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06.02.23 20:58 / 기사수정 2006.02.23 2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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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 실패는 없다! 의기투합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더니 삼성 마운드의 쌍두마차 김시진과 김일융을 두고 한 말이 아닐까 싶다. 전년도(1984) 한국시리즈에서 에이스다운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던 김시진과 유두열에게 역전 결승 3점홈런을 맞았던 김일융으로선 그 때의 기억을 하루 빨리 잊어버리고 새출발해야했다. 그것이 삼성이 살아나는 유일한 길이었다.
김시진은 84시즌을 계기로 프로야구를 대표하는 에이스로 떠오르며 이선희, 황규봉 등으로 대표되던 삼성 마운드의 축을 뒤집어 놓았다. 당시 국내 최고로 통하던 슬라이더가 장기였다. 김일융은 재일동포 출신으로 84시즌 삼성이 영입한 야심작이었다. 삼성은 삼성만이 할 수 있는 파상공세를 펼치며 결국 영입에 성공하는데 애초에 김일융을 데려오려던 타 구단이 혀를 내두를 지경이었다. 주무기는 낙차 큰 커브.
어느 하나 부족한 것 없고 어느 팀에 가도 에이스로 통할 두 선수가 한 유니폼을 입고 나섰으니 그 누구도 두렵지 않을 법했다. 그리고 이 때 등장한 전문 마무리투수 권영호가 뒷문을 든든히 지켜준 덕분에 ‘원투펀치’는 승승장구할 수 있었다.
역대 최고의 원투펀치, 통합우승을 이끌다
삼성은 모든 것이 완벽했다. 국내 최고의 투수진은 물론 장효조, 이만수 등으로 대표되는 국내 최고의 타선에 새로 가세한 이해창(이선희와 맞트레이드로 영입)과 주전으로 성장한 김성래가 큰 힘이 되었다.
이렇다보니 삼성의 독주는 어느 정도 예상됐던 게 사실. 삼성의 독주체제는 리그 처음부터 끝까지 쭉 이어졌다. 4월에 13연승으로 바람을 일으키더니 그 여세를 몰아 전기리그에만 40승(1무 14패)을 쌓아 올렸다. 여유 있게 전기리그 우승을 차지한 삼성은 후기리그에서도 고삐를 늦추지 않고 37승 18패를 거두며 역대 최초 전후기리그 통합챔피언의 왕좌에 오르는 영광을 누렸다.
역시 뭐니 뭐니 해도 김시진과 김일융이라는 원투펀치의 힘이 컸다. 팀이 올린 77승 중 무려 50승을 합작, 그것도 똑같이 25승씩 거뒀다. 스타일은 다르지만 두 선수는 은근히 닮은 구석이 있었다. 그런데 이것이 결국 두 선수 모두 MVP가 되지 못한 결정적 요인이 됐다. 김시진과 김일융은 모두 MVP감이었지만 MVP 투표 당시 우열을 가리기 힘든 두 선수 대신 김성한(해태)이 MVP로 뽑히는 사건이 일어나기도 했다.
개인타이틀에선 두 선수의 희비가 엇갈렸다. 김일융은 다승 부문에서만 1위였을 뿐 김시진은 다승 1위는 물론, 탈삼진과 승률에서도 1위를 차지했고 덤으로 올스타전 MVP까지 챙겼다. 후기리그에 갑자기 등장한 선동열(해태)만 아니었다면 방어율 1위도 노려볼 만했다.
50승 합작에 숨겨진 비밀
20승 투수 하나 보기 어려운 요즘 시각으로 바라보면 무려 50승을 합작한 김시진과 김일융이 신기할 따름이다. 마치 짜여진 각본처럼 똑같이 25승씩 챙겼으니 그 궁금증은 더해만 간다.
먼저 당시 종합승률제로 바뀐 제도의 역할이 컸다. 84시즌 OB가 전후기 통합승률 1위를 차지(전후기 모두 2위)하고도 한국시리즈에 진출하지 못하는 불상사가 생기자 KBO는 전격적으로 제도를 수정하기 시작했다.
종합승률제 (1985년 시행)
▶ 전후기 통합승률 1위는 무조건 한국시리즈에 직행한다.
▶ 한 팀이 전기리그와 후기리그 모두 우승할 경우, 자동적으로 한국시리즈는 없어진다.
▶ 전후기 통합승률 1위와 전기리그, 후기리그 우승팀이 모두 다를 경우 통합승률 1위팀은 한국시리즈에 직행하고 전후기 우승팀이 플레이오프를 거친다.
▶ 통합승률 1위팀과 2위팀이 각각 다른 기의 우승을 차지하면 두 팀이 한국시리즈에 직행한다.
그러나 이러한 KBO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삼성이 전후기 모두 석권하는 바람에 새로 만든 규정을 제대로 써먹지도 못했다. (이 때문에 86시즌을 앞두고 또 한 번 규정을 바꾸는데 이것이 프로야구의 역사를 뒤집어 놨다. 최대수혜자는 해태였다.)
아무리 1위를 차지해도 마음 놓고 한국시리즈에 직행할 수 없게 되자 삼성은 매 경기 총력을 다해야했고 이것은 김시진과 김일융의 승수를 올려놓는데 일조했다. 마침 이때 팀당 100경기에서 110경기로 늘어난 첫 해이기도 했다.
여기에 똑같이 25승씩 챙길 수 있었던 것은 선수의 개인 기록을 누구보다 사랑했던 김영덕 감독의 공이 컸다. 김 감독은 나름대로 라이벌 구도를 형성했던 두 선수의 자존심을 살리기 위해 승수 조각을 똑같이 맞춰주었고 결국 공평하게 25승씩 거두게 된 것이다.
김시진과 김일융에게 있어 85시즌은 손발 척척 맞았던 최고의 시즌이었다. 감히 그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역대 최고의 원투펀치임에 틀림없다.
김시진 (1985) → 25승 5패 10세이브 방어율 2.00
김일융 (1985) → 25승 6패 방어율 2.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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