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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준의 클로즈 업 V] 조혜정, "새 배구 인생 목표는 여자국가대표 감독"

기사입력 2009.09.09 10:35 / 기사수정 2009.09.09 10:35

조영준 기자



[엑스포츠뉴스=조영준 기자] 한국 여자스포츠 구기 종목 중, 핸드볼과 배구는 많은 팬의 심금을 울리고 감동시킨 종목이었다. 76년 몬트리올 올림픽에서 한국 구기스포츠 사상 최초로 메달을 획득한 여자배구는 이후에도 80년대와 90년대 짜릿한 명승부를 펼쳐왔다.

한국 여자배구의 특징은 분주한 움직임이 바탕이 된 '조직력'이었다. 늘 신장에서는 외국 팀들에 비해 열세를 보였지만 그들보다 몇 배나 움직이는 배구를 펼치면서 세계의 강호들을 위협해왔다.

몬트리올 올림픽 동메달의 주역인 조혜정(56) KOVO(한국배구연맹) 경기감독관은 한국 여자배구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선수였다. 165cm의 단신이었지만 쉴 새 없이 발로 뛰는 플레이를 펼쳐왔다.

너무나도 유명한 '나는 작은 새'의 명칭을 얻은 그녀는 이 호칭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흔히 나는 작은 새 하면 제가 점프력이 대단했다고 생각 실 거예요. 단신의 약점을 극복한 점도 있었지만 중요한 것은 부지런히 움직이면서 배구를 했다는 점입니다. 한자리에 있지 않고 분주하게 움직이며 플레이했던 점이 '나는' 것처럼 보였을 거예요"

20년 동안 떨어져 있었던 배구코트, 다시 돌아오니 이곳만큼 편한 곳이 없었다

조혜정 감독관은 이른 나이인 23세 때 은퇴를 선언했다. 은퇴 이후, 배구 지도자에 대한 권유를 종종 받았지만 이러한 제의를 거절해왔다. 지도자 일에 전념하려면 모든 것을 이 분야에 쏟아야 했지만 현실의 상황은 그렇지 못했다.

"코트를 떠난 이후, 10년 동안 냉면 집을 운영했죠. 그리고 딸들이 골프를 하고 있는데 아이들의 뒷바라지도 쉽지 않았습니다. 미국 사라소타에 있는 골프 학교를 다녔는데 한국과 미국을 오가야 했지요. 그렇게 세월을 보내다 보니 20년이 훌쩍 지나갔어요. 제가 현역에서 선수로 뛴 해가 11년입니다. 반면, 딸들의 골프 뒷바라지 해는 11년이 훨씬 넘죠. (웃음) 시간을 따져보면 골프와 더 친숙해야 할 텐데 저에겐 역시 배구가 맞아요. 오랜 기간 동안 배구를 떠났지만 여전히 배구를 보면 떠오르는 것이 많지요. 김호철(54, 현대캐피탈 감독) 감독의 권유로 다시 배구계에 돌아왔어요. 막상 돌아오니 이곳만큼 편한 곳이 없었고 다시 배구에 흠뻑 빠져서 살고 있습니다"

현재 KOVO 경기감독관으로 일하고 있는 그녀는 시즌이 시작되면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진다. 그날 벌어지는 경기의 모든 일의 책임은 바로 경기감독관의 몫이다. 경기가 시작되기 2시간 전에 도착해 선수들이 경기를 펼칠 여건이 되는지를 꼼꼼하게 점검한다. 경기장의 시설은 물론, 플로어의 상태와 경기에 필요한 용품이 제대로 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또한, 체육관의 온도도 체크해야 한다.

비디오 판독도 경기감독관이 해야 할 일이다. 경기와 관련된 모든 일을 하고 있는 조혜정 감독관은 일은 힘들지만 새로운 경험을 얻을 수 있어 큰 도움이 된다고 밝혔다.

"경기 도중, 무슨 일이 벌어질지 예측할 수 없으니까 항상 긴장 상태에 있어요. 경기 외적인 일에도 신경을 써야하는데 비디오 판독까지 하니 한눈을 팔 사이가 전혀 없죠. 늘 긴장상태에서 일을 한다는 것이 쉽지 않지만 그래도 값진 경험을 얻어서 만족하고 있어요. 그동안 배구를 한쪽 방향에서만 봐왔는데 이 일을 하면서 시야의 폭이 넓어졌어요"

경기감독관의 일로 배구를 보는 시선이 다양해졌다는 것이 그녀의 의견이었다. 자신이 얻은 체험을 후배들에게 권유해주고 싶은 생각까지 가지게 됐다. 본격적인 배구 시즌이 시작되면 조혜정 감독관은 일주일에 3경기 정도를 책임지게 된다. 일을 시작하면서 경기장을 찾은 팬들을 위해 양질의 경기를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점점 커지고 있다고 대답했다.

몬트리올의 영광은 뜨거운 열정이 담긴 '정신력'에 있었다

조혜정 감독관은 165cm의 단신이었지만 한국여자배구사를 장식한 공격수로 남아있다. 지금보다 여자배구 선수들의 평균 신장이 훨씬 작던 시절에도 그녀보다 작은 선수는 드물었다.

"제가 현역 선수로 뛰던 시절에는 180cm를 넘은 여자 선수를 쉽게 볼 수 없었어요. 가장 큰 선수가 170cm 후반 대였죠. 외국에 나가면 다른 팀들보다 10cm가 작았어요. 높이에서는 열세에 있었지만 스피드와 조직력에서는 결코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당시, 여자배구 세계 최강국은 일본이었다. 일본 여자배구는 이미 오래전부터 대중화가 이루어졌고 선수들은 물론, 지도자 계층도 탄탄한 저변이 있었다. 세계 최고 수준의 수비력으로 정상에 군림하고 있던 일본을 한국이 이겨낸 사건이 벌어졌다.

76년 몬트리올올림픽을 1년여 앞두고 벌어진 프레올림픽에서 한국은 일본을 극적으로 물리쳤다. 당시, 한국이 일본을 이기는 사례는 극히 드물어 처음에는 이 사실을 오보로 들었던 사건도 있었다. 하지만, 세계 최강팀은 한국의 분주한 움직임과 끈끈한 조직력 앞에 무너지고 말았다.

"우리가 일본을 이겼다고 하니까 모두 믿지 못하겠다는 시선이었어요. 그만큼 70년대 중반의 일본팀은 세계 최강이었습니다. 일본이 우리에게 지고 난 뒤, 올림픽을 준비하면서 한국에 포커스를 맞춰 훈련을 해왔어요. 올림픽 준결승전에서 일본에 진 점은 매우 아쉬웠습니다. 차라리 프레올림픽이 아닌, 올림픽에서 일을 냈어야 했는데 말이죠. (웃음)"



올림픽을 앞두고 선수들의 열의는 대단했다. 큰 고생을 겪으면서 준비를 해왔기 때문에 어느 상황에서도 쉽게 물러설 수 없었다. 스포츠에서 강한 정신력이 경기력을 뛰어넘는 상황은 종종 발생한다. '기적'이라고 불렸던 몬트리올 올림픽 동메달의 신화는 '강한 정신력'에서 나왔다고 조 감독관은 주장했다.

"기술적으로는 우리가 가진 기량을 충분하게 발휘하지 못했어요. 하지만, 끝까지 해낼 수 있다는 신념이 큰 힘이 됐었죠. 선수들끼리 의기 투합된 강한 정신력은 기대 이상의 결과물을 만들어냈어요"

배구는 '손'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발'로 한다는 진리

몬트리올 올림픽 동메달의 획득으로 전 국민에게 감동을 준 여자배구는 오랫동안 '효자종목'으로 군림했다. 비록, 올림픽 메달 획득은 더 이상 나오지 않았지만 세계의 강호들을 상대로 쉽게 물러서지 않는 경기를 펼쳐 많은 배구 팬들에게 갈채를 받았다.

그러나 2004년 아테네 올림픽 이후, 한국여자배구는 침체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문제점이었던 높이 문제는 어느 정도 해결됐지만 한국여자배구의 장점이었던 탄탄한 조직력과 '빠른 움직임'은 어느새 실종되고 말았다.

현재 한국여자배구를 이끌어가는 선수들의 근본적인 문제점에 대해 조혜정 감독관은 이렇게 평가했다.

"우리 선수들 중, 잠재력이 뛰어난 선수들도 분명 있습니다. 하지만, '기본기'가 바탕이 된 훈련을 체계적으로 밟지 못한 점이 아쉽게 느껴져요. 체중이 실린 공격을 하려면 일차적으로 발이 볼을 따라가야 하죠. 빠르게 이동해 충분히 타점을 잡은 후, 온몸을 활용해 체중이 동반된 공격을 해야 하는데 이것이 안 되고 있어요. 움직임이 느리다 보니 볼을 쫓아가는데 급급하고 온몸을 사용하지 못하고 손과 어깨만을 이용해 볼을 때리고 있습니다. '키'로만 배구를 하니 시원한 공격이 좀처럼 나오지 않고 있죠. 손과 어깨만 사용하는 공격이 지속될 땐, 부상을 피해갈 수 없어요. 잘못된 타법과 버릇은 부상의 원인이 되기도 하죠"

또한, 조 감독관은 다양한 타법의 구사와 포지션 소화도 강조했다.

"파워와 탄력도 중요하지만 볼이 떨어질 때만 때리는 타법도 개선되어야 합니다. 물론, 상황에 따라서 볼이 떨어질 때 때릴 수도 있지만 올라가는 볼도 칠 줄 알아야 돼요. 상대의 블로킹을 교란하기 위해서는 올라가는 볼과 내려가는 볼을 다양하게 때릴 수 있어야 합니다. 또한, 어린 선수들에게 한 가지 포지션에 고정하는 것보다 다양하게 위치를 이동하면서 경험을 쌓게 해주는 점도 필요하죠.

예전에 이탈리아리그의 훈련을 잠시 본 적이 있었어요. 그곳 지도자들은 주 포지션에서 잘하지 못하는 선수들을 이리저리 옮겨가며 지도하고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원래의 포지션에서도 못하는 선수들을 저렇게 이동시키는지에 대해 쉽게 이해가 안 갔지만 현대배구의 추세를 보면서 생각이 바뀌게 됐죠. 모든 포지션을 소화한 선수들은 훨씬 다양한 플레이를 펼칠 수 있어요"

현재 국제무대에서 유일하게 통할 수 있는 국내 여자배구 선수는 김연경(21, JT 마베라스)이다. 김연경은 리베로는 물론, 모든 포지션을 고르게 거치면서 성장한 대표적인 선수다. 190cm가 넘는 장신임에도 불구하고 기본기가 탄탄하고 서브리시브와 수비가 좋은 점은 이러한 경험이 바탕이 되었다.

"김연경을 볼 때마다 포지션을 고르게 거쳐봐야 한다는 점이 왜 중요한지를 깨닫게 됩니다. 리시브나 디그를 할 때, 잘못 배우게 되면 손으로 받지 않고 몸을 이용해 받는 경향이 생겨요. 하지만, 김연경은 큰 장신임에도 불구하고 몸을 낮추면서 유연하게 손으로 볼을 받고 있죠. 우리 선수들에게 가장 필요한 점은 이런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릴 때부터 기본기를 착실하게 익히고 발전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죠"

그러나 한국 학원스포츠는 여전히 '성적 지상주의'가 강하다. 바로 눈앞에 있는 성적에 연연하다 보니 선수들의 성장에 밑거름이 되는 '기본기' 훈련은 늘 뒷전으로 밀린다. 국제대회에서 나타나는 성적을 보고 선수들을 탓할 것이 아니라 선수들이 제대로 성장할 수 있는 풍토를 조성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조 감독관은 주장했다. 또한, '움직이는 배구'의 중요성을 빼놓지 않았다.

"선수들을 탓하기 전에 좋은 선수들이 성장할 수 있는 풍토부터 재확인해야 합니다. 그리고 공격을 할 때, '내가 해결한다'라는 마음을 가지고 때리는 것이 중요하죠. 그저 툭툭 건드리는 공격은 정말 무의미해요. 좋은 수비와 공격이 수반되려면 반드시 뒤따라야 하는 게 분주한 움직임이에요. 서양과 남미 선수들은 힘과 높이가 좋으니 그것만 이용해 공격을 할 수도 있겠지만 힘과 높이에서 그들을 당해낼 수 없는 국내선수들은 더욱 부지런하게 움직여야 합니다. 어린 시절부터 '이기는 배구'보다 '움직이는 배구'의 중요성을 각인시켜야 돼요"

또한, 생각하는 배구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코트에 들어서면 무엇을 해야 할지 스스로 생각하는 창의적인 사고력도 그녀는 빠트리지 않았다.

"코트에 들어서는 선수라면 블로킹의 3대 요소쯤은 분명히 인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블로킹의 3대 요소는 '높이', '타이밍', 그리고 '예측'이죠. 이 삼박자가 고르게 맞아야 제대로 된 블로킹이 이루어집니다. 지도자들도 카리스마로 선수들을 강하게 이끄는 점도 필요하겠지만 선수 스스로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고 어떤 플레이가 필요한지를 스스로 인지하게끔 도와주는 일이 필요해요“

다시 시작한 '제 2의 배구인생', 국가대표 감독이 목표

20년 만에 코트를 찾은 그녀는 감독관의 일만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대한배구협회에서 강화위원 역할도 하고 있으며 올 봄부터 유망주 발굴에도 적극적으로 나섰다.

배구에 재능이 있는 유망주들을 찾기 위해 '어린이 건강교실'을 설립했다. 배구를 통해 건강을 증진시키고 나아가 기초훈련을 착실히 다지기 위한 이 단체는 조 감독관의 '꿈'이 담겨있다.

"처음에 이 단체를 열 때, 많은 배구 후배들이 도와줬어요. 초기에는 오해도 있었지만 지금은 한국배구 발전의 염원을 위해 똘똘 뭉쳐있습니다. 배구 팬들이 잘 알고 있는 왕년의 스타인 심순옥부터 현재 TV 해설가로 활동하고 있는 박미희(전 미도파)와 장윤희(전 GS 칼텍스)등이 포함돼 있어요. 이들은 모두 바쁜 와중에도 자원봉사자로 참가하고 있죠.

현재 '어린이 건강교실'은 인천과 서울을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총 65명의 자원봉사자가 참여하고 있는데 이들이 각각 1만 원씩을 투자해 이 단체를 운영하고 있어요. 초기에는 어려운 점이 너무 많았습니다. 열악한 상황에서 유망주들을 발굴하자니 맨땅에 헤딩하는 격이었죠. 수많은 배구공을 지하철로 힘겹게 이동시키는 모습을 봤을 땐, 눈물까지 나왔어요. 매우 힘든 상황이지만 배구인들 모두가 한국배구의 미래를 위해 아낌없이 투자하고 있습니다"

척박한 상황에서 이러한 결정을 내린 조혜정 감독관은 오히려 이러한 일이 늦었다고 강조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배구를 외면하고 다른 종목으로 가는 선수들을 줄이려면 이러한 투자와 노력이 필요하다고 답변했다.

"한번 습관화된 버릇을 프로 선수가 된 이후에 고치려면 매우 힘듭니다. 김연경과 같은 선수들을 꾸준히 배출시키려면 어렸을 때부터 착실하게 가르치는 것이 가장 필요해요. 그리고 진정으로 배구를 즐기고 빠져들면서 하는 '즐거움'도 선사해야죠. 지금 운영하는 이 단체를 통해 좋은 선수들을 꾸준히 배출하고 싶은 것은 우리의 염원입니다"

경기감독관을 시작으로 '나는 작은 새' 조혜정의 새로운 날갯짓은 다시 시작됐다. 기초가 탄탄한 선수들을 배출해 한국배구의 미래를 완성하는 것이 그녀의 꿈이다. 또한, 국가대표 여성 감독직을 맡아 한국여자배구의 전성기를 다시 살리는 점도 조 감독관의 목표다.

"예전에는 팀과 선수들을 이끌어갈 준비가 안 됐기 때문에 쉽게 지도자의 길을 선택하지 못했어요. 하지만, 지금은 모든 일을 각오한 상태입니다. 그렇다고 빠른 시간 안에 국가대표 감독 자리에 오르고 싶은 생각은 없어요. 좀 더 준비기간이 필요하고 국내 팀을 이끌면서 경험도 쌓아야겠죠. 그러나 제2의 배구 인생 종착지는 여자국가대표 감독입니다. 이 꿈이 이루어질지는 모르겠지만 한국여자배구의 발전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싶어요"

그녀가 가진 배구의 열정은 몬트리올 올림픽 메달로 해소되지 않았다. 배구 코트를 20년 이상 떠나있었지만 새로운 배구 인생이 그녀의 눈앞에 펼쳐졌다.

"한국여자배구가 발전하려면 배구인들의 열정과 노력, 그리고 희생이 있어야 합니다. 그저 뒷짐만 지고 있으면 이루어지는 것이 하나도 없죠. 밝은 미래를 위해 조금씩 미래를 설계하고 싶습니다" 



[사진 = 조혜정 (C) 엑스포츠뉴스DB 조영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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