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08.12.18 15:57 / 기사수정 2008.12.18 15:57
[엑스포츠뉴스=유진 기자] 아직까지 메이저리그가 '마니아층 문화'로써 '타킷 유저(target user)'들에게 더 많은 호감을 갖는 것이 현실입니다.
특히, 국내 프로야구의 질적 수준이 향상됨에 따라 굳이 메이저리그를 안 보고도 야구장에서 수준 높은 경기를 볼 수 있다는 기대감이 커진 것도 '메이저리그의 일반화'를 가로막는 걸림돌이 되기도 하는 듯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메이저리그가 대중 속으로 다시 빠져들기 위해서는 그만큼 메이저리그의 깊은 세계를 쉽게 풀어가야 한다는 생각에 도달했습니다.
이에 따라 '엑스포츠뉴스'에서는 메이저리그 담당 유진 기자를 통해 메이저리그를 조금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여섯 가지 주제로 나가는 시리즈물, 'MLB야 놀자'를 연재하려고 합니다.
1편 '메이저리그의 탄생과 그들만의 프라이드'
2편 '마이너리그의 눈물 젖은 빵'
3편 '박찬호라는 존재의 의미'
4편 '메이저리그 이모저모(투수편)'
5편 '메이저리그 이모저모(타자편)'
6편 '메이저리그의 리그(?)'등의 주제가 예정에 있습니다.
앞으로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메이저리그에 대해 궁금한 점이 있으시면 언제나 readers@xportsnews.com으로 편하게 문의를 해주세요. 성심성의껏 답변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편집자주]
야구가 투수놀음인 이유
레너드 코페트(전미 원로 기자)는 자신의 저서 ‘야구란 무엇인가’에서 야구가 왜 투수놀음이 될 수밖에 없는지를 밝힌 바 있다. 준수한 타자의 기준이 되는 3할 타율의 예를 들어보자. 이는 제 아무리 좋은 타자라도 10번 중에 3번 정도밖에 안타를 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즉, 70%는 범타로 물러난다는 ‘역’이 성립한다. 따라서 야구 경기는 투수가 70%를 먹고 들어가는, 투수 중심의 경기임에는 틀림없다.
‘투수놀음’인 야구에 대해 현장의 감독이나 코치들이 목을 메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경기의 70%를 먹고 들어갈 투수의 육성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구위가 떨어지고, 수 싸움에 능하지 않은 선수를 마운드에 끌어올린다는 것은 투수의 몫인 70%의 비율을 그만큼 낮춰버리게 됨을 의미한다.
그래서 투수를 평가하는 주요 지수 중 하나가 바로 방어율이다. 방어율이란 9이닝을 기준으로 투수가 몇 점이나 허용하는지를 나타내는 지표인데, 산출방식은 다음과 같다.
방어율 = (9 × 자책점) ÷ 자신이 던진 이닝
예를 들어 한 투수가 등판하여 7이닝 동안 3실점하였다면 방어율은 3.86(9×3÷7)이 되는 것이다. 여기서 주의해야 할 사항은 자책점이라는 요소다. 자책점이라는 것은 투수 자신이 책임져야 할 점수라는 뜻으로써, 안타와 볼넷, 몸에맞는 공 등으로 허용한 점수가 이에 포함된다. 그런데 점수를 허용하는 수단에는 야수의 에러라는 변수도 있다. 자책점에는 이러한 야수의 실책으로 허용한 점수는 포함시키지 않는다. 만약에 투수가 등판하여 5점을 주었다고 가정할 경우 3점이 야수 에러에 의한 것이라면 투수의 자책점은 2점인 것이다.
일반적으로 ‘좋은 투수’의 지표가 되는 기준은 3점대 방어율이라고 한다. 한 경기에서 3점 이내로만 막아줄 경우 그만큼 팀이 승리할 확률이 높아진다는 이야기가 성립하기 때문인데, 실제로 2008시즌 메이저리그의 타자들이 한 경기당 뽑아냈던 점수는 평균 4.32점이었다. 3점대 방어율을 기록한 선수가 등판할 경우 산술적으로 타선에서 4점만 뽑아주면 되는 것이다.
물론 방어율이 투수들을 평가하는 가장 기본적인 요소인 것은 분명하나, 이에 수반되는 다승, 탈삼진, WHIP(이닝당 출루허용률)등의 수치도 결고 무시할 수 없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이 모든 수치에서 고른 모습을 보인 선수를 찾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다행인 것은 깊은 야구역사에 비례하여 메이저리그에서 좋은 투수들이 많이 나왔다는 사실이다. 100년 역사의 메이저리그에서 100승 이상을 거둔 투수는 총 562명에 달하며, 200승 이상을 거둔 투수 또한 110명에 달한다.
뛰어난 방어율로, 많은 승수로, 타자들을 윽박지르는 탈삼진으로 팬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주었던 마운드의 주인들이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작성했다. 메이저리그 마운드를 호령했던 그들은 누구였으며, 100년 역사동안 잠잠할 날이 없었던 그 곳에 어떠한 일이 일어났는지 살펴보는 것도 의미있는 일일 것이다.
빅리그 마운드 이모저모 : 역대 방어율, 다승, 탈삼진 1위는 누구?
방어율이 낮은 선수가 다승, 탈삼진 1위를 차지하는 경우도 있지만, 이 셋의 상관관계가 반드시 정비례하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역대 방어율, 다승, 탈삼진 1위를 차지한 선수의 얼굴은 각각 다르다. 하지만 이들은 동시대의 다른 투수들을 압도하는 모습을 보여왔고, 어김없이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렸다.
역대 다승 1위를 차지한 사이 영(Cy Young)은 사이 영 상(Cy Young Award)의 주체가 되는 인물이다. 본명은 덴튼 트루 영(Denton True Young)으로 1890년에 23살의 나이로 데뷔하여 44세에 은퇴할 때까지 무려 511승 이라는 경이적인 기록을 세웠다. 22년 동안 단 한 번도 100이닝 이하로 던져 본 적이 없을 만큼 무쇠팔이었으며, 통산 방어율 2.63과 통산 투구 7354.7이닝(역대 1위)이라는 대기록을 세운 에이스중의 에이스였다.
파워피처 답지 않은 동안이었던 영은 야구 입문부터 남다른 모습을 보였다. 클리블랜드 입단 당시 감독 앞에서 테스트를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생기자 그는 감독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주기 위해 있는 힘을 다해 빠른 공을 던졌다. 당시 그가 던진 3개의 공 가운데 2개는 워냑 빨라 포수가 받지 못할 정도였으며, 나머지 하나는 컨트롤이 되지 않아 빗나가기는 해도 홈플레이트 뒤에 있는 나무로 만든 관중석을 박살내기도 하였다. 이를 본 다른 선수들이
“감독님! 저 녀석과 빨리 계약하십시오. 공이 마치 사이클론(cyclone, 태풍)보다 더 무섭습니다.”
라고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사이 영’의 이름은 바로 여기에서 유래되었으며, 이후에도 그는 본명보다 애칭으로 많이 불리워졌다.
사이 영의 고별전 역시 그 누구보다 남달랐다. 1911년 9월 7일, 당시 상대팀인 필라델피아 필리스는 신인인 그로버 클리블랜드 알렉산더를 선발로 내세웠는데, 둘 모두 9회까지 역투를 펼쳤지만, 결과는 0:1로 끝났다. 완투패를 당한 영은 316번째 패배를 당했고, 겁 없는 루키였던 알렉산더는 이후 373승을 거두며 역시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한편, 역대 방어율 1위는 ‘빅 에드’라 불리웠던 ‘에드 월시(Ed Walsh)'가 차지했다. 1904년부터 1917년 까지 선수생활을 했던 월시는 짧은 선수생활로 인하여 200승을 채우지 못했지만(195승), 300이닝 이상을 6번이나 기록하였다. 통산 방어율 1.82를 마크한 월시는 1946년,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한편, 200승 이상을 거둔 투수 중 가장 좋은 방어율을 기록한 선수는 모데카이 브라운(Mordecai Brown)이다. 그는 어린 시절 농장에서 오른손을 다쳐 두 손가락을 잃는 사고를 당했는데, 그러한 악조건 속에서도 오히려 특이한 투구폼으로 각고의 노력을 쏟은 끝에 239승이라는 금자탑을 쌓았다. 통산방어율은 2.06으로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투수 가운데 3위에 올려져 있다.
탈삼진 1위에 올려져 있는 선수는 비교적 최근에 은퇴한 인물이다. 바로 ‘노장’으로 더 잘 알려진 놀란 라이언(Nolan Ryan), 바로 그 사람이다. 그는 만 46세였던 1993년에 5,714번째 탈삼진을 잡아냄으로써 이 부문 랭킹 1위에 올랐다. 28년간 선수로써 활약했던 라이언은 명성에 걸맞게 탈삼진 타이틀을 11번이나 차지하였으며, 마흔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95마일 이상의 속구를 거침없이 뿌리기도 했다.
이로 인하여 기네스북에는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빠른 공을 던진 투수로 놀란 라이언의 이름을 올려놓기도 했다. 1974년 8월 20일, 에너하임 스타디움에서 100.9마일을 기록하여 역대 최고 구속으로 공식적인 인증을 받았다. 이후 롭 넨(102마일) 등이 이 기록을 경신하였지만, 그의 싱싱한 어깨는 좀처럼 지칠 줄을 몰랐다. 40대의 나이에 노히트노런을 기록했던 그는 고향인 텍사스에서 선수시절을 마감하였고, 명예의 전당 득표율 역대 2위(98.79%)를 차지하기도 하였다.
별난 기록으로 주목받았던 투수들
역대 다승 1위는 사이 영(Cy Young)이다. 그런데 통산 다승 2위를 차지한 월터 존슨(Walter Johnson)또한 굉장한 선수였다. 당시 최약체로 평가받았던 워싱턴 세네터즈에서만 21년간 선수생활을 했던 존슨은 통산 417승이라는 믿기 힘든 기록을 달성했다.
그는 스피드와 힘의 상징이었던 ‘기관차’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었다. 전형적인 정통 우완 파워피처였지만, 그의 속구에 비해 성격은 매우 소심했던 ‘순둥이 소년’ 이었다. 그는 자신에게 사인을 받으러 온 대통령 앞에서 다리를 벌벌 떨기도 했고, 자신의 속구에 타자들이 다칠까 염려하여 철저하게 바깥쪽 승부를 고집했다. 또한 월드시리즈 표를 구해 달라는 지인들의 부탁을 차마 거절하지 못하고 표를 구하러 발품을 팔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약체인 팀을 이끌고 월드시리즈 우승 2회라는 금자탑을 세우기도 했으며, 선수 시절 세 번의 트리플 크라운(방어율, 다승, 삼진 1위)과 두 번의 MVP를 차지하기도 했다.
‘홈런왕’으로 유명한 베이브 루스(Babe Ruth)도 루키시절 보직은 원래 투수였다. 보스턴 레드삭스의 좌완 에이스였던 루스는 풀타임 메이저리거였던 첫 해에 18승 8패, 방어율 2.44를 기록하며 순조로운 야구인생을 시작했다. 그는 투수 통산 94승 46패를 기록한 것을 비롯하여 1918년과 1919년도에 투-타를 겸업하기도 했다. 1918년에 11개의 홈런을 기록하면서 생애 첫 홈런왕에 오른 루스는 이듬해, 선발투수로 등판하지 않는 날에는 외야수로 나서며 29개의 홈런을 기록하기도 했다.
이 외에 빌 도노반(Bill Donovan) 역시 1910년대 올라운드 플레이어였다. 그는 투수로써 186승을 거둔 것과 동시에 월드시리즈에서 도루를 기록한 최초의 투수로 남아 있다. 한 경기에서 3개의 도루를 성공시킨 경험도 있는 도노반의 통산 도루 갯수는 36개이며, 홈런 숫자도 7개에 이른다.
최근에는 ‘투수들의 홈런’을 구경하기 어렵다. 투수들이 타석에 들어서는 네셔널리그에서나 볼 수 있을 법 한데, 마이크 햄튼(휴스턴), 톰 글래빈(애틀란타), 박찬호(필라델피아) 정도가 타격감각이 뛰어난 선수로 유명하다. 실제로 이들 선수들은 대타요원이 부족할 때 이따금씩 타석에 나서기도 했다. 한때 박찬호의 팀 동료였던 대런 드라이포트(前 LA 다저스)는 투수로써 통산 6개의 홈런을 기록하기도 했다.
투수=올라운드 플레이어
최근의 경향을 살펴보면, 많은 올라운드 플레이어들이 한 번씩은 투수를 경험한다. 지금은 불운한 말년을 보내고 있지만, 마크 맥과이어(前 세인트루이스) 역시 대학 시절에는 투수로 활약한 바 있다. 클리블랜드의 추신수 역시 부산고교의 에이스였으며, 이승엽도 투수출신이다.
이는 야구의 기본이 투수로부터 시작하기 때문이다. 타자가 30%의 타격(타율 3할)을 기록하는 동안 투수가 나머지 70%를 책임져야 한다. 그만큼 외로운 자리가 마운드이기도 하다. 그 곳에는 자신 외에는 아무도 들어올 수 없으며, 어떤 구종을 던져야 하는지도 스스로 선택해야 한다.
그렇게 고독한 자리에 많은 빅리거들이 거쳐갔다. 그리고 그들을 노려보는 것은 다름 아닌 타석에 서 있는 타자들이다. 이들의 수 싸움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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