이청용이 대표팀에서도 가능성을 인정받으면서 곧바로 주전 자원으로 활용, 새로운 활력이 됐다. 그야말로 '신-구 조화'라는 단어가 서서히 정착되기 시작했고, 그 덕에 기성용과 이청용은 이름의 '용'을 딴 '쌍용'이라는 하나의 아이콘으로 주목받았다.

허정무 감독이 꺼내든 카드는 곧바로 잘 먹혔다. '죽음의 조'로 평가받던 최종예선 B조에서 승승장구를 거듭했다. 아랍에미리트(UAE)와의 경기에서 4-1 대승을 거둔데 이어 사우디아라비아 원정에서 사우디에 2-0 완승을 거두며 19년 만에 이기는데 성공, 가속 페달을 밟았다. 이어 '죽음의 원정'으로 꼽히는 이란과의 원정 경기에서 1-1 무승부를 거두며 선방한 뒤, 북한과의 홈경기에서 1-0 극적인 승리로 큰 고비를 넘기며 줄곧 조 1위를 달렸다. 결국 아랍에미리트와의 6차전 원정 경기에서 2-0 승리를 거두며 한국 축구는 일찌감치 조 1위를 확정짓고, 7회 연속 본선 진출에 성공했다. 어려운 싸움에서 그것도 무패(4승 4무) 전적으로 한국 축구, 허정무호는 아시아 어떤 국가에서도 이루지 못한 성과를 냈다.

큰 경험 통해 16강 꿈 이룬 완성기

최종예선의 쾌거는 이후 열린 평가전에서도 계속 이어졌다. 파라과이와의 평가전에서 박주영의 결승골로 1-0 승리를 거두며 10년 만에 '남미 징크스'를 깼고, 11월 세르비아와의 평가전에서 0-1로 패할 때까지 A매치 27경기 연속 무패 행진을 달렸다. '절대 지지 않는 축구'를 구사하면서 경기력도 날이 갈수록 높아졌고, 수준 또한 많이 향상된 것이다. 또 '필승 카드'로 박지성, 박주영의 '양박', 기성용, 이청용의 '쌍용'이 주목받으면서 '양박쌍용'이라는 또 하나의 새로운 필승 키워드가 떠올랐다.



지난해 12월, 32개국 월드컵 본선진출팀이 모두 가려진 가운데 열린 조추첨 행사에서 한국은 남미의 강호, 아르헨티나와 유로2004 우승팀인 그리스, 아프리카 전통의 강호 나이지리아와 B조에 속했다. 이후 월드컵 원정 첫 16강 진출을 목표로 성공적인 목표 달성을 위해 허정무 감독은 경쟁력있는 새로운 선수들을 또 발굴하려 했다. 대회가 열릴 남아공, 그리고 2002년 한일월드컵을 준비하면서 베이스캠프를 차리기도 했던 스페인에서 한 달 반동안 허정무 감독은 신예, 노장을 가리지 않고 팀 전력 향상에 보탬이 될 선수라면 누구든 중용하고 기회를 줬다. 그 덕에 U-20 월드컵에서 활약을 펼쳤던 김보경, 이승렬, 구자철 등이 계속 해서 대표팀에 이름을 올렸고, 한동안 대표팀에 없었던 이동국, 안정환, 차두리, 김남일 등도 다시 태극마크를 달았다. 새로운 선수들의 가세 속에 팀내 주전 경쟁은 더욱 치열해졌고, 반대로 팀 경기력은 서서히 다져져 '좋은 팀'으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됐다.

물론 선수 발굴의 기틀을 마련한 반면에 숱한 시련도 찾아왔다. 동아시아컵 중국과의 경기에서 0-3으로 완패해 사상 처음으로 중국에 지는 수모를 겪었고, 월드컵 본선을 앞두고서는 벨라루스와의 평가전에서 0-1로 져 위기를 겪기도 했다. 하지만 2년 가까이 숱한 위기를 잘 극복해 낸 힘, 경험을 바탕으로 허정무 감독은 노련하게 이를 이겨냈고, 스페인과의 마지막 평가전에서 대등한 경기를 펼치며 선전해 많은 것을 기대하게 했다.

그리고 그는 결국 성공했다. '전 유럽 챔피언' 그리스와의 경기에서 완벽한 용병술과 전력을 앞세워 2-0 완승을 거두며 국내파 감독 첫 승의 위업을 달성했다. 아르헨티나와의 2차전에서 1-4로 대패해 시련을 겪었지만 마지막 나이지리아와의 3차전에서 2-2 무승부로 기사회생해 마침내 목표했던 16강 진출의 꿈을 이뤘다. 2년 6개월동안 이어진 유쾌한 도전이 마침내 결실을 맺는 순간이었다.

부분 전략에 대한 논란도 있었지만 그래도 허정무 감독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역량을 모두 발휘하며 국내파 첫 16강 감독이 될 수 있었다. 한국인 감독 가운데 누구도 가보지 못한 곳을 올라간 허정무 감독의 개척자 정신이 이제서야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사진 = 허정무,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 (C) 엑스포츠뉴스DB]



김지한 기자 press@xport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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