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 김현정 기자] “한 치 앞을 볼 수 없는 운명, 그것이 인간이다!” 그토록 피하려 노력했건만, 운명의 굴레에서 벗어나진 못했다. 불길한 예감이 사실로 드러나는 순간, 오이디푸스의 얼굴에 절망이 드리운다. 그럼에도, 고통을 마주하고 주어진 길을 향해 다시 발을 내디딘다. 삶을 반추하게 만드는 비극미가 극대화된다.
연극 ‘오이디푸스’가 서울 예술의 전당 CJ토월극장에서 공연 중이다. 고대 그리스의 3대 비극 작가 중 한 명인 소포클레스의 작품이 원작이다. 지난해 ‘리차드 3세’로 황정민과 함께 한 서재형 연출과 제11회 차범석희곡상을 받은 한아름 작가가 의기투합했다.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해 볼 수 없는 자손을 이 세상에 내놓을 것'이라는 가혹한 신탁을 받은 테베의 왕 오이디푸스의 이야기를 다룬다. 테베에 닥친 역병과 재앙을 해결하기 위해 라이오스왕을 죽인 범인을 찾고자 예언자 테레시아스를 찾는 부분부터 본격적으로 극이 시작된다. 저주를 막기 위해 먼 길을 떠났지만 소용없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아버지 라이오스왕을 살해했고, 어머니인 줄은 꿈에도 몰랐던 이오카스테와 혼인해 자식들을 낳았다. 운명의 활시위를 당긴 건 다름 아닌 오이디푸스 그 자신이다. 테이레시아스와 크레온, 이오카스테의 충고를 듣지 않은 그의 오만이 비극을 불렀다.
‘나는 누구이고 어디에서 왔는가’라는 근원적인 물음을 던진다. 인간이란 한 치 앞을 볼 수 없는 미천한 존재임을 알려주며, 무지한 인간이 저지르는 죄와 그에 따른 책임감을 보여준다. 눈이 보여도 눈앞의 진실을 보지 못했던 오이디푸스는 스스로 자신의 눈을 찔러 파멸에 다다르는 그때야 비로소 삶의 진실을 깨닫는다. 고전의 장대한 서사를 빠르고 깔끔하게 전개한다. 하나씩 벗겨지는 참혹한 진실과 마주하는 오이디푸스의 모습이 긴장감 있게 그려진다. 영상과 조명을 활용한 군더더기 없는 무대, 웅장하면서도 섬세한 음악으로 비극의 맛을 살린다.
황정민은 지난해 연극 '리차드3세'로 10년 만에 무대에 복귀한 데 이어 ‘오이디푸스’로 연극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다. 신탁을 피하려 발버둥 쳤지만 운명의 쳇바퀴 속에 갇힌 오이디푸스의 감정에 몰입한다. 처절한 슬픔부터 분노, 절망, 좌절, 괴로움까지 한데 녹이며 강렬한 존재감을 발산한다. “태어나서는 안 될 운명이 태어나 죽여서는 안 될 사람을 죽이고 결혼해서는 안 될 사람과 결혼해 나아서는 안 될 자식을 낳고 알아서는 안 될 진실과 마주하게 됐구나”, “난 더러운 놈이다”라며 울부짖는 황정민은 보는 이를 숨죽이게 한다.
남명렬, 배해선, 최수형, 정은혜, 박은석 등 베테랑 배우들이 모였다. 배해선은 신탁을 피해 갓 낳은 아이를 버리지만 되돌아온 진실에 절망하는 오이디푸스의 어머니 이오카스테의 불안함, 비탄, 아픔, 좌절 등 복합적인 감정을 표현하며 극에 녹아든다. 코린토스 사자를 연기하는 남명렬, 크레온 역의 최수형, 코러스 장 박은석, 테레시아스 정은혜 역시 시종 힘을 놓지 않는다. 집중도 있는 연기로 관객이 긴장을 유지하며 이야기를 끝까지 따라가도록 한다.
2월 24일까지 예술의전당 CJ 토월극장에서 공연한다. 100분. 14세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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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정 기자 khj3330@xport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