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최종편집일 2024-11-27 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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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림족구] 中언론 "러시아는 2002 한국의 복제판"

기사입력 2008.06.24 02:50 / 기사수정 2008.06.24 02:50

홍준명 기자

[엑스포츠뉴스=홍준명 기자] 히딩크의 러시아가 유로 2008에서 놀라울 정도로 막강한 화력을 뽐냈던 히딩크의 모국인 네덜란드를 8강에서 떨어뜨리고 4강에 올랐다. 

이로써 히딩크의 마법은 또 다시 세계를 놀라게 했고 그의 주가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솟아오르고 있다. 중국에서도 히딩크의 마법과도 같은 지도력은 연일 언론의 화제가 되고 있다. 특히 히딩크의 빛나는 마법의 진가를 몸소 체험했던 한국을 이웃국가로 둔 중국에서는 히딩크와 한국을 연관지어 분석하는 기사가 많이 나오고 있다.

중국의 대형 포털사이트인 '163닷컴'에서는 '한국의 기적을 완전히 복제, 세 가지 놀랄 만큼 묘하게 일치한 히딩크의 연금술을 공개하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전했는데 기사에서 전한 그 세 가지란 간단히 말하자면 체력훈련, 젊은피의 대량 수혈, 포기했던 노장의 주장기용이었다.

우선 기사에서는 히딩크는 2002년 한일월드컵 이전부터도 원래 명문팀에서만 감독을 했었다가 처음으로 한국과 같은 약팀을 지휘하게 되었으며 그것이 바로 축구 역사상 가장 커다란 신화의 하나를 창조하게 된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비록 한국의 월드컵 4강 진출이 다소 정당하지는 않았지만 히딩크가 없었다면 한국은 세계 강팀들과 겨룰 만한 배짱도 없었을 것이며 4강 신화도 없었을 것이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점이라고 했다.

다음은 기사에서 전한 히딩크의 3가지 연금술에 관한 내용을 옮긴 것이다.

1. 강력한 체력훈련

2002년 한국의 죽을 때까지 뛰어다니는 모습은 그들이 약물을 복용했다는 의심마저 들게 했지만 사실 이는 히딩크의 독창적인 체력훈련으로 인한 것이며 그 핵심인물은 체력 담당 트레이너 베르하이옌이었다. 그는 운동생리학 박사이며 '축구의 조건'이란 저서도 있고, 또한 1998년과 2000년 월드컵 당시의 네덜란드팀의 체력 담당 트레이너이기도 했다.

한국팀의 체력은 당시에도 이미 아시아 정상급이었지만 히딩크가 보기에는 여전히 뒤떨어져 있었다. 그래서 그는 2002년 3월부터 월드컵 체력강화특훈을 시작했고 3개월 후 의지 완강한 한국선수들도 모두 구토를 할 정도로 힘들어했었다.

하지만, 히딩크는 단순히 훈련의 양만을 생각한 것이 아니라 일련의 과학적인 계획을 세웠고 그 프로그램을 완성한 후의 한국팀의 체력수준은 전체적으로 20%가 향상되었으며 그때 히딩크는 한국의 월드컵 목표는 8강이라고 자신있게 말했다. 물론 당시에는 아무도 그 말에 신경을 쓰지 않으며 그저 농담이려니 했지만 한국이 결국 4강에 오를 줄은 누가 알았겠는가?

지금의 러시아 역시 히딩크의 한국에서의 경험을 옮겨놓은 것과 같다. 그러나 러시아 리그의 영향으로 히딩크에게 주어진 시간은 겨우 2주일밖에 없었다. 그런데 바로 그 2주일 만에 히딩크는 러시아팀을 유로대회에서의 강한 군대로 만들어놓은 것이다. 통계수치를 보아도 러시아의 경기장 이동 거리는 참가국 중에서도 1위이다. 그리고 조별예선 마지막 경기와 8강전의 승리는 체력적인 우세가 러시아에 가져다준 것이었다.

2. 젊은 선수들의 전면적인 기용

이번 대회에서 러시아팀의 평균 연령은 26.16세로 참가국 중에서 가장 어리다. 이는 히딩크가 부임한 후 전면적인 물갈이를 한 결과이다. 젊은 선수들이 많으면 두 가지 장점이 있다. 하나는, 히딩크식 체력훈련을 더 잘 이행할 수 있고 그 효과도 더욱 높다는 점이다. 또 하나는 젊은 선수들은 더욱 분발력이 있으며 말도 더 잘 듣기 때문에 팀에서 감독의 권위를 세우는 데에 유리하며 전술수행에도 유리하다는 점이다.

이 점은 02년 한국팀에서 더욱 두드러졌다. 히딩크가 발탁하고 중용한 박지성, 이천수, 차두리, 송종국, 설기현 등은 당시 모두 23세 이하였고 체력이 가장 뛰어났던 선수들 역시 모두 그들이었다.

3. 포기했던 노장을 주장으로 임명하여 중용하다

네덜란드전에서 파블류첸코의 첫 골을 도운 것은 32세의 주장 세르게이 세마크였다. 97년부터 러시아대표팀이었던 그는 히딩크 부임 이후 한 번도 대표팀에 소집되지 못했지만 유로 2008 대회를 앞두고 히딩크는 갑자기 세마크를 불러서 주장으로 임명했다. 그래서 히딩크는 권위도 세울 수 있었고 돌아온 노장으로 인해 팀의 실력도 안정되었으며 세마크의 플레이 역시 히딩크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이와 놀라울 정도로 비슷한 경우가 바로 2002년 월드컵 직전에 당시 한국을 대표하던 스타 홍명보를 갑자기 불러들인 것이다. 그 전까지 히딩크는 여론의 거대한 압박에도 홍명보를 거부했었고 홍명보 자신 역시 월드컵과는 인연이 없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대표팀에 불려온 후 예상밖의 기쁨에 어쩔 줄을 모르면서 히딩크에게 감사를 표했다. 히딩크 역시 장기간 대표팀을 떠나 있던 그를 냉대하지 않으면서 그를 주장에 임명했다. 바로 홍명보가 수비라인에 있었기 때문에 한국팀은 월드컵에서 더욱 높이 올라갈 수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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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포츠뉴스 브랜드테마] - 홍준명의 소림족구. 중국을 알자! 공한증의 나라 중국 네티즌들의 반응을 재미있게 포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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