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최종편집일 2024-11-29 1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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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천수, 아픈 기억은 모두 털어버리길...

기사입력 2005.07.20 09:10 / 기사수정 2005.07.20 09:10

안희조 기자

 어느덧 피스컵이 대회 중반으로 접어든 7월 18일,  레알 소시에다드와 보카 주니어스의 2라운드 경기가 부산 아시아드 경기장에서 펼쳐졌다.

 개막일이었던 지난 15일 18,000 여명에 불과했던 부산 아시아드의 관중 수는 이 날 경기를 맞아 3만5000여명으로 두배 가량 증가해 있었다.

 대회가 중반으로 접어들며 피스컵에 대한 관심이 증가한 탓도 있었겠지만 아무래도 이 날 관중 증가의 직접적인 원인 중 하나는 부활의 칼을 갈고 있는 '밀레니엄 특급' 이천수 때문이었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전반 경기 중간중간에 벤치에 앉아있던 이천수의 얼굴이 경기장 화면에 잡히자 관중석에서는 골이라도 터진 듯 한 함성이 나왔다.

 후반 중반까지 벤치를 치키고 있던 이천수가 유니폼을 차려입고 경기장에 나설 준비를 하자 0-0의 지루한 승부에 죽어있던 관중석의 분위기는 180도 돌변했다. 관중들은 이천수의 동작 하나 하나에 열광했고 아쉬워했다.

 후반 21분 호사투과 교체되어 경기장에 들어선 이천수는 왼쪽 날개로서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며 레알 소시에다드의 득점을 만들려 애썼다. 두어 차례의 슈팅과 돌파 몸싸움을 펼치며 비교적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특히 후반 42분에는 수비수 한 명을 제치고 슈팅을 시도하며 관중들의 함성을 이끌어 냈다.

 비록 경기는 0-0으로 싱겁게 끝이 났지만 아시아드를 찾은 많은 관중들은 되살아나고 있는 이천수의 매서운 움직임을 보며 약간의 아쉬움을 달랠 수 있었다.

 벤치에서 경기장 화면에 자신의 모습이 나올 때마다 손을 흔들며 관중들의 환호에 답례했던 이천수는 경기가 끝난 후에도 관중들을 향해 인사를 하며 자신을 잊지않고 있는 팬들에 대한 감사를 표했다.

 그러나 경기를 마치고 보여진 이천수는 분명 레알 소시에다드의 선수가 아니었다. 승부를 끝내고 양 팀 선수들이 서로 인사를 주고 받는 동안 이천수는 그 모습을 매정하게 등진 채 외로이 경기장을 걸어 나왔다.

  피스컵, 화려한 축제 분위기 속에 대회는 치러지고 있지만 이천수에게 피스컵은 그리 달갑지 않은, 결코 즐거울 수 없는 일이었다. 레알 소시에다드 구단과 피스컵 조직위 사이의 계약조건 때문에 그야말로 '계륵'의 존재가 되어 소시에다드 선수로 뛰어야 하기 때문이다.

 지난 2월 누만시아와 레알 소시에다드로부터 거의 버림받다시피 하며 선택한 국내복귀, 이천수에게 스페인 생활은 하나의 쓴 경험일 뿐 즐거운 추억은 아니었다.

 그러나 레알 소시에다드와의 악연의 끈은 쉽게 끊어지지 않았다. 소시에다드 구단이 피스컵 대회 출전을 계약하며 체결한 위약금(이천수를 비롯한 특정선수를 출전시키지 않을 경우 구단은 초청비의 2배에 달하는 위약금을 물어야 한다) 문제 때문에 울산에 있음에도 여전히 소속은 레알 소시에다드에 있는 '어이없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선수임에도 경기에 뛸 수 없었던 지루한 시간들, 그러나 컨디션이 떨어질대로 떨어진 이천수에게는 조용하게 부활의 칼날을 갈 수 있는 시간이었다. 울산 구단에 합류해서 몸을 만들어 왔고 4주 군사훈련도 마쳤다.

 자신의 팀도 아닌 선수들과 실패의 아픈 기억을 되살리며 경기에 나서야 하는 이천수로서는 분명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다. 소시에다드 감독인 아모로루트 감독으로서도 팀에 있지도 않은 선수를 출전시켜야 만하는 딜레마를 가져야 했다.
 
 그러나 소시에다드와의 지독한 연을 끊어버릴 수 있는 마지막 순간이기도 했다. 먼 이국땅에서 겪은 어려움과 실패의 순간들은 피스컵을 마지막으로 모두 기억 속에서 지워버리고 예전의 당당하고 자신감 있는 이천수로 거듭나야 했다.

 비록 소시에다드 선수들과의 호흡은 맞지 않았지만 이천수는 경기장에서 최선을 다했다. 있는 힘껏 공을 향해 달렸고 상대와 부딪혔다. 이천수를 보려 경기장을 찾은 팬들과 시청자들에게 자신의 부활하고 있는 모습을 힘껏 펼쳐보였다.

 혹자들은 이천수가 말만 앞서며 너무 자만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것은 이천수가 한국축구의 미래를 짊어질 밀레니엄 특급으로  성장하고  한국인 최초의 프리메라리거로 거듭날 수 있었던 최고의 무기, '자신감'이었다. 
 
 어떤 어려운 상황에서도 자신은 최고라는 자부심, 최고를 능가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기에 이천수는 한국을 대표할 수 있는 선수가 될 수 있었다. 그러나 먼 이국땅 스페인에서의 생활은 축구선수로서 이천수 최고의 무기를 무디게 만들었다.

 힘든 시간을 겪고 이천수는 이제 예전의 자신감을 되찾고 '당당한' 이천수로 돌아오려 한다. 최상의 길 만을 걸어온 이천수, 그러나  스페인에서의 쓰디쓴 순간들은 성공하는 방법 뿐 아니라 실패하는 방법이 어떤 것인지도 알려주었다.

 이제 한 경기만을 남겨두고 있는 피스컵, 이천수의 안방이 될 울산에서 마지막 남은 한과 아쉬움을 모두 털어버리고 2003년 K리그 최고의 플레이어로 우뚝 섰던 그 때의 이천수가 우리의 눈 앞에 되돌아오기를 기대한다.

 



안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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