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08.10.12 06:30 / 기사수정 2008.10.12 06:30
[엑스포츠뉴스 = 조영준 기자] 피겨스케이팅에 참맛을 알려면 여자피겨의 우아함과 아름다움에 빠져드는 것도 필요하지만 남자피겨가 주는 파워와 다이내믹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피겨 여왕' 김연아(18, 군포 수리고)의 출연 이후, 여자 싱글에 도전하는 많은 피겨 유망주들은 늘어나고 있지만 국내에서 제대로 활동하고 있는 남자피겨 선수들은 손으로 꼽을 정도로 희소합니다.
그러나 이 가운데서도 보석 같은 선수들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 중, 열악한 한국남자피겨의 환경 속에서 기적처럼 등장한 '피겨 신동' 이동원(12, 과천초)은 한국남자피겨의 희망으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더블 악셀 점프를 너무나 일찍 익히고 10대 초반의 나이에 다섯 가지 점프를 모두 트리플로 완성해낸 이동원은 강한 체력과 무대에서 표현하는 독창적인 연기까지 갖춘 유망주입니다.
많은 피겨관계자들이 하나같이 감탄과 칭찬을 아끼지 않는 이 피겨 신동을 만나기 위해 늦은 밤, 잠실롯데월드빙상을 찾았습니다. 하루의 고된 훈련을 받고 밤 11시가 다되는 시간에 또다시 새로운 훈련지인 롯데월드 빙상장에 도착한 이동원은 조금은 피곤한 기색이 보였지만 이내 스케이트를 신자 눈빛이 초롱초롱 빛나기 시작했습니다.
이동원의 아버지인 이승준 씨는 "피겨를 시작하기 전에 동원이에게 태권도와 수영, 그리고 스케이트를 모두 시켜봤다. 그런데 태권도의 경우, 2단에서 3단을 따려면 3년 정도가 걸린다고 했고 수영 같은 경우는 소질을 찾기 어려웠는데 스케이트는 정말 잘 탔다. 그 계기가 지금까지 이어졌다"라고 피겨를 시작하게 된 계기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현재 이동원을 지도하고 있는 신혜숙 코치는 김연아를 비롯해 국가대표 선수인 김나영(18, 연수여고)과 최지은(20, 고려대) 등을 가르친 지도자입니다. 우연하게 꿈나무 대회에서 이동원의 연기를 지켜보고 재능이 많은 선수인 것을 확인한 신 코치는 그 후, 2달이 지나서 이동원을 책임지는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신 코치는 "대게 남자선수들은 초기에 음악을 따라서 움직이는 연기와 스텝 등이 여자선수들에 비해 느낌이 없고 뻣뻣한 편이다. 그러나 동원이가 음악에 맞춰서 움직이는 것을 보고 예사롭지 않다는 것을 느꼈고 어쩔 때는 하나를 가르쳐주면 두 가지 이상을 깨닫는 모습도 보여주었다"라며 다른 선수들과는 남다른 이동원의 재능에 대해 칭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이동원의 아버지인 이 씨는 아들에게 피겨를 시키게 된 어려움과 남자피겨선수들이 겪는 고충에 대해서 털어놓았습니다. 이 씨는 "남자피겨선수들의 경우는 여자선수들과는 달리 모 아니면 도인 경우가 많다. 우선적으로 세계적인 선수가 되지 못하면 나중에 성장해서 가족들을 부양할 여건이 안 된다는 게 가장 큰 문제이고 군대문제도 걸리는데 조금이라도 쉬면 감각을 잃어버리는 피겨선수가 군대에 가게 되면 사실상 선수 생명은 끝인 거나 다름없다. 여자들도 힘든 운동이지만 남자들도 매우 어렵고 선택하기가 쉽지 않은 종목이 피겨스케이팅이다"라고 밝혔습니다.
'역도 여제' 장미란(25, 고양시청)의 수기에서도 나타났듯, 역도선수들은 일주일정도만 쉬어도 선수가 아닌 '평민'으로 돌아간다는 말이 있었습니다. 또한, 그러한 경우는 피겨스케이팅도 마찬가지입니다. 신 코치는 "예를 들어 김나영 선수가 시험 때문에 일주일정도 피겨를 안 하고 다시 빙판에 돌아오면 감각을 상당부분 잃어버려서 한동안 고생을 하게 된다. 한번은 이런 적도 있었다. 5월 달에 치러지는 중간고사 때문에 1주일을 나영이가 쉬었는데 그 때는 '트리플 러츠' 점프가 한창 물이 오르고 있던 상황이었다. 그러나 1주일을 쉬고 나서 그 점프를 다시 회복하는데 6개월이 걸렸다"라며 꾸준하게 연습을 반복해야하는 피겨스케이팅의 특징을 설명했습니다.
김연아처럼 점프와 기술들을 완전히 마스터한 상태라면 잠깐 쉬어도 그 기술을 회복하는데 큰 어려움은 없지만 발전하는 단계에서 장기간 휴식은 치명적이라는 것이 피겨의 어려운 부분입니다.
이동원의 강점은 타고난 체력에서도 찾을 수 있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 신 코치는 "롱 프로그램의 경우 4분 정도 동안 이루어지는데 보통 선수들의 경우 이 롱 프로그램 연습을 두 번 연속으로 반복하면 매우 힘들어 한다. 그러나 동원이 같은 경우는 무려 롱 프로그램 연습을 6번이나 맞추면서 계속 반복 연습한 적이 있다. 그 때 시간은 30분이 넘었었고 그 시간동안 지치지 않는 모습을 보면서 강한 체력에 감탄한 적이 있었다"라고 밝혔습니다.
이동원의 성장속도와 재능은 남자피겨선수들이 드문 국내에서는 단연 독보적이었습니다. 그러나 한국이 아닌 국제로 눈을 돌려 보면, 이동원 정도로 잘하는 선수들이 많은 것도 현실입니다. 현재 이동원의 수준을 같은 또래의 세계적인 선수들과 비교해달라는 질문에 대해 신 코치는 "동원이가 세계대회에 나가서 꼭 1등을 한다고 장담할 수는 없지만 세계무대에 나가도 탑에 드는 것은 사실이다. 세계 노비스(13세 이하)대회에 나간다고 가정해 볼 때, 지금 동원이가 가지고 있는 기술들이 십분 발휘된다면 금메달도 충분히 가능하다"라고 답변했습니다.
그러나 가장 최근에 벌어졌던 제10회 전국피겨스케이팅꿈나무대회에서 이동원의 경기력은 그리 좋지 못했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 아버지인 이승준 씨는 "컨디션과 기분이 좋다면 자신의 실력을 120% 발휘할 수도 있지만 감각을 잃어버리고 기분이 다운되면 무너지는 모습도 보인다"라고 대답하자 신 코치도 "기복이 심하다는 게 동원이의 단점이다"라고 지적했습니다.
하지만 이동원은 연습보다 실전에서 강한 모습을 지니고 있습니다. 신 코치는 "동원이를 지도한지 1년 정도 밖에 되지 않아 아직까지 많은 경기를 치르지 않았지만 실전에 나가서 충분히 제 몫을 다하고 있었다"라고 밝혔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 이 씨는 "동원이는 실전용 선수로 부를 수 있다. 예를 들어서 초등학교 2학년 때, 악셀 점프를 익힌 지 사흘째가 지나는 날에 시합이 있었는데 연습 때 한두 번 성공했던 악셀 점프를 막상 시합에 들어가서 성공해냈다"라고 답변했습니다.
현재 이동원은 트리플 플립과 러츠 점프의 성공률을 높이는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 신 코치는 "9월 중순쯤에는 플립과 러츠 점프 성공률이 굉장히 좋았다. 그런데 내가 나영이와 독일 네벨혼 대회에 다녀오게 되면서 그 사이에 점프에 대한 감각을 잃고 있었다. 그러나 최근에 와서 다시 점프에 대한 감각을 찾고 있으며 자신의 점프에 대한 자신감과 어떤 부분이 잘못 됐는지를 동원이 스스로가 잘 알고 있다. 점프가 실패하고 나서 문제점을 지적하려고 부르면 내가 대답하기도 전에 '이게 잘못됐죠?'라고 먼저 말을 걸어온다"라며 자신의 단점을 스스로 파악하고 있는 이동원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흡수력은 물론, 아직 초등학생인 이동원은 벌써부터 스스로 생각할 줄 아는 응용력까지 지녔습니다. 신 코치는 "아직 초등학생이고 남자 선수인 경우, 음악에 맞춰 연기를 했을 때, 코치가 가르쳐주지 않은 동작까지 넣어가며 애드리브를 발휘하는 경우는 거의 전무하다. 그러나 그 대상에서 동원이는 예외이다. 실전경기에서 가르쳐 주지 않은 동작들을 스스로 해내고 있는 점을 보면 내 개인적으로도 놀라는 경우가 많다"라고 밝혔습니다.
이렇게 재능이 뛰어난 선수들을 지도하는 코치의 입장에서 보면 자긍심이 들 때도 있지만 부담감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20년 동안 수많은 선수들을 조련해 온 신 코치는 지금까지 선수들을 지도하면서 딱히 부담을 가져본 적은 없지만 이동원을 만나고 가르치면서부터 처음으로 부담감을 가졌다고 솔직하게 털어놓았습니다.
신 코치는 "지금까지 많은 선수들을 지도해왔지만 동원이에게서 느끼는 부담감은 처음으로 가지고 있다. 이렇게 여러모로 재능이 뛰어난 선수를 내가 더욱 훌륭하게 발전시켜야한다는 마음이 그렇고 이런 기분은 연아를 가르칠 적에도 느껴보지 못한 것이다"라고 답변했습니다.
이러한 이동원을 지도할 계획에 대해 신 코치는 "풍부한 끼와 표현력은 이미 갖춘 상태이니 우선적으로 점프를 탄탄하게 가르쳐나갈 생각이다. 점프만 제대로 익히고 나면 나중에 성장해서 자신이 지니고 있는 끼도 발휘해 기술과 표현력을 고루 갖춘 선수로 성장할 가능성이 크다"라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피겨선수 생활을 지속할 수 있는 현실적인 환경은 여러모로 힘듭니다. 피겨선수를 자녀로 둔 부모의 입장에 대해 이 씨는 "어느 종목을 봐도 피겨만큼 이렇게 돈이 많이 들어가는 종목은 드물 것이다. 애초에 피겨스케이팅이 지출이 이 정도로 많은 종목인 것을 알았다면 쉽게 접근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물론, 연맹도 예산이 풍부하지 않아 선수들에 대한 투자가 이루어지지 못한다는 것은 충분히 알고 있지만 그래도 한 가지를 바란다면 최소한 국제대회에 출전하는 선수들의 코치에 대한 비행기 표라도 연맹차원에서 협조가 이루어졌으면 한다. 적어도 국가를 대표해서 출전하는 경기인데 선수들에 대한 항공료는 나오지만 그 외에는 전부 선수 가족이 부담해야 한다. 현재 빙상연맹도 어려운 것은 알지만 국제대회 한번 나가면 막대한 금액이 지출되는 현실 속에서 최소한 코치들의 항공료 정도는 협조가 이루어져야한다고 생각한다"라며 털어놓았습니다.
그리고 이 씨는 "김연아의 등장 이후, 피겨스케이팅 인구가 늘어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번 꿈나무대회에 참가한 선수들의 인원은 총 48명이었다. 이 숫자는 예전에 비해 그리 큰 변동이 없는데 무슨 뜻이냐 하면 피겨를 시작한지 1~2년 만에 그만두는 분들이 많다는 것이다. 그만큼 투자가 많이 들어가는 피겨의 현실 때문에 좌절하는 이들도 많고 아무리 재능과 열정이 있다 하더라도 돈이 없으면 도저히 버틸 수 없는 곳이 피겨 계의 현실이다"라며 어려움을 밝혔습니다.
이렇게 힘든 상황 속에서도 이동원의 내면에서 항상 꿈틀거리고 있는 무한한 재능과 열정은 쉽게 꺼지지 않고 있었습니다. 선수로서 가장 피해가야 할 부상에 대한 훈련에도 철저히 임하고 있는 이동원은 특히, 빙판에 들어가기 전에 하는 지상훈련에 소홀치 않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씨는 지상훈련과 더불어서 빙판 연습이 끝난 후에 이루어지는 마무리 훈련의 중요성도 빼놓지 않았습니다.
비록 힘든 피겨지만 최근 피겨 팬들이 늘어나고 경기장에 많이 찾아와 성원해주는 팬들을 봤을 때, 이동원은 힘을 얻는다고 답변했습니다. 늘 시합이 있으면 찾아와서 응원해주고 선물까지 주는 팬들에게 항상 고맙다는 이동원은 연기를 하면서 흥이 나면 저절로 팬들을 보면서 애드리브를 한다고 밝혔습니다.
자신의 점프와 연기가 잘되고 관중들의 호응이 일어나면 자신도 모르게 여러 가지 동작이 나온다는 이동원은 지난 5월 달에 벌어진 ‘페스타 온 아이스쇼’를 통해 많이 친숙해진 일본의 다카하시 다이스케를 가장 좋아하는 선수로 꼽았습니다.
이동원의 궁극적인 꿈과 목표도 다카하시 같은 선수가 돼서 올림픽에 출전하는 것입니다. 앞으로 1~2년의 과정이 이동원에게는 가장 중요한 시기입니다. 이미 장착한 트리플 5종 세트를 더욱 탄탄하게 익히고 난 뒤, 내년에는 트리플 악셀에 도전하고 그 뒤로는 쿼드 점프에도 도전할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이동원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에 대해 신 코치는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기량을 실전에 나가 최선으로 발휘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언제나 피겨를 즐기고 연습 때 하던 것을 실전에서 충분히 한다면 좋은 결과는 자연스럽게 따라 온다. 피겨를 즐기는 것이 중요하고 지금보다 조금 더 노력해서 가지고 있는 재능을 십분 발휘하고 싶은 게 동원이를 지도하는 나의 생각이다"라고 소감을 밝혔습니다.
이동원은 다음 달 초에 있는 국내 랭킹 전에 주니어 선수로 출전하게 되고 올 연말에 홍콩에서 벌어지는 아시아선수권에 참가하게 됩니다. 또한 내년 봄에 있을 트리글라프 트로피대회 노비스 부분에 참가해서 자신의 기량을 발휘할 예정입니다.
김연아가 한국피겨의 새로운 획을 그었다면 한국남자피겨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 넣을 선수로 이동원이란 석자의 이름이 선명하게 새겨지기를 기원합니다.
[사진 = 이동원 (C) 전현진 기자, 조영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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