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05.02.18 09:15 / 기사수정 2005.02.18 09:15
정신과 육체의 수양, 무예
여러가지 운동를 수련하다보면 혹자들은 종종 "이종격투기에 나가보라"는 말을 듣곤 한다. 그렇지 않아도 이종격투기(입식타격대회)에 나가 볼 의향은 평소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수련의 목적으로 참가하고 싶을 뿐이다. 무예의 순수목적 "正道"에 어긋남이 있기 때문이다. 무예라는 것은 이런 본능을 통제하기 위해서 몸소 익히는 합일적(合一的) 운동이다. 즉, 정신과 육체를 같이 수양하는 행동이다. 급변하는 사회에서 자신을 통제할 수 있는 것은 굳은 신념일 것이다. 폭력이 난무하고, 비양심이 만연하고 있는 현재, 우리는 보다 본능적인 것에 환호하고, 즐거워하고 있다.
격투, 그들의 아낌없는 카리스마와 에너지
이런 분위기 속에 인간의 원초적인 본능인 "격투"는 많은 이들의 시선을 주목시키기에 안성맞춤인 스포츠이다. 100Kg이 훨씬 넘어가는 근육질의 선수들이 복싱은 물론이고, 무에타이, 태권도, 가라데, 킥복싱, 주짓수, 유도 등의 내로라 하는 무예를 섭렵한 뒤, 관중들에게 아낌없는 카리스마와 에너지를 그들은 분출한다. 선혈(鮮血)이 낭자하는 링 위에 그들은 자신이 최고의 전사임을 스타디움을 물론 TV 전파를 타고 안방에서 보고 있을 삶에 찌든 방청객에게 전달한다.
그들의 격투는 실상(實相)이지만, 한정된 룰에 적용된 그들의 격투는 진정한 격투가 아니다. 진정한 격투는 모든 것이 허용되야만 격투라 할 수 있다. 우리는 동전의 양면처럼 하나의 모습에만 흥분하고 즐기며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지만, 또 다른 뒷면에 감춰진 공포를 우린 아직 모르고 있다. 만일, 진정한 격투가 TV전파나 공개적인 대회로 성장한다면, 전 세계가 맹비난을 할 것이다. 이유는 인간의 모습이 아니기 때문이며, 그땐 이미 사투(死鬪)가 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격투에 있어 승자는 승리의 기쁨을 맛보겠지만, 패자는 패배의 아픔과 더불어 자신의 몸에 심각한 부상을 입게 되어 죽음까지 맞이하게 되는 것이 격투의 뒷모습이다. 우리가 최고라 불렸던 파이터들도 결국 부상으로 파이터 생애를 마감하는 경우도 있으며 죽음으로까지 내몰기도 했다.
진정한 고수란
무예의 고수들이 격투대회에 나와서 자웅(雌雄)을 겨뤄야 한다는 주장에 필자는 지금도 반대하는 입장이다. 세계 각지에는 아직도 알려지지 않은 고수들이 있으며, 이들은 격투를 좋아하지 않는다. 마치 도인(道人)처럼 은둔자(隱遁者) 생활을 하며, 자연을 벗삼아 삼라만성(森羅萬象)의 이치를 깨우기도 한다.
격투라는 것을 비유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이야기가 하나 있다. 편작이라는 위대한 명의(名醫)이야기다. 중국 위나라 '편작'은 죽은 사람도 살려낸다는 명의였고, 그의 두 형도 모두 의사였다. 하루는 왕이 편작에게 "그대 삼형제 가운데 누가 병을 가장 잘 고치는가?"라고 물으니 편작이 대답하기를 "저의 큰형 의술이 가장 뛰어나고 다음은 둘째 형이며, 저는 형제들 중 가장 뒤떨어집니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그대 형들은 왜 세상에 널리 알려지지 않았는가?"라고 물으니 "저의 큰형은 환자가 아픔을 느끼기 전에 얼굴빛으로 이미 그 환자에게 닥쳐올 병을 알아 미리 병의 원인을 제거해 줍니다. 환자는 아파보지도 않은 상태에서 치료받게 되어 제 큰 형이 고통을 제거해 주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 제 형이 명의로 소문나지 않은 까닭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라고 대답했다.
왕이 이번엔 둘째 형에 대해 묻자, "저의 둘째형은 환자의 병세가 약할 때, 그 병을 알아보고 치료를 해 줍니다. 그래서 환자들은 제 둘째 형이 자신의 큰 병을 다스려 주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둘째 형이 명의로서 이름을 떨치지 않은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그렇다면 그대는 어떻게 환자를 치료하는가?"라고 왕이 묻자, "저는 환자의 병이 커지고 환자가 고통 속에서 신음할 때에야 비로소 병을 알아봅니다. 병세가 심각하므로 맥을 짚어 보아야 했고, 진기한 약을 먹여야 했으며, 살을 도려내는 수술을 해야 했습니다. 사람들은 저의 그런 행위를 눈으로 확인했으므로 제가 자기들의 큰 병을 고쳐 주었다고 믿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명의로 소문나게 된 것은 이처럼 하챦은 이유에서입니다."라고 대답을 했다.
사람들이 격투라는 본능적인 스포츠에 열광하는 이유는 아마도 맨 마지막 대사에 있지 않을까. 세계라는 넓고 넓은 곳에 첫째 형이나 둘째 형처럼 숨은 무술가들이 있으며, 편작처럼 대중이 절실히 필요로 할 때, 무언가 통쾌함과 전율을 보여줄 수 있는 것. 그러나, 편작이라는 위대한 명의도 혼수상태의 환자를 100% 치료해 주지 못할 것이며, 위대한 파이터라도 한순간의 방심으로 불구나 평생을 부상을 안고 살 수 있는 '아름답지만, 날카로운 가시를 지닌 장미'와도 같은 모습이 격투다.
격투라는 두 단어에 무예는 바뀌고 있다
격투에 진정으로 환호하고 싶다면, 직접 무예를 배워보아야 한다. K-1이나 Pride, UFC의 메이져단체나 스피릿 MC 등의 국내 단체에서 활동하는 선수들이 되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시간을 할애하며 투자해야하는지 그리고 얼마나 많은 부상을 입으며 눈물을 흘리는지 그때서야 비로소 알 수 있을 것이다.
선수들의 땀과 눈물을 여러분들도 느껴야 진정한 매니아가 아닐까? 선수들은 단지 자신의 능력을 보여주고 대중으로부터 인정받고 싶을 뿐이다. 이런 모습이 자칫 와전되어 Fighter Club 등으로 변질(變質)되고, 이것은 어린 학생들에게 폭력을 인정하게끔 하는 오해를 불러 일으키는 등 악순환이 되기도 한다. 과거, 정권(正拳)으로 벽돌을 깨고, 정강이나 발목, 발등으로 나무를 차며, 숨 넘어갈 때까지 응용기술을 연마하는 모습이, 현재는 다리가 일자로 찢어지고, 화려한 공중기술을 쓰고, 상대방을 때려눕혀야 하는 모습으로 무예가 바뀌고 있다.
격투라는 두 단어에 얽매여, 무예는 바뀌고 있다. 허공을 가르며 상단차기를 차던 모습보다는 상대의 목이나 관자놀이를 차는 모습에 열광하고, 공기를 가르며 정권찌르기를 하던 모습도 상대의 턱이나 관자놀이에 꽂히는 주먹으로 변하고 있다. 무예를 배운 사람들 중에는 자신의 무예를 검증받고 싶어 고수(高手)들을 찾아다니기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사부(師父)의 그림자가 되어 무술을 연마하기도 하며, 또 어떤 사람들은 넓은 세상으로 나가 자신을 내보이기도 한다. 누가 옳다, 누가 그르다 라는 것이 아니다. 단지 발상(發想)의 차이일 뿐이다.
격투라는 단어에 너무 집착하는 것이 아닐까. 사람들이 생각하는 비쥬얼(Visual)적인 격투는 동전의 양면이다. 화려하지만, 언제나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한정된 격투는 격투가 아니며 우리 실생활에서의 격투는 반드시 승자와 패자가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인성(人性) 잃은 격투가나 격투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카오스의 홍수에 빠지기 쉬우며, "폭력"이라는 악행(惡行)을 스스럼없이 자행할 수 있다. 격투(擊鬪)는 사전에서 '서로 맞붙어 치고 받고 하며 싸우는 것'이라고 풀이되고 있다. 격투 속에서는 항상 승자(Winner)와 패자(Loser)가 존재하기 마련이지만 "차가운 두뇌와 뜨거운 가슴"이라는 기막힌 격언처럼 승패에 집착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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