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08.09.07 10:21 / 기사수정 2008.09.07 10:21
[엑스포츠뉴스 = 박종규 기자]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야구, 팬들은 열광할 수밖에 없다!
매년 504경기가 벌어지는 프로야구. 우리는 4월부터 10월까지 거의 매일 야구를 즐길 수 있다.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수많은 승부들은 팬들에게 희로애락을 가져다준다. '인생의 축소판' 이라 불리는 야구는 결과를 쉽게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이 가장 큰 매력일 것이다.
지난 5일 잠실야구장에서 펼쳐진 SK 와이번스와 LG 트윈스의 경기는 야구의 매력을 유감없이 감상할 수 있는 기회였다. 11회 연장전 끝에 SK가 4-3으로 승리한 경기. 스코어만으로는 결코 알 수 없는 극적인 요소들이 숨어있다. 그것들을 발견하는 것이 팬들에겐 야구를 즐기는 방법이 될 수 있다.
아무도 멋진 승부를 기대하지 않았다?
올시즌 선두 자리를 굳게 지키고 있는 SK와 최하위 자리를 굳게(?) 지키고 있는 LG의 대결. 양 팀의 전력을 비교했을 때, SK의 손쉬운 승리를 예측하는 분위기였다. 게다가 같은 시각 타구장에서는 치열한 4강 싸움을 벌이고 있는 한화-삼성의 경기와 KIA-롯데의 경기가 팬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이날 오전, 잠실야구장에서는 연세대와 고려대의 고연전 야구 경기가 벌어졌다. 그 경기가 끝난 뒤, 관중석 정리가 늦어져 평소보다 입장시간이 1시간가량 지연됐다. 썰렁한 야구장, 관심은 다른 구장으로 쏠려있다는 것을 대변하듯 조용하기만 했다.
의외의 승부, 그러나 지루하기는 마찬가지
이날 LG의 선발투수는 시즌 10승을 기록하고 있던 에이스 크리스 옥스프링이었다. SK에서는 안정적인 투구를 이어오고 있는 영건 송은범이 나섰다. 선발투수들의 무게로 예상했을 때, 난타전 보다는 3점 이내의 승부가 펼쳐질 것으로 점쳐졌다.
경기의 막이 오르자, 이날 경기의 주인공이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했다. LG 선발 옥스프링이 몇차례 위기를 넘기며 8회까지 2안타 무실점의 호투를 이어간 것. 그 안타도 1회 첫타자 정근우와 다음타자 조동화에게 맞은 연속안타가 전부였다. LG 타선은 1회말 안치용의 희생뜬공, 4회말 이병규의 1타점 2루타로 2점을 얻었다. 2점 차의 투수전이지만 양팀의 공격이 활발하지 못해 박진감이 떨어지는 것은 사실이었다.
경기는 그렇게 흘러가며 9회초 SK의 마지막 공격만을 남겨두고 있었다.
옥스프링의 완봉승?
야구는 단체경기다. 9명 중 한 선수가 특출나다고 해서 반드시 승리하는 것은 아니다. 인터뷰하는 선수들의 말을 들어보면 "개인성적은 관심없고, 팀 승리가 최우선이다" 라는 멘트를 자주 접할 수 있다. 자신이 아무리 뛰어나도 팀이 패한다면 그 기록은 빛을 잃기 때문에 그들은 팀 승리에 좀 더 가치를 둔다. 기록경기이자 단체경기인 야구가 갖는 특징이다.
최하위 LG도 기량이 뛰어난 선수가 몇 명 있지만, 그들이 모든 경기의 승리를 보장해주지는 못한다. 도루 1위 이대형과 탈삼진 1위 봉중근이 있지만, 도루와 삼진만으로는 경기에서 이길 수 없다. 에이스 옥스프링도 마찬가지. 시즌 10승을 올리며 LG의 승수 중 약 25%를 차지할 정도였으나, 7위를 따라잡을 만한 힘을 실어주지는 못했다. 리그 최고의 투수가 될 가능성은 있어도 팀 성적을 끌어올리는 데에는 역부족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이날 경기에서 옥스프링이 완봉승을 거뒀다 하더라도 온전한 조명을 받지는 못했을 것이다. 오히려 팬들의 관심은 4강 싸움을 벌이고 있는 팀들의 경기결과로 쏠렸을 터. 지난해 7월 한국 땅을 밟은 옥스프링의 한국무대 첫 완봉승과, 올시즌 8개구단 투수들을 통틀어 최초의 전 구단 상대 승리라는 영예였는데도 말이다.
새로운 국면을 맞게되는 승부
옥스프링이 완봉승을 거두는 것이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결과였는지도 모른다. 8회까지 SK 타자들을 봉쇄했으니 9회에도 이변이 없는 한 역전을 허용하지 않을 분위기였다. 또한 최하위 LG의 자존심 옥스프링이 SK를 꺾는 것, 강자를 이기는 약자라는 점에서 흥밋거리가 될 수 있었다.
그러나 야구의 신은 팬들의 예상을 비웃듯 예측 불가능한 야구의 진면목을 다시금 일깨워주었다.
9회초 1사 후 옥스프링이 연속안타를 맞아 1점을 내줬으나, 완봉에는 실패했어도 완투승을 거둘 수 있을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었다. 대타 이재원을 삼진으로 돌려세워 아웃카운트 1개만을 남겨두자 그 예상은 더욱 굳어졌다. 9회초 2사 1루의 마지막 순간. 잠시 후 우리가 접한 현실은 좌중간 담장까지 굴러가는 김강민의 동점 3루타였다. 완투승으로 경기를 끝내려던 LG도, 간절히 바라던 동점을 이룬 SK도 기막힌 현실을 맞이한 것이다.
이어진 공격에서 박정환의 중전 적시타가 터져 경기가 3-2로 뒤집어지자, 경기는 전혀 다른 색을 띄기 시작했다. 옥스프링의 호투 보다는 SK의 무서운 뒷심이 조명을 받은 것. SK의 선두 독주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음이 증명됐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LG, "이대로 주저앉을 순 없다!"
박정환의 역전타가 터진 시각은 21시 23분. 3시간가량 리드하고 있던 LG는 1분 안에 끝날 수도 있었던 승부가 뒤집어짐에 통탄했다. 바로 그것이 야구의 매력이 아니겠는가.
예상치 못한 9회말 공격을 맞이한 LG. 이대로 무릎 꿇는다면 이날의 1패는 다른 경기보다 훨씬 뼈아픈 패배로 다가올 것이 분명했다. 그러한 정신력이 작용한 것일까, LG는 2사 3루의 기회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김상현의 중전 적시타가 터졌다. 시즌 내내 부진한 타격으로 팬들을 실망시켰던 김상현의 동점타. 그것도 9회말 2아웃의 마지막 상황에서 나온 거짓말 같은 현실이었다.
이 때, LG 응원석에서 "LG 없이는 못살아" 라는 응원가가 흘러나왔다. 이 노래가 필자의 귀에는 "야구 없이는 못살아" 내지는 "야구 때문에 못살아" 라고 들렸다. 이렇게 기막힌 야구가 없었다면 과연 삶의 낙은 어디서 찾을 수 있었을까.
끝끝내 승리를 쟁취한 SK, 역시 1등답다
짜릿한 역전승을 눈앞에 두었던 SK. 예상치 못한 김상현에게, 그것도 수호신 정대현이 동점을 허용했기에 흔들릴 수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SK는 무서울 정도로 평상심을 회복했다. 10회부터 등판한 김원형은 2이닝을 1안타 무실점으로 막아냈고, SK 타선은 11회초 2연속 안타로 재역전을 이뤄냈다. 11회 연장 끝에 4-3으로 승리, 결국은 LG의 항복을 받아낸 것이다.
이날 SK의 승리는 126경기를 치르는 페넌트레이스에서 고작 1경기의 결과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이 한 경기 한경기가 모여 팀순위가 판가름나는 것. 매 경기 숨막히는 승리의 관문을 통과해야 좋은 성적을 쌓아올릴 수 있다. 비록 한 경기지만 왜 SK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홀로 선두를 질주하는 지 알 수 있었다.
김성근 감독은 4.2이닝 2실점으로 비교적 호투한 송은범을 내리고, 정우람-윤길현-조웅천-이승호-정대현-김원형을 차례로 마운드에 올렸다. 보는 이들은 일방적으로 끌려가던 경기에 왜 그리도 많은 투수들을 기용했느냐는 의문을 가졌을 것이다. 그 의문에 대하여 현실은, 8회까지 더 이상의 실점을 막은 데 이어 9회초 역전을 이루는 과정, 그리고 역전당한 뒤에도 재역전의 발판을 마련한 것으로 대답해 주었다.
지난해 유난히 투수들을 자주 교체해 '출석체크 하느냐' 는 비난을 받던 김감독은 '승부는 언제 바뀔지 모른다' 라는 논리를 주장했다. 이날 경기에서도 그 논리는 적용됐고, 그가 옳았음을 증명해냈다. 그는 통산 1000승을 달성한 지략가다.
1년에 504경기가 이뤄지는 프로야구. 어떤 이들은 매일 똑같은 것이 반복되는 게 아니냐고 반문할 것이다. 그러나 매일 밤 야구장에서는 예측 불가능한 승부가 이어지고 있다. 지난 베이징 올림픽에서 한국 야구 대표팀은 예상을 뒤엎고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하지 않았는가. 그러한 야구의 매력이 있기에 전광판 불빛 아래 팬들은 열광할 수밖에 없다.
[사진 = LG 트윈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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