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최종편집일 2024-11-26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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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겨 인사이드] '완성형'에 접근하고 있는 패트릭 챈

기사입력 2009.05.08 03:14 / 기사수정 2009.05.08 03:14

조영준 기자



[엑스포츠뉴스=조영준 기자]
2008년 12월 13일, 전국의 시선은 경기도 고양시에 위치한 어울림누리 얼음마루 아이스링크에 집중됐다. '피겨 여왕' 김연아(19, 고려대)가 국내에서 벌어지는 ISU(국제빙상경기연맹) 그랑프리 파이널 프리스케이팅에 참가하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4천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소규모의 링크인 어울림누리 얼음마루의 관객석은 물론, 통로까지 북새통을 이루었다.

김연아가 출전하는 여자 싱글 프리스케이팅에 앞서 남자 싱글 경기가 펼쳐졌다. 쟁쟁한 남자 싱글 스케이터들이 몸을 풀기 위해 빙판에 들어서자 관객들의 함성은 고조됐다. 그 중에서도 유난히 눈에 띄는 선수가 있었다. 훤칠한 키에 좋은 체격을 지는 것은 아니었지만 점프에는 힘이 넘치고 있었다. 또한, 부드러운 스케이팅 기술은 매우 돋보였다.

중국계 캐나다 선수인 패트릭 챈(19)은 전날 벌어진 쇼트프로그램에서 실수가 잦았다. 프리스케이팅에서 점수를 만회하는 것이 그의 목표였지만 첫 번째 과제인 '트리플 악셀'에서 넘어지고 말았다. 아무런 일이 없듯이 훌훌 털고 일어섰지만 챈은 또다시 점프에 실패하며 빙판 위에 주저앉았다. 결과는 종합 5위. 나름대로 분전한 대회였지만 패트릭 챈 자신에게는 아쉬움이 짙게 남는 무대였다.

스케이팅 기술로 다진 실력, 서서히 고개를 들다

그랑프리 파이널이 끝난 뒤, 40여 일이 지난 올해 2월 초. 패트릭 챈은 자신의 명예를 회복할 기회를 잡았다. 4대륙 선수권대회가 본국인 캐나다 밴쿠버에서 개최됐기 때문이다. 이 대회에 출전한 패트릭 챈은 생애 최고의 연기를 펼치며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당시 밴쿠버 현장에 있었던 최인화(남자 피겨 국가대표 김민석의 서브 코치) 코치는 "홈 관중의 기립박수를 받은 챈은 그랑프리 파이널 때와 비교해 훨씬 성장해 있었다. 무엇보다 힘이 넘치는 점프가 안정감을 찾았고 자신감도 넘쳐있었다. 남성적이고 선이 굵은 연기에 재능이 있었는데 4대륙 대회에서 비로소 만개한 모습을 보여주었다"라며 당시의 상황에 대해 설명했다.

패트릭 챈을 조명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장점은 부드러운 '스케이팅 기술'이다. 생동감이 느껴지는 연기를 펼치려면 무엇보다 스케이팅 기술이 받쳐줘야 한다. 피겨 스케이팅의 무대는 지상이 아닌, 순백색의 '아이스링크'이다. 탄탄한 스케이팅 기술이 받쳐주지 않으면 빙판 위에서 표현되는 연기력과 기술의 질이 떨어지고 만다.

이러한 점 때문에 스케이팅 기술은 가장 중요한 요소로 평가되고 있다. 국내 피겨 유망주들 중, 유연한 스케이팅 기술을 지닌 이준형(13, 도장중)의 지도자이자 어머니인 오지연 코치의 답변을 들어보면 다음과 같다.

"준형이에게 가장 많이 가르치는 것 중 하나가 스케이팅 기술이다. 탄탄한 스케이팅 실력이 있어야만 피겨 기술을 빙판 위에서 구사하는데 유리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기본기와 스케이팅을 가장 중요하게 강조하고 있다"

공교롭게도 이준형은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스케이터로 제프리 버틀(27, 캐나다, 현역 은퇴)과 패트릭 챈을 꼽았다. 이들을 좋아하는 이유로 이준형은 "부드러운 스케이팅 때문"이라고 밝혔다.

패트릭 챈은 4대륙 선수권에서 급성장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챈의 성장은 결코 단시일 내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탄탄한 기본기와 스케이팅 기술을 지닌 챈은 점프의 성공률이 안정감을 이루면서 정상급 선수로 발돋움했다.

현재 피겨 남자 싱글의 경쟁 구도는 '춘추전국시대'로 불린다. 실력이 엇비슷한 선수들이 '종이 한 장'의 차이로 메달 색깔이 바뀌는 현실이 자주 연출된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 속에서 패트릭 챈에게 후한 점수를 주는 전문가들은 상당수 존재한다.

오지연 코치는 "챈은 워낙 기본기가 뛰어나고 스케이팅 기술이 좋은 선수이다. 가장 중요한 것을 갖춘 스케이터가 점프에서 자신감을 찾았다. 그리고 세계 정상급 선수로 우뚝 올라섰다. 챈에게 가장 후한 점수를 주고 싶은 부분은 '안정감'이다. 점프와 스핀, 그리고 스텝 등의 기술을 받쳐주는 기본기와 스케이팅이 뛰어난 챈은 실수할 확률이 낮고 안정감이 돋보인다. 최근에 벌어진 4대륙 대회 금메달과 세계선수권 은메달은 결코 우연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라고 평가했다.

챈은 브라이언 쥬베르(25, 프랑스)와 토마스 베르너(23, 체코)처럼 실전경기에서 쿼드 점프를 구사하지 않는다. 그러나 트리플 악셀을 비롯한 챈의 점프는 파워와 비거리가 뛰어나다. 여기에 안정된 스핀과 박진감 넘치는 스텝까지 갖춘 챈은 '토털 패키지'에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

패트릭 챈은 쇼트프로그램과 프리스케이팅에서 첫 번째 과제로 '트리플 악셀'을 시도한다. 그리고 김연아가 구사해서 친숙한 콤비네이션 점프인 트리플 플립 + 트리플 토룹 콤비네이션도 챈의 특기이다.(패트릭 챈의 트리플 플립에 이은 콤비네이션 점프는 김연아의 것과 흡사해 보인다. 중요한 것은 두 선수 모두 쓰리턴 궤적으로 플립 점프를 시도한다는 점인데 캐나다 선수들에게 주로 나타나는 특징이기도 하다. 오래전부터 캐나다에서 주로 전지훈련을 해온 김연아는 자연스럽게 이 영향을 받았고 지금은 가장 정석적인 궤적을 이용해 점프를 시도한다)

후속 점프로 챈은 트리플 러츠와 트리플 악셀에 이은 더블 콤비네이션 점프를 시도한다. 이 점프들의 조합에 스핀과 스텝이 힘을 실어주고 있다. 챈은 스핀에서 꾸준하게 레벨4를 받고 있다. 또한, 서큘러 스텝과 직선 스텝에서는 레벨 3 이상을 유지하고 있다.(2009 LA 세계선수권 프리스케이팅에서는 서큘러 스텝이 레벨 4에 가산점을 1.40이나 받았다)

부드러운 스케이팅 기술을 앞세운 챈은 표현력에서도 강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달 말, 경기도 고양시 킨텍스 특설 아이스링크에서 벌어진 'KCC스위첸 페스타 온 아이스2009' 공연 때, 현장에서 선수들을 지켜본 최인화 코치는 "챈을 볼 때, 가장 시선이 집중되는 곳은 손이다. 피겨 선수치고 매우 큰 챈의 손은 자연스럽게 사람들의 시선을 이끈다. 보는 이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손동작은 표현력을 한층 끌어올리고 있다. 또한, 현란하게 움직이는 스텝과의 조화도 매우 뛰어나다. 챈이 가진 큰 손은 강렬하고 힘이 넘치는 연기를 펼칠 때, 위력을 발휘한다"라고 평가했다.



아직도 미완의 스케이터, 밴쿠버 올림픽을 겨냥하다

성숙한 외모에 비해 챈은 아직도 19세에 불과한 어린 선수이다. 지금도 정상급의 수준이지만 아직도 발전 가능성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점을 볼 때, 챈의 미래는 분명히 긍정적으로 전망된다.

'안정감'에 있어서 챈이 다른 선수들에 비해 우위를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어려운 구성의 프로그램을 수행하는 브라이언 쥬베르가 '한 치의 실수'가 없는 완벽한 연기를 수행한다면 상황은 복잡해질 수도 있다.

지난 2009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챈은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시상대의 맨 꼭대기에 올라선 선수는 에반 라이사책(24, 미국)이었다. 라이사첵은 쇼트프로그램에서 트리플 플립을 시도하다가 어텐션('!'로 표시 점프의 모호함)을 받은 것 이외에는 특별한 실수가 없었다. 쇼트프로그램에서 1위를 차지하고 프리스케이팅에서 흔들린 쥬베르에 비해 안정감 있는 연기를 펼친 스케이터는 라이사첵과 챈이었다.

이 둘의 경쟁은 라이사첵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 챈은 세계선수권 쇼트프로그램이 끝나고 난 뒤, 기자회견에서 아쉬움을 토로했다. 트리플 악셀을 비롯해 모든 요소를 무리 없이 소화한 챈은 82.55의 점수로 쇼트프로그램에서 3위를 기록했다. 챈은 "솔직한 심정을 밝힌다면 심판들의 판정에 조금은 실망했다. 그러나 심판의 판정은 내가 관여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점수를 떠나서 좋은 연기를 펼친 것에 대해 만족하고 있다"라고 담담하게 대답했다.

결과는 순위가 말해준다고 한다. 그러나 결코 이것이 선수를 평가하는 모든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라이사첵이 지난 시즌, 자신이 보여준 최고의 연기를 펼쳤다는 점이다. 라이사첵은 세계선수권 우승으로 자신감도 되찾았다. 그리고 챈의 경우, 세계선수권에서 은메달을 차지했지만 중요한 것은 따로 존재한다. 바로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완성형'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사실.

올림픽을 앞둔 현 시점에서 남자 스케이터들의 경쟁은 매우 흥미로운 관심사다. 2010년 밴쿠버올림픽이 본국인 캐나다 밴쿠버에서 열리는 점은 챈에게 분명히 유리하다. 그러나 사소한 실수로 인해 선수들의 명암이 엇갈리는 것이 피겨 스케이팅의 특징이다. 특히, 실력이 엇비슷한 남자 싱글에서 우승후보를 거론하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Viva La Vida', Chan

패트릭 챈의 연기를 보면서 느끼는 즐거움은 아직도 진행 중인 '성장'에 있다. 2009 페스타 온 아이스에 출연했던 챈은 콜드 플레이의 경쾌한 'Viva La Vida'에 맞춰 다이내믹한 연기를 펼쳤다. 힘이 넘치는 점프와 유연한 스핀, 여기에 현란한 스텝과 부드러운 스케이팅 기술이 조화를 이룬 챈의 연기는 많은 이들의 호평을 받았다.

장난기 어린 표정에서 나타나듯 챈은 다른 스케이터들과 잘 어울리고 친절한 선수로 유명하다. 특히, 챈은 이번 '페스타 온 아이스2009'에 참가한 국내 남자 싱글 국가대표인 김민석(16, 불암고)을 격려했다.

나이가 비교적 어린 애덤 리폰(20, 미국)과 챈, 그리고 김민석이 서로 잘 어울렸다고 주변 관계자들이 증언했다. 챈과 리폰은 김민석에게 "트리플 악셀이 잘 되느냐?"라고 관심을 나타냈고 격려도 빼놓지 않았다.

패트릭 챈은 뛰어난 스케이터지만 '현존하는 최고의 남자 싱글 스케이터'는 아니다. 아직도 이렇게 부르기엔 무리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오히려 '피겨와 관련된 모든 요소에서 장점을 지녔고 아직도 성장 가능성이 충만한 스케이터'로 보는 것이 적절한 시선이다.

피겨 팬들 사이에서 '버터 스케이팅'이라 불리는 부드러운 스케이팅 기술은 단기간에 나타나지 않는다. 짧은 기간 안에 좋은 성적을 얻으려면 점프에만 집중하는 것이 훨씬 낫다. 그러나 탄탄한 기본기와 스케이팅 기술은 선수들의 성장에 든든한 밑거름으로 작용한다.

오지연 코치는 "빠른 기간 안에 높은 점수를 얻으려면 점프와 스핀에만 매달리는 것이 좋다. 그러나 스케이팅과 기본기는 훌륭한 선수를 완성하는 든든한 밑그림이 된다. 단기간에 나타나지는 않지만 스케이팅 실력이 좋으면 나머지 기술들도 한층 탄탄하게 완성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패트릭 챈은 좋은 표본이 되는 선수"라고 평가했다.



[사진 = 패트릭 챈 (C) 엑스포츠뉴스DB 남궁경상 기자, 김경주 기자]



조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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