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최종편집일 2024-09-22 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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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장에서 야구를 보자? 그래, 보자!

기사입력 2006.03.18 12:13 / 기사수정 2006.03.18 12:13

김형준 기자

 

요즘 축구팬 야구팬 할 것 없이 스포츠를 좋아하는, 아니 한국 사람이라면 모두 좋아할 만한 경사가 연이어 일어나고 있다. 바로 ‘야구 월드컵’이라고 불리는 WBC(World Baseball Classic)대회에서 한국이 역사적 라이벌 일본과 ‘세계 최강의 야구’라고 뻐기던 미국을 연이어 꺾으며 승승장구, 4강에 진출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일본에게는 2번의 맞대결에서 모두 통쾌한 승리를 거두었다. 일본을 특별히 싫어하는 것은 아니지만 ‘입치로의 발언 파문’ 이후 기분이 썩 좋지 않았던 터라, 일본전에서는 꼭 이겨줬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했기 때문이다. 정말이지 야구를 이렇게 재밌게 본, 아니 야구를 이렇게 제대로 본 기억조차 가물가물하다.

특히 ‘세계 최강’이 되고 싶어 일본과의 경기에서 말도 되지 않는 억지 승리를 이끌고 약팀 만을 골라 상대하겠다는 마음이 여실히 묻어난 조 편성 및 경기 일정을 내놓는 등 악행위를 일삼았던 미국과의 경기에서는, 앞서 홈런을 쳤던 홈런타자 이승엽을 고의사구로 골라내고, 이후 대타자 최희섭에게 3점 홈런을 얻어맞아 무너지는 미국을 보며 극도의 희열을 느끼기도 했다.

말하려는 논점과는 다른 말이지만, 이야기 나온 차에 짚고 넘어가자면, 아니 세상에 이런 엉터리 같은 대진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 우선, 지역예선에서 한 차례 맞붙었던 한국과 일본을 본선에서 한 조에 편성, ‘2차전’을 펼치게 하더니 이제 바로 다음 라운드인 4강에서도 일본과 토너먼트 경기를 또 한번 치르게 만들어 놓다니, 이게 도대체 어떤 시나리오를 염두 해두고 만든 경기 진행 방식이란 말인가! 

추측컨대 아마도 이렇게 단기간동안, 한 국가대항 대회의, 한 종목에서, 같은 상대를 세 번이나 만난 일은 거의 없었을 것이다, 최소한 구기종목에서 만큼은 오는 일요일에 있을 4강전에 대한 기대감이, 이렇게 떨어질 줄은 몰랐다. 너무 허망하다.

뭐 이런 저런 껄끄러운 일들이 없지는 않으나, 앞서 말한 대로 이번 야구 대표팀의 쾌거는 정말 대단한 것이다. 축구의 월드컵만큼 오랜 시간동안 간절히 바래왔던, 그래서 그것을 이루는 데에 많은 시간이 걸렸기에 더했던 감동이 느껴지지는 않았으나, 이번 WBC에서의 쾌거는 그동안 축구 월드컵의 열기를 부럽게 쳐다보아야만 했던 야구팬들에게는 더할 나위없는 기쁨이자, 희망이었을 것이다. 분명 WBC직전까지의 야구는 냉정히 놓고 보아 축구만큼의 인기를 누리지는 못했다. 조심스레 추측하지만 아마도 2002년부터의 축구 국가대표팀 활약이나, 이영표, 박지성 등 국내선수들이 해외에서 국의선양 하고 있는 모습 등이 자주 비추어지기 때문일 것이다. 야구를 좋아하셨던 필자의 아버지조차 “아빠 세대까지는 야구세대고, 너희 세대 밑으로는 축구가 대세일 것 같다.”며 힘없이 인정하셨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이렇게 야구의 열기가 거세게 몰아오더니 느닷없이 ‘축구장에서 야구를 보자!’는 계획이 잡혔다. 이유인 즉슨 3월 12일 개막된 K리그의 3라운드 (3월 18일,19일)의 경기가 오후 3시에 일제히 잡혀있고, 일본과의 WBC 4강전이 오후 12시에 잡혀있어 ‘야구 끝나면 축구 볼 수 있는 시간대’로 맞아 떨어졌기 때문이다.

이 일이 실제로 일어나는 곳이 바로 19일 K리그 홈경기를 갖는 울산과 포항, 그리고 대구 이다.
이 구단중 울산과 포항은 한국이 WBC 4강 진출을 사실상 확정 지은 미국과의 경기 이후 보도 자료를 내고, ‘3월 19일 12시에 있는 WBC를 전광판으로 단체관람 한다.’는 내용을 언론사를 통해 전달했다.
울산과 포항은 이처럼 12시 정각부터 전광판으로 야구경기를 관전하기로 확정 했기에 축구 경기 시작 시간에 3시간 30분 앞선 11시 30분부터 경기장의 문을 열고, 관중들을 맞이한다. 보도 자료를 내지는 않았으나 당일 홈경기를 갖는 대구 FC또한 같은 행사를 마련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일을 놓고 축구팬들 사이에서의 의견 또한 분분하다. ‘좋은 아이디어’라는 의견도 많으나, ‘이건 좀 아닌 것 같다’며 축구와 야구의 결합에 거부감을 느끼는 축구팬들 또한 적지 않다.
‘야구를 3시간 넘게 하면 축구 시간 시작시간이 지연되는 것 아니냐’, ‘야구만 같이 응원하고 나가는 사람도 있을 것’이라는 우려도 함께 나왔다. 축구팬으로서는 당연한 우려이다. 나 또한 그 생각부터 했으니.

궁금해서 퇴근길에 울산현대의 홍보팀의 임지오 팀장님께 전화를 드렸다. 다짜고짜 궁금한 점부터 여쭤봤더니 명쾌하게 답을 해 주셨다.
“야구가 3시간 넘게 할 수도 있는데 3시부터 시작하기로 되어있는 경기 킥오프가 연기될 수도 있나요?”

임 팀장님은 “아니에요. 축구경기가 우선이죠.”라고 답해주셨다. 울산의 계획은 이렇다. 12시부터 야구를 보고, 킥오프 시간뿐만 아니라 계획해 놓은 경기 전 행사를 충분히 해낼 수 있도록 늦어도 2시 30분쯤에는 야구 중계를 중단한다는 것이다. (이 시점이 6회 말 정도 되지 않을까 싶다) 결국엔 축구경기 일정에 충실 한다는, 축구팬들에게는 아주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아니 그럼, 야구 응원하러 경기장 간 사람들은 속 터지지 않을까? 구단은 이런 부분에 대한 배려로 축구경기도중에도 전광판에 자막으로 WBC경기의 소식을 전하겠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
축구경기의 하프타임 즈음에는 경기 결과가 나올 것이고, 그 때 결과와 좀더 자세한 소식을 장내 아나운서나 전광판을 통해 전해줄 것으로 예상된다. 필자의 생각이지만, 여건이 허락한다면 잠시 보지 못했던 부분의 하이라이트를 녹화해 하프타임에 보여주는 것도 또 하나의 방법일 듯싶다.

이러한 상황은 같은 ‘행사’를 치르는 포항의 스틸야드나 대구 월드컵 경기장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여기에 각각의 경기에는 방송 중계의 계획까지 잡혀있으니 킥오프 시간을 늦추는 것은 사실상 허락되지 않을 것이다.

결론은, ‘야구 경기 장면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보아야 하겠다.’는 사람은 축구장에 가면 안 된다는 결론이다. 반면 ‘단체관람, 집단 응원의 맛’, 그리고 좀처럼 느낄 수 없는‘축구와 야구의 조화’를 느끼고 싶은 사람은 이번 기회에 축구 경기장을 꼭 한번 찾아주는 것이 좋을 것이다.

각 팀이 이러한 ‘전략’을 세운 이유는 이렇다. 2002년 월드컵을 계기로 ‘단체 관람’에서 나오는 ‘집단 응원’의 맛을 느껴본, 그리고 그것을 즐기게 된 사람들이 크게 늘어난 점이 이러한 계획의 가장 큰 이유이다. 이렇게 모이게 된 관중들은 신나게 야구경기 응원을 끝낸 후 어쩌면 ‘공짜’로 느껴질 수 있는 축구경기를 관전하게 된다.

또한 이번 계기로 축구장을 처음 찾는 ‘야구를 좋아하는 성향이 짙은 관중’을 대상으로‘직접 보는 축구의 맛’도 함께 느껴볼 기회를 제공한다면 그 재미에 반해 축구장을 다시 찾게 되는 사람이 없지 않을 것이라는 계산에서였다. 결국 ‘야구를 좋아하는 성향이 짙은 관중’ 을 한번이라도 축구장에 끌어들여 포용해보려는 전략이 깔려있는 것이다.

필자는 이러한 마케팅에 대찬성이다. ‘이번 WBC를 통해 프로야구의 인기가 점점 살아나는 반면 이러한 야구의 인기 때문에 프로축구의 인기가 더 떨어질 것이 아닌가'하는 우려도 마음 한구석에 박혀있기는 하나, 위와 같은 예가 늘어난다면 상생의 길로 갈 수 있다는 생각 또한 커지게 된다.

실례로 인천 유나이티드 축구단의 경우 창단 첫 해, 바로 옆에 접해 있는 야구경기장(SK와이번스의 홈구장)에 이어 축구장에서 경기를 한 날이 있었는데, 이 때 인천 축구단에서는 야구단 측과 즉석에서 ‘야구경기 티켓을 가져오면 축구경기 할인’ 혜택을 주는 이벤트를 펴기로 하고, 경기 중간에 야구장 전광판에 광고를 낸 적이 있다고 한다. 물론 이 전략을 통해 당일 축구장 관중이 눈에 띄게 늘어났다고 한다. 또 2006 인천 홈 개막전에서는 와이번스 야구단의 박경완, 박재홍, 정경배 선수가 시축을 하기도 했다.

또 대전을 가보면 대전 시내 한복판(주로 큰 교차로마다)에 사각 기둥의 광고판이 세워져 있다. 이 광고판의 네 면 중 두 면은 대전 시티즌의 홈경기 일정이, 두 면은 같은 연고지의 한화 이글스 야구단의 홈경기 일정이 적혀있다. 여기에 대전 시티즌 홈경기에서는 한화 이글스의 다음 홈경기 일정이, 한화 이글스 야구단의 경기에서는 대전 시티즌 축구단의 다음 홈경기 일정이 전광판을 통해 나간다.

야구와의 관계는 아니지만, 대전 시티즌은 시즌 개막전 삼성화재 배구단의 홈경기에 단체로 관람을 가 배구단에 격려의 인사를 나누고, 이에 삼성화재 배구단은 대전시티즌의 주식공모 기간을 통해 주식 공모에 참여하여 대전 시티즌의 주주가 되기도 하였다.

예를 들다보니 말이 길어졌지만 요는 축구와 야구 혹은 타 종목의 인기가 반비례곡선을 그린다는 것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유럽(특히 잉글랜드나 독일)과 같이 축구 외에는 즐길만한 프로스포츠가 많지 않고, 주말에 ‘할 일이 없어지는’ 환경이 조성되지 않는 한 프로축구와 프로야구는 공존하게 된다. 봄, 여름, 가을 기간동안 꾸준히 일정이 진행되는 양대 프로 스포츠가 서로의 관중을 빼앗아 가는 형색이 되어버린다면, 이는 너무나도 불행한 스포츠문화라는 생각이 된다. 최소한 ‘스포츠’외에 다른 볼거리, 놀 거리가 즐비해있는데도, 또 다른 흥밋거리들이 끊임없이 생겨나고 있는 우리의 문화를 생각해 보자면 말이다.

2006년 초부터 토리노 동계올림픽의 쾌거, 그리고 야구 월드컵에서의 영광 등 우리나라 스포츠 계에서 굵직굵직한 희소식들이 줄을 잇고 있다.

대회기간이 남았지만 설정했던 목표를 이미 초과 달성해버린 WBC 대표팀의 뒤에는 4년 만에 찾아오는, 전 세계인의 축제 2006 독일 월드컵이 기다리고 있다. 선수들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는 않으나 필자의 솔직한 심정은, 아무쪼록 우리 대표팀이 독일에서 승승 장구를 하여 동계올림픽의 쇼트트랙, WBC 야구대표팀에 이은 쾌거를 달성해 2006년을 ‘한국 스포츠 의 르네상스 시대’를 열어갔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하다.





김형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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