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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이박스] 중국 축구의 후진성을 보여준 '시간 끌기'

기사입력 2009.04.22 13:01 / 기사수정 2009.04.22 13:01

전성호 기자



[엑스포츠뉴스=전성호 기자]
축구는 전쟁이란 말을 자주 쓴다. 그러나 전쟁과 축구가 다른 점은 전자가 생존과 승리를 위해서라면 그 어떤 수단과 방법도 용인하는 반면, 후자는 정해진 규칙과 스포츠맨십을 저버리는 순간 난장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중국 축구는 여전히 이를 혼동하고 있는 듯하다. 4월 21일에 열린 AFC 챔피언스리그(이하 ACL) F조 조별리그 4차전 FC서울과 산둥 루넝의 경기에서 보여준 중국 선수들의 시간 지연 행위는 실망을 넘어 분노마저 자아냈다.

비기기만 해도 16강 진출의 유리한 고지에 오를 수 있었던 산둥 선수들은 후반 33분 동점골을 터뜨린 이후, 틈만 나면 그라운드에 드러누워 시간을 끌었다. 그러다 의료진이나 들것이 들어가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 벌떡 일어나며 경기 상황으로 돌아왔다.

추가시간 3분마저도 대부분 중국 선수들의 '꾀병'에 의해 흘러가버렸고, 결국 주어진 추가시간을 넘겨 5분이 지난 뒤에야 경기가 종료됐다. 그러나 그 시간 동안 실제 경기가 진행된 시간은 1분도 채 되지 않았다.

이러한 산둥의 시간 지연 행위에 대한 심판의 안이한 대처도 문제였지만, 국가대표가 즐비하고 명색이 '중국 최고의 클럽'이라는 산둥의 선수들이 보인 행동은 보는 이로 하여금 민망하다는 생각이 들게 할 정도였다.

흔히 '침대 축구'라 불리는, 시간을 끌기 위해 일부러 그라운드 위에 드러눕는 행위는 축구의 규칙에는 명시적으로 어긋나진 않지만 엄연히 스포츠맨십에 반하는 것이다. 주어진 시간 속에서 정정당당히 진검승부를 펼치고 정직하게 승자와 패자를 가려야 함에도, 거짓된 몸짓으로 비겁하게 대결을 회피하여 왜곡된 결과를 이끌어 내려 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페널티킥을 얻고자 심판을 속이려 하는 '다이빙'에 대해 비판적인 것도 같은 맥락에서 비롯된다.

그렇기에 서울의 김치우 역시 “같이 운동하는 선수들끼리 기본적인 것은 지켜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런 부분을 너무 안 지켜줬다.”라며 산둥의 시간 지연 행위를 비판한 것이다.

더군다나 시간 지연 행위는 열정적이지 못한 축구의 상징이다. 프로선수라면 자신이 가진 모든 기량과 열정을 그라운드 위에서 팬들에게 보여줄 의무가 있다. 마음을 다해 응원해주는 팬들에게 최선을 다한 경기로 화답하지 않는다면 그는 프로축구 선수로서 함량미달이다. 한마디로 '침대 축구'는 팬을 무시하는 행위다.

시간 지연 행위는 FIFA에서도 엄격하게 다루는 문제다. 대부분의 국제 대회에선 주심의 휘슬이 울린 상황에서 공을 일부러 멀리 걷어낸다든가, 골키퍼가 제때 골 킥을 하지 않거나, 드로잉을 일부러 천천히 하며 시간을 끄는 행동, 심지어는 지나친 골세리머니에도 가차없이 경고가 나간다.

사실 중국 축구의 '드러눕기'는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었다. 서울과 산둥의 경기 외에도 당장 최근 몇 년 속에서 기억나는 것들만 여러 사건이 있었다.

중국의 상습적인 '침대 축구'

2005 ACL에서 선전 지안리바오는 조별리그 E조 마지막 경기에서 수원 삼성을 맞아 1-0으로 승리하며 8강 진출에 성공했지만, 선제골을 기록한 이후에 선전 선수들의 거친 반칙과 비겁한 시간 지연 행위는 빈축을 사기에 충분했다. 같은 대회에서 당시 J리그 요코하마 마리노스에서 뛰던 안정환은 산둥과의 경기에서 시간을 끄는 산둥 선수들에게 항의하다가 산둥 팀 닥터에게 폭행을 당하는 일까지 겪었다.

2008 ACL E조 조별리그에서 포항 스틸러스는 창춘 야타이를 상대로 경기를 치렀다. 이겨야만 8강 진출의 희망을 이어갈 수 있던 상황에서 포항은 2-2로 비기고 만다. 그런데 이 경기에서 창춘 선수들은 후반 막판부터 틈만 나면 넘어져 일어날 줄을 몰랐다. 경기 후 인터뷰에서도 포항의 세르지오 파리아스 감독이 "상대팀이 시간을 벌기 위해서인지 선수들이 넘어진 뒤 다시 일어나는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 하지만, 주심이 추가 시간을 많이 안 준 것 같다."라며 불만을 터뜨렸다.

프로축구뿐 아니다. 2008년 2월에 열린 제3회 동아시아축구선수권대회에서 중국은 남자부와 여자부에서 모두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놀라운 추태를 보였다.

우선 남자부, 중국은 북한과의 대회 마지막 경기에서 3-1 역전승을 거두었다. 그러나 중국 수비수는 북한 공격수와 몸싸움을 벌이다 틈만 나면 바닥에 뒹굴며 시간을 지연시켰고, 파울을 당하면 보복성 태클을 하며 퇴장을 당했다. 무더기 경고를 받은 중국은 후반 말미에 두 명이나 퇴장을 당했고, 중국의 경기지체에 추가시간은 무려 7분이나 적용되었다. 패배보다 비참한 승리였다.

여자부에선 더 기가 막힐 일이 벌어졌다. 한국과 중국과의 경기에서 2-3으로 뒤지고 있던 한국은 추가시간 막판 코너킥 찬스를 얻었다. 코너킥을 차기 전 치열한 자리싸움이 벌어지던 와중에 중국의 주장 리지에는 특별한 몸싸움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싼 채 그라운드에 쓰러지며 시간을 끌기 시작했다.

이에 주심은 리지에에게 그라운드 밖으로 나갈 것을 명령했고, 리지에가 나가면서 경기는 재개됐다. 하지만, 한국의 권하늘이 코너킥을 차려는 순간, 리지에는 갑자기 벌떡 일어나 권하늘에게 달려들어 공을 건드리며 코너킥을 방해했다.

이런 어이없는 행동에 리지에는 경고누적으로 퇴장을 당했지만 시간은 더욱 지체되었고, 결국 동점골을 노릴 수 있었던 코너킥이 다시 주어지지 않은 채로 경기가 끝나 버리는 어이없는 상황이 벌어졌다.

이 외에도 중국 축구에선 시간 지연 행위가 너무나 많이, 자주 일어난다. 중국 축구의 이런 모습이 특히 우리나라 대표팀과 클럽을 상대로 자주 일어나는 것은 1978년 이후 대표팀 간 경기에서 한국을 단 한 번도 이기지 못한 '공한증'의 설움에서 비롯된다고도 볼 수 있겠지만, 이는 근본적으로 중국 선수들의 축구에 대한 잘못된 접근법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중국 축구계는 이런 시간 지연 행위가 승리를 위한 당연한 행위인 것처럼 여기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ACL에서의 중국 슈퍼리그 팀들의 약진이 화제다. 특히 K-리그 팀들과의 전적에서 예전과는 달리 대등한 경기를 펼치는 이들에 대해 인식의 변화와 경계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지만, 시간 지연 행위와 같은 반(半) 스포츠맨십이 뿌리뽑히지 않는 이상 중국 축구는 갈 길이 멀다.

현재 중국은 FIFA랭킹 100위권 밖으로 밀려나 있고, 2010년 월드컵 최종예선에조차 진출하지 못하는 최악의 시기를 보내고 있다. 그들은 왜 자신들이 그렇게 많은 인구를 가지고도, 다른 종목에서와는 달리 축구에서 한계를 보이고 있는지 자신들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AFC 역시 중국 축구의 이런 행위에 대해 더 이상 좌시해선 안된다. 축구팬들은 AFC가 ACL의 수준을 한 단계 높이고 새롭게 탈바꿈시키기 위해 얼마만큼 많은 공을 들이고 있는지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침대 축구'를 보기 위해 기꺼이 입장료를 지불할 정도로 축구팬들은 어리석지 않다.
 
아시아의 프로축구 챔피언을 가리는 자리의 경기력과 열정이 이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는 인식이 퍼져나가는 것도 대회의 권위와 가치에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한다. ACL 경기가 가지는 매력 역시 크게 반감될 것이다. 이런 경기 내적인 부분을 관리하지 못한다면 ACL의 질은 그만큼 낮아질 수밖에 없다.

[전성호의 스카이박스] 대한민국 축구를 가장 편안하게 바라볼 수 있는 공간이 되길 바랍니다.



전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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