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언 킹’ 이승엽이 지난 12일, 세이부 라이온즈의 홈구장인 인보이스 세이부돔에서 열린 세이부 라이온스와의 원정 2차전에서 4회 1점 홈런을 기록하며 시즌 20홈런 고지에 올랐다. 지난 4월 5일 세이부와의 원정 경기에서 시즌 첫 홈런을 기록한 뒤, 67게임 만에 나온 20호 홈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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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승엽 선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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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지바 롯데 |
지난 시즌 .240의 타율과 14홈런-50타점이라는 실망스런 성적표를 손에 쥐었던 이승엽이 일본 진출 두 번째 시즌인 올해, 작년과 사뭇 다른 모습을 보여주며 반환점을 돌고 있다. 솔로 홈런이 많았던 탓에 홈런과 안타(63개) 수에 비해 타점(46)이 좀 적은 것이 흠이지만, 이런 추세로 나간다면 홈런 35개 정도에 100안타 80타점 정도는 가능할 전망.
국내에서 쌓았던 기록들에 비하면 보잘 것 없어 보이지만, 우리 프로야구 보다 한 단계 위의 수준을 자랑하는 일본 프로야구에서 두 해 만에 그 정도의 성적을 기록하게 된다면 충분히 만족할 만한 성적표이다. 한국 프로야구의 자존심과 자신의 존재가치를 어느 정도 세울 수 있는 성적이다.
'아! 플래툰 시스템'올 시즌 이승엽은 발렌타인 감독의 철저한 플래툰 시스템에 의해 경기를 치르고 있다. 좌완에 약점을 보였던 터라 상대가 좌완 투수면 선발 라인업에서 빠지기 일쑤였고, 지난해 애를 먹었던 포크볼을 비롯한 변화구가 좋은 투수가 나와도 선발 자리를 차지하기 힘들었던 것이 사실이었다.
지금까지(7월 14일 현재) 이승엽의 출장 경기 수가 67을 기록하고 있지만, 경기 후반 대타로 나온 것을 빼면 정상적으로 경기를 소화한 것은 50경기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꾸준히 경기에 출장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 부분이다. 홈런도 홈런이지만, 타율 같은 부분은 거르지 않고 계속 경기에 출장해야만 타격감을 유지하여 좋은 성적을 올릴 수 있는 것이기에 더욱 그렇다.
이렇게 표면적으로 드러난 이유도 그렇지만, 플래툰 시스템의 희생양이 되어 선별적으로 경기에 출장하면서 급하고 초조해진 이승엽의 전체적인 타격 마인드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주고 있다.
현재 이승엽은 25(사구 포함)개의 볼넷과 42개의 삼진을 기록하고 있다. 국내에서 9시즌 동안 볼넷과 삼진의 비율의 거의 1:1(삼진 1개당 볼넷 비율 0.9) 이던 이승엽이 두 배 정도로 삼진의 개수가 많다는 것은 그만큼 타석에서 급했다는 이유이다.
아직 확실한 에브리데이 플레이어(주전)로서의 입지를 굳히지 못했기 때문에, 타석에서 보다 공격적이고 적극적인 타격 자세로 감독의 눈도장을 확실히 받아야 했기 때문. 이런 초조함은 결국 낮은 수준의 선구안을 불러오게 되고, 좋지 않은 공에 손이 나가 유인구가 좋은 일본 투수들에게 쉽게 휘말리게 되기 마련인 것이다.
악조건 속에서도 희망을 찾았다하지만 이승엽의 그러한 악조건 속에서도 20개의 대포를 쏘아 올려, 슬러거로서의 자질과 능력은 충분히 입증했다. 상대 투수와의 수 싸움에서 이겨, 공을 완전히 몸에 받친 상태에서 때려야 나오는 것이 홈런인 만큼 이번 시즌 이승엽의 홈런은 일본 투수들에게 어느 정도 적응했다는 증거로 볼 수 있다.
지난 시즌 이승엽이 100경기 출장에 14개라는 실망스런 홈런 수를 보였던 것은 이승엽의 타격 스타일 때문이었다. 이승엽은 힘에 의존해 공을 때려 넘기는 스타일이 아니라, 공을 배트 중심에 정확하게 맞추는 기술과 정점의 순간에서 때리는 타이밍으로 홈런을 만들어 내는 스타일이다.
그래서 국내와는 전혀 다른 일본 투수들의 전체적인 투구 패턴과 구질을 파악하지 못해, 그동안 타이밍을 맞추기가 쉽지 않았던 것. 하지만, 올 해는 그러한 약점들을 어느 정도 극복해서 이승엽 특유의 타이밍과 부드러운 스윙으로 홈런을 만들어내기 시작하면서 제자리를 찾은 것이다.
또 득점권 타율은 3할(.298)에 육박하고 있고, 장타율도 .608로 리그 상위권을 형성하고 있다. 비록 규정타석 미달로 정규 순위에는 들지 못하고 있지만, 규정 타석을 다 채운 술레타(.635)와 마쓰나카(.612)를 제외하면 리그 3위의 기록이다.
일부에서는 이승엽이 약점을 보이고 있는 좌완 경기에 출장시키지 않는 등, 발렌타인 감독의 플래툰 시스템도 지금과 같은 성적을 기록하고 있는데 한 몫을 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작년과는 확연히 달라진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야구 인생에서 처음 ‘실패’를 맛보았던 지난 시즌의 아픔을 딛고 일어선 이승엽이, 올 시즌 얼마만큼의 활약을 펼쳐 실추되었던 한국프로야구와 자신의 명예를 되찾을지 주목된다.
손병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