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09.03.15 13:41 / 기사수정 2009.03.15 13:41
FC서울의 세뇰 귀네슈 감독의 시즌 전 인터뷰에서 2009년을 평정하겠다던 공언(公言)은 공언(空言)이 아니었다. 적어도 강원FC와의 경기 전까지는.
비록 2경기밖에 치르지 않았고, 상대가 모두 비교적 약체에 속하는 팀들이긴 했으나 서울이 보여준 경기력은 K-리그 팬들이 그토록 꿈꾸던 유럽 저 너머의 그것이었기 때문이다.
귀네슈 감독은 강원과의 2009 K-리그 2라운드를 하루 앞두고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우리는 현재 18-22명까지 1군 경기에 즉시 투입이 가능한 선수들을 준비했다."라며 막강하고 두꺼운 선수층에 대한 자부심을 드러내기도 했다.
실제로 서울은 K-리그에서 주전과 비주전 사이의 기량 차가 가장 적은 팀이다. 기성용, 이청용, 데얀, 김치우, 아디, 김치곤으로 대표되는 베스트 11 외에도 고명진, 김승용, 심우연, 박용호, 이승렬, 이상협 등 비주전 선수들로만 팀을 꾸려도 K-리그 중상위권을 노려볼만한 좋은 전력을 갖추고 있다.
그렇기에 3월 14일 강원과의 경기에서 서울이 일주일 전 리그 1라운드와 AFC 챔피언스리그 1차전에 연속 출장했던 이청용, 기성용, 김치곤, 정조국 등 주전급 선수들을 빼고 고명진, 이상협, 김승용 등 스쿼드 플레이어들을 대거 기용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했다. 상대적으로 약체인 강원을 상대로 1.5군만으로 승리를 거둔다면 이후의 일정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이점을 가져올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서울은 이날 경기에서 1-2의 쓰라린 패배를 당했고, 이를 통해 자신들에게 주어진 과제를 확인해 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1. 'BIG 3'가 빠진 중원
서울 중원의 핵은 'BIG 3' 기성용, 김치우, 이청용이다. 그러나 이들이 빠지자 서울은 지난 두 경기에서 보여줬던 날카로운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이들을 대신해 강원과의 경기에 선발 출장한 이상협, 김승용, 고명진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이상협과 김승용은 공격에는 능한 미드필더지만 수비에는 허점이 노출됐다. 이들의 공격성은 수비와 미드필드 간의 간격을 벌어지게 하였고 이는 상대에게 양 측면의 넓은 공간을 허용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고명진은 전지훈련과 시즌 전 연습경기에서 매우 좋은 움직임을 보여줬는데, 이번 강원과의 경기에선 긴장한 기색이 역력하여 제대로 기량을 펼쳐보이지 못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한태유에게까지 너무 많은 부담이 주어져 그가 수비형 미드필더로서 일차 저지선 역할을 하는데 어려움을 겪게 했다.
그렇다고 모든 경기에 이들 'BIG 3'가 나올 수는 없다. 따라서 고명진의 성장은 필수적이다. 현재 서울에서 기성용을 대신해 중원에서 적절한 패스를 공급해주고, 풍부한 활동량으로 상대 수비를 헤집어 줄 수 있는 역할을 가장 잘 해줄 수 있는 선수가 고명진이기 때문이다. 그가 얼마나 제 기량을 펼쳐보이고, 또 한 단계 성장할 수 있는지가 서울로선 매우 중요하다.
이상협과 김승용은 주로 공격이 잘 풀리지 않던 상황에서 조커로 투입된 적이 많아서 다분히 공격에 중점을 둔 플레이를 많이 펼쳐 왔다. 물론 이들 뒤에는 아디, 이종민, 케빈, 안태은 같이 좋은 풀백이 존재하긴 하지만, 좀 더 공수에 균형을 갖춘 경기력을 보여주고 더 나아가 선발로 나설 때도 서울의 톱니바퀴처럼 돌아가는 4-4-2 시스템에 잘 적응해야 손색없는 활약을 선보일 수 있을 것이다.
2. 심리적 부담을 이겨낼 경험과 리더십
서울은 선수단 평균나이가 23세로 K-리그에서 가장 젊은 팀이다. 동시에 가장 재능있는 선수가 많이 포진해있는 팀이다. 이는 서울의 미래를 밝게 만들어주는 부분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이들의 경험 부족을 걱정하기도 한다.
이는 강원에서 중원사령관으로서 만점 활약을 보이고 있는 이을용을 보더라도 알 수 있다. 지난 시즌까지 서울의 주장이었던 이을용은 고향팀 강원으로 이적하여 '한물갔다.'라는 세간의 평가를 비웃기라도 하듯 종횡무진으로 활약하며 강원의 상승세를 주도하고 있다.
물론 활발한 움직임과 날카로운 전진패스, 적절한 커버 플레이 등 경기력 면에서도 훌륭하지만 경기 외적으로 강원 선수단 전체의 분위기를 이끌어가는 점은 이을용의 존재가치를 부각시켜주는 부분이다.
서울과의 경기에서 승리를 거둔 뒤 결승골을 넣었던 윤준하 등 강원의 선수들은 한결같이 이을용이 선수단 전체에게 심어준 '자신감'이 승리의 요인이었다고 입을 모았다. 서울만큼이나 젊은 선수들로 구성된 강원은 비록 개막전을 승리로 장식했지만 서울이란 빅클럽을 상대로 충분히 심리적으로 위축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이을용은 경기가 있기 며칠 전 밖으로는 '비기면 비겼지 지진 않는다.'라는 말을 언론에 흘렸고, 내부적으로는 '자신감을 가지고 나가면 된다.'라고 어린 선수들을 독려하며 팀 분위기를 쇄신 시켰다.
이는 그대로 경기력으로 이어졌고, 초반 서울을 밀어붙이며 선제골을 넣자 선수들로 하여금 '할 수 있다.'라는 마음을 갖게 했다. 지금은 서울을 떠난 김병지(경남FC)가 최근 인터뷰에서 '내가 뛰었다면 서울이 지난해 우승할 수도 있었다.'라며 그라운드 안팎에서의 베테랑 선수의 중요성을 강조한 부분은 이런 점과 일맥상통한다.
또한, 비록 강원 전에서 패배하긴 했으나 서울은 전력상 이후의 일정에서 얼마든지 연승가도를 달릴 수 있다. 그러나 지난 시즌의 수원, 2007시즌의 성남이 리그 초중반 동안 놀라운 무패행진을 이어가다 첫 패배를 당한 이후 여러 가지 부작용과 문제점에 시달리며 난관에 봉착했던 것을 생각해보자. 걷다가 넘어지는 것보다 뛰다가 발을 접지르는 것이 원래 더 아픈 법. 이런 상황이 닥쳤을 때에 어떻게 대처할 지에 대한 경험이 '젊은' 서울에는 아직 부족하다.
더군다나 서울은 지난 시즌 우승 문턱에서 쓰라린 패배를 맞보았다. 귀네슈 감독의 조련 아래 2년 전부터 차곡차곡 팀을 재건했지만, 결정적으로 이 젊은 팀은 리그 우승을 경험해 보지 못한 선수들로만 구성이 되어있다.
따라서 큰 경기에 대한 압박을 이겨내고 어려운 상황에서 팀 분위기를 이끌어나가 줄 리더가 필요하다. 이런 점에서 주장 김치곤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또 팀의 간판이라 할 수 있는 기성용 역시 그의 별명인 '기라드'처럼 스티븐 제라드(리버풀)가 어린 나이부터 보여줬던 젊은 리더십을 갖추며 한 단계 더 성장해야 한다. 이청용은 그가 팀 내에서 차지하는 위상에 걸맞게 지난 시즌의 몇몇 장면처럼 순간적인 감정을 주체못해 경기를 그르치거나 뛰지 못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
3. 강행군 후유증
K-리그는 물론이고 리그컵, FA컵에 AFC 챔피언스리그 우승컵까지 차지하려면 매우 두텁고 탄탄한 선수층이 필요하다. 각 대회 리그 일정과 결승전까지 치르는 데만도 최소 45경기를 치러야 해 체력적인 문제가 따르고, 부상 선수가 발생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앞에서 밝혔던 것처럼 서울은 능력있는 선수들로 구성된 두터운 선수층이 있다. 그러나 이는 동시에 국가대표 및 청소년대표팀에서 필요로 하는 선수가 많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현재 서울의 베스트11 중 7명이 국가대표 선수이며 23세 이하 대표팀으로 언제든지 뽑힐 수 있는 어린 선수들 역시 많다. 주어진 리그 일정뿐 아니라 주전급 선수들의 A매치 및 각급 대표팀의 국제 대회 출전으로 인한 차출은 서울에겐 잠재적인 문제점이 될 수 있다.
실상 강원과의 경기만 보더라도 연이은 경기 일정과 해외 원정을 다녀오는 등의 여파 가운데 선수들의 체력이 정상 수준을 유지하는 것이 결코 쉽지만은 않다는 걸 알 수 있다. 귀네슈 감독은 이러한 문제 역시 현명하게 대처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강원전의 패배를 예방주사로
서울의 라이벌 수원 삼성은 99년 K-리그 전관왕의 위업을 달성했었다. 그러나 당시 전관왕은 FA컵은 포함되지 않은 순수 프로축구연맹 개최 대회만을 기준으로 했을 때의 전관왕이다. (당시 FA컵 우승은 천안 일화였다.) 서울은 프로축구연맹 대회는 물론 FA컵과 AFC 챔피언스리그까지 아우르는 진정한 의미의 사상 최초 '전관왕'을 꿈꾸고 있다.
그런 서울의 꿈을 향한 행보에 강원전의 패배는 적절한 타이밍의 예방주사가 될 수도 있다. 원래 몸에 좋은 약은 입에 쓴 법. 강원전의 패배는 괴로운 경험이었겠지만 이를 통해 그들이 자칫 가질 수 있었던 과도한 자신감(혹은 자만)을 떨쳐내고 자신들에게 주어진 과제들을 직시할 때 서울은 한 단계 더 높은 수준의 팀으로 성장할 것이다. 그렇게 될 때 서울이 꿈꾸는 사상 유례없는 최강팀의 반열, '전관왕'에 대한 도전도 해피엔딩을 맞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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