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09.11.10 03:52 / 기사수정 2009.11.10 03:52
[엑스포츠뉴스 = 고양, 조성룡 기자]10월 30일. 숙명여자대학교에서는 2009 고양 여자 대학 축구 클럽 대회 대표자회의가 열리고 있었다.
취재를 위하여 사전 인터뷰를 하던 중 한국외대 FC Holics 선수들의 답변이 흥미로웠다. "유일한 비 체육학과 학생들로서 1승, 아니 1골을 목표로 뛰겠습니다." 모두 우승이 목표라고 당차게 말하거늘, 이런 소박한 꿈을 가진 팀이 어디 있을까, 의아하면서도 호기심이 생겼다. 그리고 11월 7일, 그들은 단 세 경기를 통해 축구란 어떤 것인지 확실하게 보여주었다.
11월 7일 오전 10시. 한창 경기대학교와의 첫 경기를 준비해야 하거늘, 아직 뭔가 부족해 보이는 한국외대의 모습이다. 알고 보니 선수들이 아직 다 도착하지 못해 10명이 뛰어야 하는 상황이다. 학생들을 이끄는 감독은 놀랍게도 외국인이다.
한국외대 국제스포츠 레저학부 조셉 E. 트로란 교수. 그는 한 명이 부족한 상황임에도 미소를 지으며 학생들에게 천천히 작전 지시를 내리고 있었다. 이 대회의 유일한 외국인 감독을 인터뷰하는 것은 마땅하거늘, 그렇지 못하는 기자의 어설픈 영어 실력을 한참 탓할 수밖에 없었다.
첫 경기가 시작되자마자 왜 설문지에 1골을 목표로 한다고 썼는지 그들은 여실히 보여주었다. 전반전 20분, 후반전 20분 합쳐서 40분밖에 되지 않거늘, 정말 신들린 듯이 골을 먹는다. 1명이 부족한 상황이라고 하지만, 너무나 쉽게 실점을 허용한다.
경기대학교 김밝을은 당황해 하는 한국외대 선수들 사이를 헤집고 다니며 연달아 득점에 성공한다. 잔인한 골 폭풍은 한국외대의 골문을 열 번이나 출렁이고서야 겨우 멈춘다.
엄청난 점수 차로 패배한 탓에 분위기가 좋지 않을 법도 했지만, 오히려 분위기는 화기애애하다. "우리는 이곳에 승리보다는 축구 자체를 즐기고자 왔기 때문에 뭐 져도 괜찮습니다. 내년에는 좀 더 나아질 수 있겠지요. (웃음)" 안은주의 말에서도 이러한 분위기가 묻어나왔다.
예상외로 분위기가 괜찮은 틈을 타서, 좀 더 민감한 질문을 던져보았다. 도대체, 이 팀은 왜 이 대회에 출전해서 엄청난 대패를 당하는 것일까. "저희는 한국외대 국제스포츠 레저학부 여학우들로 구성된 팀입니다. 학부 이름에는 스포츠가 들어가지만 사실 저희는 체육학과가 아니에요. 그래서 체계적으로 또 전문적으로 스포츠를 배울 기회가 거의 없었는데 이 대회를 통하여 좀 더 스포츠에 대한 경험을 해보자고 생각해서 출전했습니다." (한국외국어대학교 양송희)
비록 경험을 쌓고 동기부여를 하고자 이 대회에 나왔다고는 하지만 참혹한 패배의 행진은 계속되었다. 중앙대와 가진 두 번째 경기는 0대 9 패배. 그리고 마지막 동덕여대와의 경기는 부상 중에도 이를 악물고 경기를 소화한 신세인의 투혼에도 0대 13이라는 점수를 기록하며 험난했던 조별리그를 마쳤다.
3전 전패 골득실 -32. 이쯤 되면 아무리 낙천적인 사람이라도 얼굴이 굳어질 만하다. "솔직히 허탈해요. 고생하면서 고양까지 왔는데 이렇게 한 골도 넣지 못하고 가는 게 참 안타깝네요." 안병하 씨와 함께 경기 장면을 촬영하며 같은 과 여학우들을 응원하던 최성태 씨의 속마음도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그들은 다시 밝은 얼굴로 일어섰다. 너무나 귀중한 경험을 했기에, 앞으로 더 올라가야 할 곳이 있기에 그들은 낙담하지 않았다. "동료한테 너무 미안했어요. 내년에는 4학년이 되는 관계로 참가하지 못할 것 같지만 후배들의 선전을 기원할 겁니다." (한국외대 골키퍼 류화진)
▲ "우리 우승이다!" "진짜?" 우승컵을 놓고 기념촬영을 하는 한국외대 국제스포츠 레저학부 학생들
그들의 무모하지만 아름다웠던 도전기는 다 같이 우승컵을 들고 기념사진을 찍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비록 저 우승컵을 소유할 수는 없지만 우승보다 더 값진 추억은 선수들의 마음속, 아니 이날 고양시를 방문한 한국외대 국제스포츠 레저학부 학생들 개개인 모두의 마음속에 남았을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가 봐왔던 축구 경기는 승자는 웃고, 패자는 우는 어찌 보면 결과 중심적인 냉정한 스포츠였을 것이다. 하지만, 한국외대 선수들은 우리에게 축구는 냉혹한 스포츠가 아닌, 어떤 상황에서라도 언제든지 웃고 즐길 수 있는 소중한 것이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사람들은 언제나 승리를 꿈꾼다. 그리고 패배를 원치 않는다. 하지만, 이것은 축구를 사랑하는 사람의 모습이라고 하기보다는 승부에 집착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아닐까.
축구를 승부에 연연하지 않고 즐기는 선수들의 모습은 선수들뿐만 아니라 지켜보는 관중에게 긍정적 영향을 끼치게 마련이다. 무엇보다도 즐기는 축구를 하려는 모습 하나만으로도 한국 축구 발전의 밑거름이 되지 않을까.
마지막으로 한국외대의 경기를 지켜보던 한 심판의 말을 소개하며 글을 마치려고 한다. "정말 못해요. 이 친구들, 그런데 너무 즐겁고 재밌게 해요. 이런 모습을 엘리트 축구 선수들은 꼭 본받았으면 좋겠어요. 기자님, 이런 친구들은 꼭 소개해 주셔야 합니다. 너무 아름다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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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1 = 악수하고 있는 경기대학교와 한국외국어대학교 주장 (c) 엑스포츠뉴스 정재훈 기자]
[사진 2 = 우승컵을 놓고 기념촬영을 하는 한국외대 국제스포츠레저학부 학생들 (c) 엑스포츠뉴스 정재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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