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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layer vs Player] 울산의 이천수, 수원의 이천수, 전남의 이천수

기사입력 2009.06.30 08:49 / 기사수정 2009.06.30 08:49

취재편집실 기자

[엑스포츠뉴스] [풋볼코리아닷컴=최영민] 이천수가 또 다시 이적 논란에 휩싸였다.

‘풍운아’, ‘비운의 스타’ 등의 수식어가 붙으며 뛰어난 실력임에도 칭찬을 듣기 어려웠던 선수인 이천수. 그가 다시 또 이적에 관한 ‘구설수’에 휘말리며 논란의 중심에 섰다.

2002년 울산에서 데뷔해 2003년 스페인 프리메라리가로 진출, 다시 2005년 울산으로 돌아와 팀의 우승을 이끌었고, 2007년 다시 해외로 눈을 돌려 네덜란드 페예노르트로 진출한 후 국내 수원, 전남 등의 팀에 다시 임대되고, 다시 사우디 알 나스르로의 이적에 이르기까지. 이천수의 축구인생은 그야말로 ‘파란만장’이라는 단어로 밖에는 표현할 수 없을 정도다. 그의 축구인생 중 가장 화려했지만 안타까운 일들이 많았던 국내에서의 생활을 돌이켜본다.

◆ [울산의 이천수Ⅰ] ‘유망주’ 이천수, 화려했던 프로입문

= 인천 부평고의 황금시대를 이끌었던 이천수. 고등학교 졸업후, 축구명문 고려대에 진학하더니 고려대 재학 중 울산현대에 입단하며 화려하게 프로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데뷔 첫 해 18경기에 출장해 7골 9도움을 기록하며 당당히 ‘신인왕’ 자리까지 오르며 화려하게 프로에 입문하게 된다.

2002년 프로 입문과 함께 찾아온 월드컵대표팀의 행운도 이천수를 더욱 돋보이게 만들었다. 이천수의 월드컵에서의 활약은 후에 그가 스페인에 진출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가 될 정도로 인상 깊은 활약이었다. 20대 초반의 어린나이 답지 않은 대담함과 빠른 스피드를 갖췄던 이천수를 세계 축구계에서도 유심히 관찰하기 시작한 것이다.

월드컵 이후, 2003년 시즌에서 이천수는 월드컵에서의 실력을 입증이라도 해보이려는 듯 그 전해보다 더 나아진 실력으로 울산의 공격을 이끄는 역할을 했다. 그리고 2003년은 이천수에게 잊지 못할 한해였다. 바로 첫 해외진출을 하게 된 해이기 때문이다. 2003년 7월, 이천수는 당시 코바체비치, 니하트 등이 주축맴버였던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레알 소시에다드에 진출하게 된다.

◆ [울산의 이천수Ⅱ] 명예롭지 못했던 국내 컴백, 하지만 화려했던 컴백 피날레

= 레알 소시에다드에 진출한 후 별다른 활약을 보이지 못하며 누만시아 등에 임대되며 스페인 생활을 하던 이천수는 스페인에서의 생활을 뒤로한 후 스페인으로 떠난지 만 2년만에 국내로 돌아오게 된다.

국내로 돌아온 이천수는 울산의 K리그 우승을 이끌며 그동안 팀에 기여하지 못했던 것을 단숨에 해결하게 된다. 울산 홈팬들에게도 우승이라는 가장 최고의 선물을 선사하며 2005년 최우수선수, 시즌 베스트11 등 무수한 ‘상복’도 터지게 되는 한해였다. 2005년은 이천수의 선수생활에서 가장 돋보이는 활약을 보였던 한 해였다.

2006년 이천수는 K리그 챔피언 자격으로 출전한 ‘A3 챔피언스컵’에서 득점왕(6골)과 최우수선수상을 수상하며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다. 울산에서 보낸 마지막해인 2007년, 이천수는 팀을 ‘삼성 하우젠컵 2007’ 우승으로 이끌었고, 리그에서 26경기에 출전, 7골 3도움을 기록하며 맹활약했다.

◆ [수원의 이천수] 부끄러운 컴백, 그리고 문제의 시작

= 2008년 다시금 해외진출의 기회가 찾아와 네덜란드 페예노르트에 진출하면서 “성공하기 전까지는 국내에 다시 들어오지 않겠다.”라며 자신 있게 네덜란드로 떠났던 이천수. 하지만 그의 네덜란드에서의 생활은 순탄치 못했다. 경기 출장 횟수가 적어졌고, 운동장에서 빛이 나는 선수인 이천수에게는 고통과도 같은 시간이었다.

그러던 이천수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바로 국내 K리그 수원삼성으로 임대된 것이다. 네덜란드로 진출한지 10개월 만에 국내로 복귀하게 된 이천수는 K리그에서 가장 열성적인 팬들인 수원의 팬들에게 열렬한 지지를 받으며 입단하게 된다.

하지만, 그의 수원에서의 생활도 순탄치 않았다. 차범근 감독과의 ‘불화설’ 등이 터지면서 훈련참가 거부, 무단이탈 등으로 수원구단에서는 이천수를 ‘임의탈퇴선수’로 연맹에 공시하기까지 하였다. 수원에서 단 4경기에 출장해 1골을 득점하는데 그쳤던 이천수는 2005년 국내로 돌아왔을 때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듯 수원을 정상에 올려놓아주길 바랬던 팬들의 기대를 저버리고 말았다.

수원의 ‘임의탈퇴선수’ 공시를 받고 이천수는 그 후 개인훈련을 하면서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며 자숙의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전남 등 K리그 2~3개 팀에서 그에게 관심이 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그라운드에 다시 서게 될 날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 [전남의 이천수] 박항서 감독의 보살핌, 그리고…

= 2009년 초까지 수원이 임의탈퇴선수 공시를 풀어주기만을 기다리며 개인훈련을 해왔던 이천수는 수원이 공시를 풀어주자 그에게 관심을 보였던 전남의 문을 두드리게 된다. 전남이 이천수를 재임대 하는 방식으로 영입하게 된 것이다.

이천수는 전남에 오자마자 박항서 전남 감독에게 ‘특별관리’를 받게 된다. 또 다시 이천수를 구설수에 휘말리게 하지 않기 위해 박항서 감독은 인터뷰 금지령 등 이천수를 극진히 아끼는 모습을 보여줬다. 2002년 월드컵 당시 이천수를 직접 지도하며 누구보다도 이천수를 제일 잘 아는 박 감독이기에 가능했던 것이었다.

하지만 이천수 특유의 ‘기행’은 2009년 K리그 개막전부터 터졌다. 서울과의 개막전에서 이른바 ‘주먹감자 세레머니’를 하면서 연맹으로부터 6경기 출장정지라는 중징계까지 받았고, 징계 중 경기 페어플레이기 기수 봉사활동도 하면서 잘못을 뉘우치는 시간을 가졌다. 선수가 페어플레이기 기수를 하는 것은 이천수가 처음이었다.

이천수의 징계가 풀린 후 전남은 이천수의 활약으로 상승세를 타기 시작했다. 이천수는 4골 1도움을 기록하며 리그 초중반 전남의 연승을 이끌며 팀의 상승세를 주도했다.

하지만, 그런 즐거움도 잠시. 이천수는 또 다시 이적에 관한 ‘구설수’에 휘말리면서 언론과 팬들의 질타를 한 몸에 받게 된다. 사우디의 알 나스르행이 점쳐지고 있는 애초에 전남과의 계약과정에서 문제가 있었다는 이천수의 의견과 ‘괘씸하다’라는 전남측의 의견이 분분한가운데 이천수는 팀에서 나와 현재 사우디로의 이적을 준비중이다.

이천수는 분명 국내에서 손꼽힐 만한 축구선수임에는 틀림없다. 2006년 독일 월드컵에서도 보여줬듯 그의 킥력과 스피드, 개인기는 대표팀은 물론 이천수가 그동안 거쳐갔던 국내 팀들에게도 아주 필요했던 능력이었다. 재능있는 선수가 자꾸 ‘엇박자’행보를 보이고 있는 가운데 축구팬들은 하루 빨리 이천수가 마음 편히 운동할 수 있는 곳에서 편안히 운동을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천수가 새로운 축구인생을 맞이할 사우디에서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귀추가 주목된다.

최영민(ymchoi@footballcorea.com) / 사진 제공 = 울산 현대, 수원 삼성, 전남 드래곤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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