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10.02.03 05:31 / 기사수정 2010.02.03 05:31
[엑스포츠뉴스=김지한 기자] 한국 여자 쇼트트랙은 전통적으로 강했다.
특히 빼어난 팀워크와 완벽한 작전 구사 능력으로 여자 계주 3000m는 1994년 릴레함메르 동계올림픽 이후 단 한 번도 1위 자리를 다른 나라에 내주지 않았다. 그 뿌리에는 바로 쇼트트랙 여제, 전이경(현 SBS 해설위원)이 있었다.
'여제'라는 말에서 느껴지듯이 전이경은 현역 시절, 한국 쇼트트랙을 대표하는 명선수였다.
두 번의 올림픽에 걸쳐 모두 4개의 금메달을 따내면서 한국인 올림픽 최다 금메달리스트로 지금까지 이름을 남기고 있는 전이경은 피땀어린 자기 노력과 재치있는 작전 구사 능력으로 역대 쇼트트랙 선수 가운데 가장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현역 은퇴 후에는 끊임없는 도전과 새로운 길을 개척한 전이경은 현역 여자 선수들이 닮고 싶어하는 롤 모델로서 오늘날도 한국 쇼트트랙의 '모범'으로 깊은 인상을 남기고 있다.
올림픽 2관왕, 그리고 세계선수권 3연패
초등학교 5학년 때, 쇼트트랙을 처음 접한 전이경은 어린 시절부터 빠른 성장세를 보이며 이른 나이에 국가대표에 발탁됐다. 동갑내기 김소희와 라이벌 구도를 형성하며, 한국 쇼트트랙의 기대주로 성장한 전이경은 1993년 베이징에서 열린 세계선수권에서 종합 2위에 오르며 국제무대에 존재감을 본격적으로 알리기 시작했다.
전이경이 세계 최고로 우뚝 선 것은 1994년 릴레함메르 동계올림픽 때였다. 이미 1992년 알베르빌 대회 때 올림픽 출전을 경험한 바 있던 전이경은 여자 3000m 계주에서 첫 번째 금메달을 따낸 뒤, 개인 종목이었던 여자 1000m에서 캐나다 선수를 제치고 금메달을 목에 걸며 동계올림픽 사상 첫 여자 2관왕에 오르는 쾌거를 이뤄냈다. 이때부터 전이경의 우승 질주는 시작됐다.
1995년부터 97년까지 3년 동안 세계선수권 3연패를 이뤘던 전이경은 단 한 번도 세계 1위 자리에서 내려오지 않으며 최강 자리를 굳게 지켰다. 중국, 캐나다 등 해외 선수는 물론 올림픽보다 더 힘들다는 국내 선발전에서도 전이경의 독보적인 실력은 변함이 없었다. 그런 가운데서 유독 전이경을 위협하는 한 선수가 있었으니 바로 중국의 양양A였다.
아직도 생생한 회심의 기술, 날 들이밀기
1997년 전주 동계 유니버시아드를 비롯해 세계선수권에서도 전이경과 어깨를 나란히 했던 양양A는 1년 사이에 부쩍 성장하는 모습을 보이며 전이경을 비롯한 한국 선수들을 크게 위협했다. 이러한 상승세를 눈여겨보고 1998년 일본 나가노에서 열린 동계올림픽을 앞둔 시점에서 언론들은 전이경과 양양A의 대결 구도를 주목했다. 그리고 실제로 이들은 여자 1000m에서 '운명의 맞대결'을 벌이게 됐다. 물론 여기에는 원혜경과 양양S라는 또 다른 라이벌 대결도 있었다.
경기 중반까지만 해도 페이스는 양양A, 양양S 쪽이었다. '2-2' 맞대결이기는 했어도 한국을 넘어서기 위한 중국 선수들의 결연한 자세가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지막 한 바퀴를 남겨놓고 극적인 반전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끝까지 뒤따라가던 전이경이 속도를 내면서 앞지르기 위한 반격을 펼친 것이다.
결국, 양양A를 넘는 것이 불가능할 것만 같았던 마지막 상황에서 인코스로 파고든 뒤 결승선에서 회심의 '날 들이밀기' 전법으로 마침내 뒤집기에 성공, 두 대회 연속 2관왕이라는 위업을 달성해냈다. 전이경에게는 '생애 최고의 순간'이었다.
끊임없는 도전이 여전히 매력적인 그녀
전이경은 올림픽 2연속 제패 후 단 1년 만에 부상 때문에 스케이트화를 벗었다. 하지만, 영원히 벗은 것은 아니었다. 때로는 새로운 종목에 도전하면서, 또 때로는 어린 아이들을 가르치기 위해 전이경은 틈날 때마다 스케이트화를 신었다. 그리고 2005년에는 아이스하키 여자대표팀 선수로 활약해 또 한 번 태극마크를 달기도 했다.
운동했던 것 못지않게 자기 능력 계발에도 빈틈이 없었다. 그녀는 행정가에도 몇 차례 발을 들이며,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 활동 프리젠터로 활약했는가 하면 한국인 최초 선수 출신 IOC(국제올림픽위원회) 선수 분과 위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도전하기 좋아하는 전이경의 활동이 서서히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그러면서 현재는 어린 선수들을 가르치는 것과 더불어 해설위원으로도 꾸준히 활약하며, 생생하고 현장감 넘치는 입담으로 쇼트트랙 팬들의 많은 사랑을 여전히 받고 있다.
현재 중국에 밀려 '도전자' 입장에서 경기를 펼쳐야 하는 한국 여자 쇼트트랙팀에 '전이경 정신'이 새삼 그리운 것은 사실이다. 덩달아 전이경으로 시작된 한국 쇼트트랙 최강 계보가 흔들리지 않을까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그래도 선수 은퇴 후에 더 끊임없는 도전을 펼치는 전이경 '언니'를 조금이라도 닮고 싶어하는 선수들이 많다면 한국 여자 쇼트트랙의 미래는 아주 밝다고 할 수 있겠다.
이번 올림픽에서 다시 세계 최강 자리를 되찾는 한국 여자 쇼트트랙이 돼 해설하면서 호탕한 웃음을 짓는 전이경 '위원'의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을지 지켜봐야 하겠다.
[동계올림픽 영웅 (1)] ▶ 한국 쇼트트랙의 전설, 김기훈을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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