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최종편집일 2024-10-02 11:40
스포츠

[피겨 인사이드] 김연아와 아사다 마오, '한일피겨 배틀'

기사입력 2008.11.11 07:53 / 기사수정 2008.11.11 07:53

조영준 기자



김연아와 아사다 마오, 경쟁은 시작됐다 - 하

아사다 마오, 그녀의 곁엔 타라소바가 있다

[엑스포츠뉴스=조영준 기자] 일본 피겨계가 본국에서 배출된 최고의 '피겨 천재'로 추켜세운 아사다 마오(일본, 18세)는 '올림픽 매달리스트 제조기'라 불리는 타티아나 타라소바를 전담코치로 맞이했습니다. 그동안 마오의 안무가였던 타라소바는 본격적인 코치 감투를 쓰고선 마오의 올림픽 메달 사냥에 전면적으로 나섰습니다.

타라소바는 그동안 동계올림픽 금메달리스트를 무려 9명이나 배출해냈습니다. 남녀 싱글과 페어, 아이스댄싱을 가릴 것 없이 최고의 선수들을 키워온 타라소바의 제자들 중, '피겨의 전설'로 불리는 알렉세이 야구딘과 지난 2006 동계올림픽 여자 싱글 금메달리스트인 아라카와 시즈카도 포함돼있습니다.

무려 9명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를 배출해 온 것은 대단한 성과입니다. 알렉세이 야구딘과 아라카와 시즈카 같은 훌륭한 선수를 만난 운도 따랐지만 '확실하게 이기는 방법'을 알고 있는 코치를 만난 것도 선수에게는 행운입니다.

예전에 비해 채점 기준도 철저해졌고 점점 다변화 되가는 국제 피겨 계에서 타라소바의 영향이 예전만 못하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지만 무엇보다 '이기는 법'을 알고 있는 타라소바의 존재는 지금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이에 비해 김연아의 전담코치인 브라이언 오서의 경우, 올림픽 메달에 도전하는 첫 제자가 바로 김연아입니다. 한 때, 캐나다 피겨스케이팅의 영웅으로 불렸던 오서였지만 코치로서의 영향력을 놓고 본다면 타라소바에 미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면을 떠나서 김연아(18, 군포 수리고)에게 브라이언 오서는 가장 궁합이 잘 맞는 지도자였습니다. 올림픽 메달리스트들을 숱하게 배출해왔다는 경력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욱 필요한 부분은 선수와 의견이 잘 맞느냐의 여부입니다.

비록 타라소바에 비해 코치로서의 경력은 많지 않지만 최고의 스케이터로 군림했었던 경험을 가졌던 오서는 김연아를 세계 최고 수준의 스케이터로 완성했습니다. 오서 코치는 늘 오픈된 마인드로 김연아를 대하면서 선수 스스로가 깨어날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창의적인 지도력을 발휘했습니다. 그 결과, 김연아는 팬들에게 큰 감동을 안겨주는 ‘예술적인’ 스케이터로 새롭게 태어났습니다.

국제 피겨 계에서 무시 못 할 영향력을 가진 지도자보다 완성된 스케이터인 김연아를 창의적인 눈을 뜰 수 있게끔 이끌어준 오서가 김연아에겐 더욱 적합했습니다. 열린 자세로 김연아를 성실하게 이끌어준 오서는 국내 피겨 팬들에게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이기는 방법'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욱 필요한 것은 '행복한 스케이터'로 이끌어 줄 수 있느냐의 여부입니다.

김연아와 마오, 두 선수 모두 클린 했을 때, 누가 이길까?

타티아나 타라소바 코치는 "김연아는 세계적인 선수인 것은 사실이지만 마오가 최상의 연기를 펼친다면 언제나 마오가 이길 것이다"라고 자신 있게 답변했었습니다. 일본 언론계에서도 이러한 확신에 대한 증거로 김연아의 프로그램보다 더욱 난이도가 높은 아사다 마오의 프로그램을 제시했었습니다.


위의 자료 이미지는 지난 시즌, 그랑프리 파이널에서 기록한 아사다 마오의 프리스케이팅 프로토콜입니다. 프리스케이팅에서 김연아를 1점차이로 아슬아슬하게 이겼지만 쇼트프로그램의 부진을 극복하지 못하고 아사다 마오는 김연아에 이어 그랑프리 파이널 준우승을 차지했었습니다. 지난 시즌에서는 올 시즌에 비해 스핀이 하나 더 추가되어 있었지만 김연아가 올 그랑프리 시즌에서 세운 자료와 비교하기 위해 스핀 하나를 뺀 자료입니다.

지난 시즌, 아사다 마오가 보여준 프리스케이팅 연기 중에서 가장 잘했었던 연기가 바로 그랑프리 파이널에서 보여준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이 연기를 마치고 마오는 울먹였는데 자신이 가장 만족할만한 연기를 펼친 기쁨을 주체하지 못해서였습니다.

그리고 아래의 이미지 자료는 올 시즌 그랑프리 시리즈 1차와 3차대회에서 기록한 김연아의 프리스케이팅 프로토콜입니다. 두 대회를 통틀어서 가장 점수가 높았던 연기 요소들을 모아서 정리한 자료입니다.



아직 아사다 마오의 새로운 프로그램이 공개되지 않은 상태이며 이번 주에 프랑스에서 열리는 그랑프리 4차대회에서 첫 공개될 예정입니다. 타라소바와 일본 언론들의 대대적인 언론 플레이가 있었지만 지난 시즌의 구성과 크게 바뀔 부분은 드물 것으로 예상됩니다.

아사다 마오와 김연아의 자료를 비교해보면 유사한 기술요소들도 보이지만 아사다 마오는 트리플 악셀을 구사하고 김연아가 어려워하는 트리플 룹 점프를 단독과 콤비네이션 점프로 구사하고 있는 것이 눈에 뛸 것입니다.

타라소바와 일본 측이 자신 있어 하는 것이 바로 이 부분입니다. 트리플 악셀은 김연아가 뛰지 못하고 트리플 룹은 김연아가 어려워하는 점프인데 마오는 이 점프를 모두 구사한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마오의 프로그램이 더욱 어렵다는 결정적인 이유로 트리플 연속 콤비네이션 점프를 두 번이나 뛴다는 점을 듭니다. 아사다 마오는 트리플 악셀을 구사한 뒤, 김연아와 똑같은 트리플 플립 + 트리플 토룹을 구사합니다. 그리고 트리플 러츠와 룹을 뛴 다음에 트리플 플립 + 트리플 룹을 구사합니다. 마오의 기술 중, 가장 높은 배점을 가지고 있는 이 기술은 트리플 악셀과 더불어 가장 많은 점수를 획득할 수 있습니다.

표면적으로 본다면 아사다 마오의 프로토콜이 좀 더 난이도가 있어 보입니다. 주니어 시절부터 아사다 마오는 세계 최고 수준의 프로그램을 수행해내기 위해 장기적인 훈련과정을 거쳤습니다.

그러나 위의 자료에서 나타난 두 선수 간의 합산 점수는 거의 비슷한 것으로 드러납니다. 또한, 아사다 마오가 작년 그랑프리 파이널에서 프리스케이팅 1위를 차지할 때, 김연아는 트리플 룹 점프에서 넘어져 3점의 다운을 받은 상태였습니다. 그러나 김연아와 마오의 프리스케이팅 점수 차이는 불과 1점이었습니다.

만약, 김연아가 안정적으로 트리플 룹 대신 더블 악셀을 구사했다면 프리스케이팅에서도 김연아가 마오를 제치고 1위를 차지했을 것입니다.

표면적으로 나타나는 기술들의 난이도를 보기 전에 우선 두 선수들이 받은 GOE(가산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가산점은 말 그대로 기술의 완성도에 따라서 점수를 더 쳐주는 것을 의미합니다.

똑같은 기술이라도 가산점에 따라서 그 기술의 명암이 엇갈리게 됩니다. 우선 김연아와 아사다 마오가 똑같이 구사하는 트리플 플립 + 트리플 토룹을 보면 김연아가 가산점을 받고 있는데 반해 아사다 마오는 -0.6의 다운 그레이드를 받았습니다.

김연아는 회전수가 꽉 차고 높이와 탄력이 좋은 정석적인 점프를 구사하는데 반해 마오는 두 번째 점프인 토룹에서 회전수가 3회전에 미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결국 이 차이로 똑같은 기술에서 김연아가 점수를 조금 더 획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김연아는 트리플 러츠에서 확실한 우위를 점하고 있습니다. 아사다 마오는 러츠에서 아웃이 아닌 인엣지에 가까운 점프를 구사해 롱엣지를 받아 감점을 당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석적인 러츠를 구사하는 김연아는 트리플 러츠의 기본점수와 가산점까지 고스란히 챙기고 있습니다.

이렇게 같은 기술이라도 김연아와 마오의 기량에 차이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또한, 아사다 마오가 자랑하는 트리플 악셀도 지난 시즌에는 성공률이 극히 떨어지고 있습니다. 성공했다 치더라도 점프 자체가 큰 위력을 발휘하지 못하기 때문에 가산점을 얻지 못하고 있으며 위의 자료에서 타나나듯이 -0.8의 다운을 받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사다 마오의 근본적인 문제점은 기본적인 점프인 트리플 살코를 제대로 구사하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살코가 부재한 마오를 볼 때, 기본기가 탄탄하지 않음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또한, 모든 트리플 회전수를 그대로 채우는 김연아에 비해 마오는 점프의 회전수를 다 채우지 못하고 치팅(속임수) 점프를 구사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점이 마오를 과대평가된 선수로 매기는 결정적인 이유가 되고 있습니다. 

롱엣지와 다운이 나타나는 아사다 마오에 비해 김연아는 이번 시즌에서도 가산점을 알뜰하게 챙기고 있습니다. 그랑프리 3차 대회에서 트리플 플립이 롱엣지와 어텐션(!로 표기, 점프의 모호함을 말함)을 받은 것은 납득하기 어려운 결과이지만 모든 기술을 흠잡을 때가 없이 탄탄하게 완성한 김연아의 진가는 가산점 챙기기에서 톡톡히 재미를 보고 있습니다.

이렇듯 김연아가 현란하게 보이는 아사다 마오의 기술들을 잠재우고 이길 수 있었던 요인은 마오에 비해 훨씬 질적으로 뛰어난 기술들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점프와 각종 기술들의 정교함이 빛을 발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김연아의 강점은 뛰어난 연기와 표현력에서도 나타납니다.



위의 이미지 자료는 이번 그랑프리 3차대회 프리스케이팅에서 김연아가 받은 PCS(프로그램구성요소)점수입니다. PCS는 지난 1차대회보다 한층 좋아졌고 스케이팅 기술과 안무, 연기 수행, 그리고 이해도는 7점대 후반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물론 아사다 마오도 PCS에서 7점대 초반과 중반에 이르는 점수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표현력에서 김연아가 우위에 있는 것은 확실합니다. PCS에서 심판진들의 주관적인 개입이 깊숙하게 침투하지 않는다면 김연아가 아사다 마오에 보다 높은 점수를 받는 것은 지극히 상식적인 결과입니다.

다만, 올해부터 바꿔진 규정 중에서 점프의 롱엣지를 피해가는 '어텐션'의 도입은 마오에게 한층 유리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습니다.

트리플 악셀의 기본 점수는 지난 시즌에 비해 높아졌습니다. 7.5에서 8.2로 점수가 높아졌지만 실패했을 때의 감점도 만만치 않습니다. 또한, 아사다 마오가 트리플 러츠에서 롱엣지를 피해 점수에서 다운을 받지 않고 PCS에서 예상보다 높은 점수를 얻는다면 김연아를 더욱 긴박하게 쫓아갈 수 있습니다.

이런 부분이 우려가 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지난 시즌, 극히 낮은 성공률을 가졌던 마오의 트리플 악셀 성공률과 가산점을 얻지 못하고 늘 다운을 당하는 상황을 본다면 크게 우려할 부분은 아닙니다. 올 시즌도 뚜껑을 열어봐야 알겠지만 지난 시즌 극히 성공률이 저조했던 점프가 갑자기 성공률이 높아지는 현상은 쉽게 발생하지 않을 것입니다.

또한, 어텐션 도입과 PCS에 대한 부분도 우려를 낳고 있습니다. 하지만 규정은 반드시 특정한 쪽에 유리하게 작용되는 것이 아니라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습니다.

김연아의 옛 스승이었던 신혜숙 코치는 "어떤 규정이 표면적으로는 특정 선수에게 유리하게 보일 수도 있겠지만 막상 실전에 나가게 되면 상황은 달라진다. 중요한 것은 링크 장 밖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어느 규정 속에서라도 실전 경기를 통해 최상의 연기를 펼치는 쪽이 궁극적으로 이기게 돼있다. 연아와 아사다 마오도 마찬가지라고 본다. 두 선수 모두 저마다의 장점을 가지고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실전에서 실수를 덜 하는 쪽이 유리하다는 것이다. 연아는 원래부터 실전에 강했던 선수였다"라고 답변했습니다.

역시 김연아를 국내에서 지도한바 있는 김세열 코치도 "이번 그랑프리 3차대회에서 판정의 문제가 있었지만 김연아는 기술적으로 충분히 완성된 선수이기 때문에 모든 것을 바로 극복할 수 있는 힘을 가졌다"라고 옛 제자에게 힘을 불어넣어 주었습니다.



한국과 일본의 자존심을 대표하는 소녀들 간의 경쟁과 우정

피겨 선수들은 국제대회가 끝나고 난 뒤, 열리는 파티를 통해 돈독한 사이로 발전합니다. 처음 김연아가 주니어 국제무대에 나갔을 때, 아사다 마오는 먼 존재였고 경쟁자일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지속적으로 국제대회에서 마주치면서 동갑내기 소녀들의 마음은 열리기 시작했습니다. 링크에 들어서면 1위를 쟁취하기 위해 피 말리는 경쟁을 하는 최고의 선수들이지만 막상 링크를 벗어나면 10대의 동갑내기 소녀로서 그들이 소통하는 공감대는 컸습니다.

실제로 필자는 이 두 선수들을 모두 가까운 곳에서 대면해 봤습니다. 기자들의 질문 하나하나에 진지하게 생각하면서 놀라운 언변으로 대답하는 김연아는 나이에 비해 성숙하고 당찬 이미지가 물씬 풍겨왔습니다.

그에 반해 아사다 마오는 많이 다른 분위기였습니다. 선수대기실에서 잠깐 마주칠 때, 특유의 눈웃음으로 가볍게 인사를 건넨 마오는 이웃집 소녀와 같은 평범한 인상이 느껴졌습니다. 워낙 김연아와 치열한 경쟁을 하는데다가 일본 언론들의 과장된 플레이와 국제대회에서 나오는 석연찮은 판정 때문에 얄미운 인상도 무의식중에 남겨져있었던 것이 사실이었습니다. 그러나 링크 밖에서 시종일관 웃으면서 답변하는 마오는 미운 구석을 찾아 볼 수가 없었습니다.

이러한 마오의 모습엔 일본인들이 사랑하는 대중적인 아이돌의 이미지도 녹아있었습니다. 언변과 어휘력은 김연아에 비해 여러모로 부족했지만 귀엽고 어린 소녀다운 모습은 일본인들의 사랑을 받기에 충분했습니다.

나이에 비해 성숙하고 쿨하며 털털한 김연아와 귀엽고 천진난만한 마오는 어찌 보면 서로의 이질감을 보완하며 친해질 수 있는 사이로도 보였습니다.

실제로 김연아와 마오는 경기가 시작하기 전에는 서로 눈길도 마주치려하지 않는 팽팽한 신경전을 펼치지만 경기가 끝난 뒤, 파티에 나서면 함께 어울리며 사진도 많이 찍는 평범한 소녀들입니다.

김연아의 어머니인 박미희씨는 자신이 낸 저서를 통해 김연아의 캐나다 전지 훈련지에 우연하게 마오가 온 것을 알고 카레와 한국식 부침개를 보냈다는 훈훈한 일화를 공개했습니다. 실제로 마오의 어머니와도 친분이 있는 박 씨는 아이스링크가 아닌 다른 장소에서는 마오에게도 각별한 정이 간다고 밝혔습니다.

양 국가는 이 두 선수를 놓고 치열한 신경전을 벌이고 있지만 막상 당사자들인 김연아와 아사다 마오는 링크 밖에서 훈훈한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18세의 나이에 한국과 일본의 자존심을 건 대결을 벌이는 이들은 피겨선수이기도 하지만 동갑내기의 평범한 소녀들이기도 합니다.

두 선수 모두 최선을 다하고 납득할 수 있는 공정한 평가가 뒤따른다면 바람직한 경쟁구도를 이어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조영준

ⓒ 엑스포츠뉴스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실시간 인기 기사

연예
스포츠
게임

주간 인기 기사

연예
스포츠
게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