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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축구 놈!놈!놈!-18] '바르사는 왜 놓쳤을까' 세르히오 가르시아

기사입력 2009.04.19 21:22 / 기사수정 2009.04.19 21:22

유형섭 기자
[유럽축구 놈!놈!놈!] 18. 이적해서 대박난 유소년 출신

[엑스포츠뉴스=유형섭 기자] 자신이 자라온 소속팀 선수로서 성공하는 것.  이는 모든 스페인 선수들의 꿈이다.  카시야스, 라울, 샤비, 푸욜이 그 꿈을 실현한 적절한 예라 할 수 있다. 

하지만, 흔히 말하는 빅클럽의 경우 뚜렷한 결과를 얻기 위해 유스선수 대신 실력이 검증된 유명선수를 영입하는 경향이 잦고, 기회를 얻지 못하는 어린 선수들은 이적을 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이번에 소개할 세르히오 가르시아는 바르셀로나 유스출신의 공격수로, 어릴 때부터 그 능력을 인정받았으나 당시 호나우디뉴, 에투, 지울리라는 화려한 공격진에 의해 팀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선수다.  하지만, 그는 바르셀로나를 떠난 이후 더욱 발전, 라리가를 대표하는 공격수가 된다.

바르셀로나 유스의 크랙

1983년 6월 9일 바르셀로나에서 태어난 세르히오 가르시아는 바르셀로나 유스에서 활동하며 바르셀로나 유스 시스템의 모든 골 기록을 갈아치운다.  세르히오 가르시아는 바르셀로나 유스 소속으로 총 969골을 기록하며 바르셀로나의 미래를 이끌 '크랙'으로 세상에 알려지게 된다.(후에 이 기록은 보얀에 의해 깨진다) 

세르히오 가르시아는 페르난도 토레스와 투톱을 이루며 2002년 U19대회에 출전, 우승을 거머쥐었고, 다음해 아랍 에미리트에서 열린 2003 유소년 월드컵에선 팀 동료 이니에스타와 함께 스페인 대표로 출전, 준우승을 이룬다.  또한, 03/04시즌에는 아줄그라나유니폼을 입고 꿈에도 그리던 프리메라리가의 잔디를 밟으며 성인팀 데뷔에 성공한다.

바르셀로나 개혁의 희생양

당시의 바르셀로나는 이름뿐인 명문이었다.  그 부진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레이카르트 감독은 대개편을 시행했고, 미래의 성공을 위해 에투와 지울리, 막시 로페스를 영입한다.  그러나 바르셀로나의 성공을 위한 발판에는 버려지는 패가 있었으니 바로 세르히오 가르시아였다. 

결국, 그를 위한 기회를 얻을 수 없는 세르히오 가르시아는 레반테로 임대 이적하게 된다.  04/05시즌 레반테에서의 성적은 31경기 출장 7득점.  세르히오 가르시아는 자신이 프리메라리가 성인무대에서도 통할 재능이란 것을 보란 듯이 증명해낸다. 

레반테에서의 성공적인 한시즌이 끝난 뒤, 당시 리가 챔피언인 바르셀로나는 그의 복귀를 고려한다.  하지만, 세르히오 가르시아는 바르셀로나로 돌아가면 자신의 자리가 없음을 직감한다.  호나우디뉴, 에투, 지울리로 대표되는 무서운 주전 공격수들에 만능 백업 이니에스타, 그리고 약속된 ‘크랙’ 리오넬 메시라는 선수의 존재. 결국, 세르히오 가르시아는 그의 운명을 바꾸게 되는 선택인 레알 사라고사로의 이적을 택한다.

사라고사에서의 성공

레반테가 중하위권 팀이라면 레알 사라고사는 중위권으로 UEFA컵진출을 노리는 팀이었다.  수비와 공격에는 가브리엘 밀리토와 디에고 밀리토라는 굳건한 형제가 버티고 있었고, 미드필더진에는 사파테르, 폰시오, 사비우등 세르히오 가르시아를 도울 수 있는 선수들이 포진해있었다.  세르히오 가르시아는 슈퍼서브로 주로 기용, 첫 시즌에 19경기 4득점이라는 양호한 기록과 함께 코파 델 레이 준우승에 공헌한다.  그의 선택이 옳았음을 증명하는 것이었다. 

또한, 22세의 나이에 4년간 천팔백만 유로를 받는 대형계약까지 성공한다.  세르히오 가르시아의 본격적인 활약은 두 번째 시즌부터 시작되는데, 당시 사라고사의 감독 빅토르 페르난데스는 디에고 밀리토와 오스카르, 세르히오 가르시아 중심으로 팀을 개편, 프리메라리가 6위에 자리하며 UEFA컵 진출에 성공한다.  하지만, 아쉽게도 모든 언론의 관심은 아르헨티나출신의 밀리토 형제에 비치고 있었다.

고군분투

중소구단에 UEFA컵과 코파 델 레이, 프리메라리가 세 개 대회의 동시운용은 힘든 것이었을까?  07/08시즌 레알 사라고사는 추락하게 된다.  아이마르, 아얄라, 올리베이라가 가세했음에도 불구하고 UEFA컵과 코파 델 레이 두 대회 모두 뛰어난 성적을 내지 못했고, 선수들은 지쳐 부진한 결과를 낳기 시작한다.  결국, 사라고사의 공격은 세르히오 가르시아가 이끌기 시작하고 언론은 그제야 세르히오 가르시아에 주목하게 된다. 

하지만, 세르히오 가르시아 혼자선 레알 사라고사를 강등의 위기에서 구할 수 없었고, 결국 18위로 강등당하게 된다.  한때 팀 동료였던 이니에스타와 자기보다 어린 선수들이었던 리오넬 메시와 보얀 크르키치가 바르셀로나의 한 축을 담당하는 것을 보며 세르히오 가르시아는 당시 레알 사라고사를 선택한 것을 후회하지 않았을까?

라 로하, 베티스로의 성공적인 이적

낙담하고 있던 세르히오 가르시아 앞에 아라고네스 당시 스페인 감독은 손을 내민다.  그렇게 세르히오 가르시아는 말 많던 유로 2008 스페인 대표의 마지막 멤버로서 참가하여 우승을 거머쥔다.  유로 2008이 끝난 이후, 레알 사라고사는 세르히오 가르시아를 잡아놓는 건 그의 미래를 위해서 무리라고 판단, 이적시장에 그를 내놓게 된다.

리버풀과 토트넘을 비롯한 프리미어리그의 여러 팀과 친정팀 바르셀로나는 그를 원했다.  하지만, 그는 모든 제의를 뿌리치고 천만 유로에 레알 베티스의 계약서에 서명하게 된다.  자신을 주전선수로 대접하고 핵심선수로서 인정해줄 구단으로의 이적이었다.  골게터를 의미하는 등번호 9번을 짊어지고 중앙, 측면 가릴 것 없이 좋은 활약을 해주는 세르히오 가르시아, 더 이상 그가 바르셀로나에서 떠난 것을 옳지 못한 선택이라 말하는 이도 없으며, 오히려 라리가 정상급 포워드들 중 한 명으로 인정받고 있다.

자신보다 위에 위치한 훌륭한 선수들, 자신의 자리를 밑에 노리는 뛰어난 재능을 가진 어린 선수들, 세르히오 가르시아의 선택은 어쩔 수 없는 이적이었다.  하지만, 새로 떠난 곳에서 많은 경험을 통해 그는 누구 못지않은 훌륭한 선수가 되었고, 스페인 국가대표 자리에까지 올랐다. 

현재 그가 속해있는 레알 베티스는 최근 중동의 부호에게 인수될 것으로 보이기에 넉넉한 자금으로 세르히오 가르시아와 짝을 맞춰줄 좋은 파트너가 이적해올 가능성이 크다.  세르히오 가르시아.  아직 25세, 그의 성공은 이제 시작이다.



유형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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