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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나더컨트리' 학교는 사회의 축소판…청춘의 이상과 좌절[엑's 리뷰]

기사입력 2019.06.10 15:39 / 기사수정 2019.06.10 17:12


[엑스포츠뉴스 김현정 기자] “지상의 천국? 아니. 지상의 지상. 그냥 지상.” 

겉으로는 호화롭고 우아한 상류층 고등학생들이다. 그런데 들여다보면 권력과 지위를 얻기 위해 마치 오리처럼 물 밑에서 치열하게 발질하고 있다. 학교라는 이 작은 공간은 사회의 축소판이나 다름없다. 치열한 경쟁과 냉혹한 평가와 마주해야 한다.

1930년대 영국의 명문 사립학교를 배경으로 한 연극 ‘어나더 컨트리’가 서울 종로구 유니플렉스 1관에서 공연 중이다. 극작가 줄리안 미첼의 작품으로 계급과 권위적인 공간에서 자유로운 영혼의 가이 베넷과 마르크스를 신봉하는 토미 저드의 이상과 꿈, 좌절을 그린다. 1982년 런던 웨스트엔드에서 처음 선보였고 38년 만에 국내에서 초연하고 있다. 1984년에는 루퍼트 에버릿, 케네스 브래너, 톰 히들스턴, 콜린 퍼스가 출연한 동명의 영화로도 개봉했다. 

당시 영국은 파시즘, 국가를 우선시하고 군사적 가치관을 찬양하고 리더에게 복종하는 분위기가 팽배했다. 학교라고 다를 게 없다. 말 그대로 그들만의 리그다. 기숙사장, 프리펙트, 트웬티투까지, 나름의 공고한 계급 시스템에서 학생이 다른 학생을 규율과 체벌, 징계로 억압한다. 10대 소년들이지만, 출세를 위한 발판을 마련하기 위해 어른의 정치를 흉내 내며 서로 밟고 밟힌다. 파울로가 기숙사장이 되는 것을 막고 잘못된 관행을 깨려 하는 이들도 결국 이를 위한 방법으로 힘과 공포심을 택한다. 

개스코인 기숙학교에는 다양한 인물이 나온다. 자유주의자, 공산주의자, 규율을 어기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 원칙주의자, 기존 체제를 유지하려는 자, 체벌을 반대하는 자, 기회주의자, 마티노처럼 되지 않으려 하는 자, 마티노의 죽음에 책임을 느끼는 자, 상급생의 체벌을 극도로 두려워하는 하급생 등이 각자 자신만의 방법으로 살아남으려 한다. 

가이 베넷과 토미 저드는 전혀 다른 성향의 인물이지만 이단아 같은 존재라는 점에서 비슷하다. 하코트를 향한 감정을 스스럼없이 표현하는 가이 베넷은 트웬티투를 거쳐 프랑스대사를 하길 바라지만 무산되고 소련으로 망명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공산주의를 신봉하는 토미 저드는 공산주의 편에서 전쟁에 참여했다가 죽는다. 아이러니한 길을 걷는 이들의 모습에서 지상의 천국이란 없다는 사실이 상기돼 씁쓸함을 남긴다.

사전 정보 없이 본다면 내용이 조금은 어렵게 느껴질 터다. 초반에는 각각의 인물을 파악하거나 많은 양의 대사, 친숙하지 않은 용어를 따라가기 쉽지 않을 수 있다. 정서 역시 다르다. 그럼에도 이 시대 고등학생이 느낄 수 있는 감정을 진지하게 그러나 너무 무겁지만은 않게 전개해 몰입하는데 무리는 없다. 대사 실수가 종종 있었지만 풋풋한 신인 배우들의 연기를 보는 재미도 있다.  

배우들은 75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캐스팅돼 화제가 됐다. 가이 베넷 역의 연준석은 자유로운 영혼이란 설정에 어울리는 능청스러운 연기를 보여준다. 그러면서도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지 않는 사회, 국가에 분노하고 울분을 토하는 감정의 변화도 이질감 없이 소화한다. 뚜렷한 소신을 지닌 매력적인 아웃사이드 토미 저드 역을 맡은 문유강은 안정적인 딕션과 발성을 보여줘 앞으로의 가능성을 기대하게 한다.

8월 11일까지 유니플렉스 1관에서 공연한다. 110분. 만 15세 이상.

khj3330@xportsnews.com / 사진= 로네뜨

김현정 기자 khj3330@xport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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