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10.03.02 08:21 / 기사수정 2010.03.02 08:21
[엑스포츠뉴스=부산, 김현희 기자] (1편에서 계속) 메이저리그 스카우트를 비롯하여 각 구단 단장이 한국의 고교야구를 주목하는 이유는 ‘제2의 박찬호/김병현/추신수’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이다.
여기에 올림픽이나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등 국제무대에서 국가대표팀이 인상적인 활약을 펼쳤던 것 역시 무시할 수 없다. 이러한 모습이 메이저리그 구단 측에서 ‘한국야구에 대한 호기심’으로 연결된 셈이다.
사실 이러한 국제무대 선전 이전에는 LA 다저스를 비롯하여 시카고 컵스 등 일부 구단만이 한국에 스카우트를 파견한 것이 전부였다. 그러나 재작년부터 미네소타 트윈스를 비롯하여 켄자스시티 로열스, 휴스턴 에스트로스가 ‘고교야구 스카우트’에 합류하면서 ‘한국 고교야구’ 시장은 이제 30개 구단 모두가 눈독을 들이게 됐다. 해마다 ‘투수 자원 부족’으로 한숨을 쉬고 있는 텍사스 레인저스 역시 마찬가지다.
2006년, 고교야구 최고 유망주였던 남윤희(신일고 졸업)를 데려갔던 텍사스가 두 번째 한국인 투수를 맞았던 것은 불과 재작년 일이었다. 안태경(부산고 졸업)을 두고 하는 이야기다. 계약금 액수도 크게 늘어났다. 2006년 계약 당시 남윤희와 불과 6만 5천불에 계약했던 텍사스는 안태경에게 80만불을 쥐어주었다. 그만큼 그에게 거는 기대가 컸다는 반증이다.
이렇게 구단의 큰 기대를 안고 야심차게 출발했던 2009 시즌이었지만, 현실은 냉혹했다. 곧이어 찾아왔던 부상이 그의 발목을 잡은 것. 혹독한 마이너리그 생활과는 별도로 ‘자신과의 싸움’을 해야 했던 안태경은 재활에 매달리면서도 ‘이 시련이 메이저리그로 가는 발판이 될 것’이라는 주문을 외웠다고 한다. 외롭고도 혹독했던 마이너리그의 눈물 젖은 빵에 대한 추억, 안태경은 이렇게 회상한다.
▶ 안태경, 마이너리그를 말하다
- 이번에는 본격적으로 미국 야구 이야기를 해 보자. 텍사스가 안태경에게 많은 액수의 계약금을 베팅하게 된 배경에는 ‘높이가 낮은 마운드’ 때문이지 않은가? 실제로 레인저스 마운드는 지난해 17승을 거둔 스캇 펠드먼(27)과 3.67이라는 평균자책점을 기록한 에이스 케빈 밀우드를 제외하면 이렇다 할 선발 투수가 없다. 프랭크 프란시스코/C.J.윌슨이 버텼던 뒷문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안태경(이하 ‘안’) : 사실 알려진 것과 다르게 텍사스 레인저스 마이너리그에는 좋은 투수들이 많다. 오죽하면 (류)제국(전 템파베이 레이스)이 형이 “너희 팀 투수들은 왜 이렇게 좋으냐?”, “너희 팀 훈련은 왜 이렇게 힘드냐?”고 말했을 정도다. 그만큼 텍사스의 마이너리그 프로그램이 상당히 좋다.
물론 보수는 상당히 적다. 2주일 동안 140불을 받는다. 하지만 돈만 적게 줄 뿐, 복지 시설이나 환경은 더할 나위 없이 좋다. 호텔 생활을 하고, 저녁 식사 역시 전담 주방장이 있어 구장에서 해결할 수 있다. 그래서 적은 보수로도 좋은 환경에서 야구할 수 있다. 이 점이 가장 좋다.
- 하지만 안태경 본인이 미국 진출을 선언했을 때 말리는 사람도 분명 있지 않았는가?
안 : 어머니께서 많이 불안해 하셨다. 더욱이 3학년 때 투구 벨런스가 많이 무너져 자신감이 떨어져 있었던 것도 큰 걸림돌이었다. 2학년 때처럼 했다면 자신감이 충만했을 텐데, 그렇지 못했기 때문에 사실 내 자신이 가장 많이 힘들었다.
- ‘루키리그’하면 떠오르는 것은 하루 최대 17시간 걸릴 수 있는 버스이동이다. 그만큼 열악하다는 사실만큼은 부인할 수 없다.
안 : 사실 텍사스 산하 루키리그에는 내가 속해 있는 애리조나 리그 외에 또 다른 ‘단기 시즌 리그’가 있다(주 : 도미니카 여름리그). 바로 이 단기 시즌에 잘 하는 선수들이 많이 온다. 그런데 내가 속해 있던 리그에서는 애리조나 주 안에서만 경기를 했기 때문에 10시간 이상 이동하는 일은 없었다. 나보다는 시카고 컵스에 있던 (정)수민이가 고생을 많이 했다. 하지만 (정)수민이와는 아직 적으로 만나지 못했다. 하지만 언젠가 (정)수민이가 지난해에 했던 만큼 레벨을 올리고 싶다. 언젠가 적으로 만나 마운드에서 실력을 겨루고 싶다.
- 친구인 정수민과는 별도로 텍사스 산하 싱글A 리그에는 남윤희가 있다.
안 : 그렇지 않아도 (남)윤희 형과 스프링캠프 때 룸메이트였다. 당시 캠프에서 한국인으로는 우리 두 사람이 전부였다(웃음). (남)윤희 형 외에도 작년 말에 LA 다저스에 합류한 (남)태혁이(제물포고 졸업), (이)지모 형(LA 다저스), (장)필준이 형, (정)영일(이상 LA 에인절스)이 형과 만났다.
- 처음에 갔을 때 영어 문제로 애를 먹지 않았나? 실제로 안태경과 동기인 ‘일본 야구유학파’ 김동민(후쿠오카 경제대학)도 언어 문제로 애를 먹었다고 한다.
안 : 물론 작년에 전담 통역사가 있었다. 하지만 올해부터는 통역사 없이 스스로 해쳐나가려고 한다. 학원도 다니면서 열심히 영어공부를 하고 있다.
▶ 전설의 투수, ‘놀란 라이언(Nolan Ryan)’은 우리 구단 사장님!
- 투수 문제로 애를 먹는 텍사스 역시 한때 ‘잘 나갈 때’가 있었다. 특히, ‘명예의 전당’에 오른 투수 놀란 라이언은 늦은 나이에 텍사스에 합류하여 노익장을 과시한 바 있다.
안 : 놀란 라이언이 바로 우리 구단 사장님이다(웃음). 스프링 캠프 때 만나 체인지업을 던지는 방법을 배웠다. 라이언 사장님은 눈매만 봐도 ‘한 평생 야구에 매진한 사람이구나!’라는 느낌이 들 정도다. 그만큼 ‘야구에 대한 정열’이 굉장히 높은 사람임을 느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전설의 인물을 눈 앞에서 보고, 또 그러한 사람이 우리 구단 사장님이라는 사실이 굉장히 자랑스럽다. 그러한 분에게 야구 지도를 받았다는 사실 자체가 영광이다.
- ‘전설’과 ‘유망주’가 만나 ‘제2의 박찬호’를 키워내는 것 아닌가 모르겠다(웃음).
안 : (같이 웃으며) 나 역시 최선을 다 하여 박찬호 선배님 같은 대 투수가 되고 싶다.
- 하지만 텍사스가 ‘투수들의 무덤’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이는 텍사스의 홈구장인 ‘레인저스 볼파크’가 투수들에게 불리한 구장이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다.
안 : 그렇지 않아도 레인저스 볼파크 마운드에 서 본 일이 있다. 그런데 직접 마운드에 서 보니, 오히려 동대문 야구장보다 작아보였다. 확실히 투수들이 심리적으로 위축될 수 있는 구조이긴 하다.
- ‘투수들의 무덤’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지금이 아니라 앞으로가 더 중요하다. 물론 작년에는 5경기 출장에 그쳤지만, 마지막 등판에서 무실점을 기록하는 등 부상 회복 징조를 보이기도 했다.
안 : 사실 후반기에 급하게 마운드에 올랐다. 구원으로 5경기에 등판했지만, 거의 힘으로 던졌다. 하지만 마지막 경기에서 투구 벨런스가 좋아졌음을 느낀 만큼, 내년이 기대된다. 자신감을 회복했다는 것이 큰 과제다.
- 재활기간을 보내면서 국내에서 맹활약하고 있는 동기들에 대한 소식도 접할 때가 있을 것이다. 그럴 때면 국내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가?
안 : 솔직히 잘 하는 모습을 보면, ‘부럽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하지만 그런 느낌도 잠시, 컴퓨터를 끄고 누워 있으면 ‘4~5년 뒤에는 분명히 내 선택이 옳았을 것이다’라고 생각하며 잠들게 된다. 즉, ‘잠깐의 부러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내 선택에 후회는 없다.
▲ 놀란 라이언(Nolan Ryan)은 현역 시절, 5714개의 탈삼진을 기록하며 이 부문 역대 1위에 이름을 올렸다. 그는 지난 달 텍사스 레인저스의 사장으로 취임했다. <사진 (C) 텍사스 레인저스 홈페이지 캡쳐>
▶ 후배들에 대한 조언, 그리고 앞으로의 각오
- 작년에도 덕수고 나경민(시카고 컵스)을 포함하여 총 7명의 선수들이 미국 진출을 선언했다. 이렇게 많은 선수들이 태평양을 건너는 것에 대해 안태경 본인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안 : (단호하게) 본인이 원한다면 많이 왔으면 한다. 자신이 큰 꿈을 펼치는 것만큼 멋진 일도 없지 않는가. 힘들다고 해서 올 곳이 못 되는 것은 아니다. 더 큰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굳은 일은 물론, 고생을 마다하지 말아야 한다.
- 미국에 있다 보면 ‘태극마크’에 대한 꿈도 같이 꿀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기회가 없는 것은 아니다. 2013 WBC, 2014 아시안 게임을 비롯하여 더 넓게는 2016년 올림픽까지 기회는 많다.
안 : 내 목표가 차근차근 마이너리그 수업을 받은 이후 메이저리그에 진입하는 것이다. 2013년도 정도면 내가 국가대표팀에 합류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욕심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2014년 아시안 게임에는 무조건 대표팀에 합류한다는 목표를 세워 뒀다. 그리고 2016년도 올림픽에 야구가 다시 한 번 더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다면 ‘빅리거 안태경’의 이름을 걸고 참가해 보고 싶은 욕심이 있다. 그 때가 되면 빅리그에서 자리를 잡고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웃음).
- 그 말의 뜻은 이제 작년 부상에서 완전히 벗어났음을 의미하는 말로 받아들여도 되는 것인가?
안 :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다. 이제 부상에서 완쾌됐다. 올 시즌에는 회복한 투구 벨런스를 시즌 끝까지 유지하여 기복 없이, 꾸준한 성적을 내겠다. 지켜봐 달라.
- 마지막 질문이다. 안태경에게 ‘야구’란 무엇인가?
안 : 3학년 때부터 입버릇처럼 말해 왔던 것이 있다. 바로 ‘야구는 인생’이라는 것이다. 무슨 말이 더 필요한가. 내 생활의 1번이자 인생, 이것이 바로 야구다.
[관련 기사] ▶텍사스 레인저스 안태경, '제2의 박찬호'를 꿈꾸다 ①
[사진=안태경 선수 (C) 엑스포츠뉴스 DB 김현희 기자/안태경 선수 제공, 놀란 라이언 (C) 텍사스 레인저스 공식 홈페이지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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