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09.09.02 08:00 / 기사수정 2009.09.02 08:00
[엑스포츠뉴스=전성호 기자] 누구나 한번쯤은 친구들 사이의 싸움을 말려본 적이 있을 것이다. 주먹을 치고받는 몸싸움이든, 가시 돋친 말들로 상대방을 모욕하는 설전이든 싸움을 말리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우선 둘을 떼어 놓고 제3자가 개입해 각자의 얘기를 들어주고 시시비비를 가려주며 흥분을 가라앉히는 것이다.
사실 제3자 입장에선 누가 먼저 잘못했든 별 상관이 없다. 일단 싸움이 벌어졌으면 쌍방의 책임이다. 설령 시비를 가른다 해도 싸움으로 이어지기까지 둘 사이에 쌓여왔던 감정이나 과오가 문제이지, 싸움을 촉발시킨 사건에 국한된 잘잘못이 아니다. 나아가 제3자들이 원하는 것은 잘못이 누구의 몫인지를 아는 것이 아닌, 갈등의 원만한 해결 그 자체이다.
싸운 뒤에 오히려 더 친해지는 친구들 사이를 보면 쉽게 알 수 있는 것처럼 다툼을 계기로 서로 간의 오해와 앙금을 훌훌 털며 좋은 관계로 발전시켜 나가는 게 중요하다.
싸움의 당사자들 역시 감정이 폭발한 당시에는 지금까지의 서운함을 자신의 입장에서만 생각하겠지만, 조금만 더 생각해보면 자신도 상대방에게 잘못한 게 없지 않다고 느끼게 된다.
다시는 안 보고 살 사이도 아니라면, 이제까지와는 다른 좋은 관계를 위해 상대방에게 저지른 자신의 잘못을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반성하고 사과해야 한다. 이럴 때 싸움은 타인의 이기심보다 자신의 미성숙을 먼저 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이번 갈등의 프레임을 지금의 'A매치 논란'에 대한 잘잘못에만 맞추는 것은 문제가 있다. '물타기'나 '양비론'을 말하려는 게 아니다. 협회가 사전합의를 깨고 흥행을 위해 주말 A매치를 강행한 것. 이에 연맹이 선수 차출 거부로 으름장을 놓거나 호주전을 앞두고 48시간 이전에만 선수를 보내면 된다는 FIFA 규정을 내세우며 선수 차출을 거부하며 사상 초유의 반쪽짜리 대표팀 소집 훈련을 만든 것. 그리고 결과적으로 A매치 다음날 프로경기가 벌어지는 초유의 상황이 현실화되어버린 현재 상황 등에 대한 책임공방의 과열은 전부 싸움이 벌어진 순간만을 생각하는 실수를 저지른다.
중요한 것은 이런 갈등이 왜 있었는지에 대한 고찰이다. 협회와 연맹의 의사소통체계에 어떤 문제가 있어 왔고, 대표팀을 지나치게 우선시하는 정책이 자국리그에 얼마나 많은 악영향을 주어왔으며, 이로 인해 깨진 둘 사이의 신뢰 관계, 그리고 업무 협력에 어떤 결점이 있기에 일정과 선수차출 문제가 이렇게 쉽게, 또 자주 일어나는지에 대한 문제 제기와 해결 의지가 이번 싸움을 말리는 이들과 싸움 당사자들이 가져야 할 핵심적 태도이다.
당장 9월과 10월에 있을 A매치와 K-리그 일정에 대한 미봉책은 쏟아져 나오면서도, 정작 앞으로 협회와 연맹이 어떻게 지금의 상황을 개선해 나갈 것인지에 대해서는 당사자들이 한마디도 오고 가지 않고 있다. 이런 상태로 가면 올 11월 유럽 전지훈련과 내년 초 대표팀 전지훈련은 물론이거니와, 앞으로도 끊임없는 갈등이 일어날 것이다.
월드컵을 7회 연속으로 진출한 나라가 아직도 대표팀과 자국리그의 선수차출 및 합리적 일정 수립 체계 방식이 없다는 것은 믿을 수 없는 현실이다.
박지성과 이영표가 협회의 대변자? NO!
한국 축구의 아이콘이라 할만한 박지성과 이영표의 연맹을 향한 비판에도 많은 말이 오가고 있다. A매치 기간에 리그 일정을 잡은 연맹에 대한 이들의 비판에 전후 사정을 모르는 듯한 소리라는 지적과 함께 심지어 마치 이들이 협회를 두둔하고 연맹을 비판했다고만 생각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협회와 연맹이 싸움의 당사자라면, 일반 축구팬들과 마찬가지로 박지성과 이영표 역시 옆에서 싸움을 말리는 제3자들이자 기분 좋게 술자리에 참여했다가 친구들 간의 싸움 때문에 모임을 더 이상 즐겁게 보내지 못하게 된 피해자일 뿐이다.
싸움을 말리다 보면 어느 한쪽을 두둔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이 곧 다른 한쪽에만 잘못이 있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박지성과 이영표의 발언은 표면적으로는 연맹을 향했지만, 그 숨겨진 의미 속에는 협회를 포함한 한국 축구 행정 전반에 대한 날 선 비판도 깔려있다. 마치 싸움으로 모임의 즐거움을 망친 친구들에 대한 원망 섞인 중재처럼 말이다.
박지성은 "대외적으로 굉장히 창피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도대체 어느 나라 리그에서 A매치 경기가 있는 날에 리그 경기를 할 수 있는 지가 가장 의심스럽다"고 했다. 언뜻 A매치 기간에 무리하게 일정을 잡은 연맹의 잘못을 말하는 듯하지만, 올 시즌 K-리그 일정의 최종 승인자는 협회가 아닌가. 그 잘못을 승인한 최종 책임자인 협회는 이번 사태의 책임을 연맹에만 돌릴 수 있을까? '9, 10월 A매치 기간 중 A매치 주중 경기, K-리그 주말 경기' 방안 역시 애초에 협회와 연맹이 사전 합의한 내용이다. 내부조율이 얼마든지 가능했음에도 협회는 일방적으로 주말 경기 일정을 강행했다.
"이번 일을 통해 한국 프로축구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느꼈고 대표팀을 사랑하는 사람들도 많다고 느꼈다. 하지만, 정작 한국 축구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없는 것 같다"는 이영표의 발언에서도 연맹에 대한 비판은 협회에도 예외가 아니라는 의중을 읽을 수 있다. 그의 발언은 항상 자신의 유리한 상황에서는 '한국 축구의 발전이란 대승적 차원'을 외치지만 실제적으로는 자신들만의 이익을 추구하는 협회와 연맹의 이중적 태도에 대한 비판이라 할 수 있다.
박지성과 이영표는 현재 대표팀 주장과 최고참급 선수인 동시에 대표팀 선수 중 가장 K-리그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선수들이다. 따라서 이들의 연맹을 향한 비판은 '유럽물 먹어서' 내지는 대표팀 선수이기에 협회를 두둔하고 연맹을 무시하는 처사가 아닌, 그들만이 할 수 있는 행동의 실천이다.
이번 A매치 갈등은 표면적으로는 어느 한쪽의 잘못으로 인해 촉발된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근본적으로는 소통의 부재와 교류의 빈곤이 낳은 쌍방의 다툼이다. 결국, 피해자는 한국 프로축구와 대표팀, 나아가 한국 축구를 사랑하는 평범한 축구팬들과 그 속에서 뛰는 선수들이다. 박지성과 이영표도 그 피해자 중 한 사람들이며 다만 그들의 대표자로서 얘기했을 뿐 누구의 편도 든 게 아니다. 싸움을 말리려는 사람이 그런 것처럼.
박지성과 이영표의 한마디 한마디가 A매치를 둘러싼 갈등에 대한 책임공방을 증폭시킨 것을 보면서 새삼 이들의 영향력을 실감케 됐다. 이들이 '비판'에 그치지 말고 '협회와 연맹이 이번 사태를 계기 삼아 한국 축구 발전에 진정으로 도움이 될만한 새로운 시스템 구축에 나서길 바란다'라는 취지의 화두를 여론에 던져준다면 어떨까?
이는 지금껏 적극적인 협상과 타협을 미뤄오던 협회와 연맹이 나서지 않으려야 않을 수 없는 강력한 여론을 형성시킴으로써 대표팀과 자국리그가 동시에 윈-윈하는 한 단계 발전된 행정 체계를 이룩할 수 있을 것이다.
협회와 연맹은 자신들에게 유리할 때만 외쳐오던 ‘한국 축구 발전이란 대승적 차원’을 위해 지난 앙금을 털고 새로운 관계의 정립에 나서야 한다.
기분 좋은 저녁 모임을 허구한 날 난장판으로 만들어 놓는 이들을 모임에 다시 부르고 싶은 친구들은 아무도 없다.
[전성호의 스카이박스] 대한민국 축구를 가장 편안하게 바라볼 수 있는 공간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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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2010년 월드컵 예선전 북한전을 앞둔 한국대표팀 (C) 엑스포츠뉴스DB 남궁경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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