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08.12.10 15:55 / 기사수정 2008.12.10 15:55
[엑스포츠뉴스=김경주 기자] 보통 시상식이 열리면 그 해 베스트 일레븐과 신인상, MVP 등 주목을 받을 만한 큰 상을 앞에 배치하고, 중계도 이뤄집니다.
그러나 이제 은퇴를 결정한 선수들이나, 그 해 후배들에게 귀감이 될만한 활약을 펼친 선배에게 주어지는 공로상은 그다지 주목을 받지 못하고 2부 한 뒤편으로 밀리곤 합니다.
9일 열렸던 K-리그 대상 시상식에서도 마찬가지였는데요. 올해는 총 4명의 선수가 공로상을 수상했습니다. 은퇴를 결정한 김해운, 김학철, 김현수와 함께 리그 최다 골을 기록한 우성용이 수상자였습니다.
공로상을 제일 처음 받은 사람은 김해운이었습니다. 시상대에 선 그는 13년이라는 긴 프로생활을 마감하는 자리에서 "그동안 많이 응원해주시고 성원해주신 성남팬과 구단 관계자에게 감사 드린다."라고 짧은 소감만을 밝혔습니다.
하고싶은 말도, 남은 기억도 많을 텐데 너무나도 짧게 끝난 그 말에 관중석에선 작은 실소가 터져나오기도 했지만, 기자는 웃을 수 없었습니다.
그 한마디를 하는 그의 표정에는 너무나도 많은 만감이 교차하고 있었고, 항상 강한 경상도 사투리로 기자를 놀리던 밝은 표정이 아닌 긴장이 가득한 그 표정과 눈물이 배어 먹먹하게 잠긴 그 목소리가 더 이어졌다간 금방이라도 왈칵 쏟아질 것만 같았던 때문입니다.
멀리서 바라보고 있는 기자의 눈에도 보이는데, 말하는 당사자는 얼마나 먹먹했을까요.
김해운, 프로 13년 차. 그러나 그의 이름에 적힌 프로팀의 이름은 단 하나 '성남 일화'였습니다. 96년에 프로에 입문한 뒤, 그 이듬해 7경기에 출전하며 주전자리를 노린 그는, 98년 드디어 주전 자리를 꿰차며 자신의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습니다.
항상 큰 목소리로 자신의 앞에서 등을 보이고 있는 동료를 다독였고, 경상도 억양 특유의 툭툭거림 속에서 배어나오는 따스함에 후배 선수들은 물론 팬에게고 많은 귀감이 되고 사랑을 받는 선수이기도 했죠.
03년에는 동아시아연맹 컵 대회를 위해 소집된 쿠엘류 호에 이름을 올리며 처음으로 늦은 태극 마크를 가슴에 달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행복하기만 할 것 같던 그도 여타의 선수들처럼 부상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습니다. 03년 7월 22일 대전 원정에서는 공중볼 다툼 중 동료 선수와 부딪혀 들것에 실려나가며 원정 길에 올랐던 성남팬들을 놀라게 하기도 했고, 06년에는 인천과의 경기에서도 역시 볼 다툼을 하다 오른쪽 어깨를 다치며 한참 동안 그라운드에 서지 못하기도 했습니다.
03년의 그 경기는 김해운이 부상으로 실려나간 뒤 남은 교체 인원이 없어 신태용이 대신 골키퍼를 보기도 했던 경기였죠.
꾸준히 주전 골키퍼로서 성남의 골문을 지키던 그도 계속되는 부상과 나이로 인해 05년부터는 그라운드에서 자주 보기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그라운드가 아닌, 골문 뒤에서는 항상 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골문 앞에서 직접 선수들을 지휘하는 것뿐만이 아니라 골대 뒤에서 성남이 공격할 때는 공격진을 수비시엔 수비진에게 조금만 더 뛸 것을 독려하는 그는 성남의 '정신적 지주'였습니다.
세월은 그 누구도 막을 수 없고, 그도 그런 세월을 따라 이제 축구화를 벗고, 손에 끼워진 장갑을 벗고 조금 더 뒤로 물러나 후배들을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몇 년 전 팬과 작은 모임을 한 김해운은 "성남에서 선수 생활을 마감하고 지도자 공부를 한 뒤 다시 돌아와 성남에서 GK 코치를 하고싶다."라고 말했었습니다. 미소를 지으며 했던 그 얘기가 팬 서비스를 위해 지나가듯 하는 얘기가 아니라 진심으로 팀을 아끼고 사랑해 하는 말이라는 게 느껴져 뿌듯했던 기억이 아직도 남아있을 정도로, 그는 그렇게 자신의 프로 인생의 모든 것인 성남을 아꼈습니다.
그의 그 소원 중 하나였던 성남에서의 선수생활은 이뤄졌습니다. 그의 또 하나의 꿈인 자신의 친정팀에서의 GK 코치의 꿈을 이루려면, 축구선수로서의 김해운이 아닌 평범한 한 사람의 김해운으로 돌아가 또 처음부터 공부를 시작해야 하겠죠.
쉽진 않겠지만, 그동안 우직하게 서 왔던 그 그라운드에서의 모습처럼 멋지게 해낼 수 있을 거라고 믿습니다. 누구보다 든든했던, 수문장이었으니까요.
새로운 시작을 위해 잠시 숨을 돌리는 그에게 그동안 수고하셨다고, 언젠가 다시 노란 유니폼을 입은 당신의 후배들과 당신의 이름을 외쳤던 그들과, 당신이 달렸던 그 운동장에서 만나자는 인사를 건네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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