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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즈 업 V] 우물 안의 개구리, 한국여자배구

기사입력 2008.05.25 13:30 / 기사수정 2008.05.25 13:30

조영준 기자



[엑스포츠뉴스=조영준 기자] 25일, 일본 도쿄메트로폴리탄체육관에서 벌어진 대한민국과 도미니카공화국의 올림픽예선전 마지막경기에서 한국은 전날 카자흐스탄 전에서 드러낸 총체적인 난제를 그대로 노출하며 도미나카에 1-3으로 패했습니다. 

2008 베이징 올림픽 출전이 거의 무산된 지금, 한국 여자배구는 가장 위험한 순간에 놓여 있습니다. 불과 얼마 전에, FA였던 한송이가 흥국생명과 계약을 맺으며 1억 5천만 원이라는 남녀배구선수 통틀어 가장 많은 금액을 받는 선수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국내리그의 이러한 거품은 국제대회에서 고스란히 나타나고 있습니다. 겨우 5개의 팀으로 7라운드에 걸치는 기나긴 경기를 벌이는 국가의 국제대회 성적은 날이 갈수록 곤두박질치고 있습니다.

국내리그의 흥행으로 한국배구의 중흥을 이끌어내겠다는 풍토는 앞뒤가 맞지 않는 얘기입니다. 그저 5개의 팀에 얼마 안 되는 선수들로 구성된 한국 V리그만을 가지고 어떻게 배구의 중흥을 일으킬 수 있을까요?

그저 자국의 리그에 초점을 맞출 것이 아니라 배구의 전체적인 풍토를 생각해야 하고 선수층을 보다 넓히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한 일입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필요한 유망주발굴과 배구 유소년 층의 확대는 생각하지도 않고 그저 몇몇 유명선수들만 자기 팀으로 영입하려고 하는 근시안적인 행정만이 한국배구 계에 지속적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배구선수들의 몸값이 높아져야 더욱 많은 유망주가 배구를 하려고 몰려들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단지 특정선수들에게 몸값을 올려주는 것보다 전체적인 선수들이 안심하고 오랫동안 운동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게 무엇보다 시급합니다.

한송이가 FA로 대박 계약을 따내는 동안 이번에 함께 FA로 풀린 몇몇 선수들은 구단과 재계약에도 실패하고 불러주는 구단들도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은퇴를 결정해야 했습니다. 더 많은 선수를 위한 것이 아닌 특정 선수에만 국한된 FA의 모순은 20대 중반이 되면 자연스럽게 은퇴절차를 밟는 한국 여자배구의 안 좋은 풍토를 만들어 냈습니다.

어린 선수들이 계속 프로팀에 영입이 되지만 적은 구단 수로 인해 차마 가능성을 펼쳐보지도 못하고 배구를 접는 젊은 선수들도 적지 않습니다. 이렇다 보니 가뜩이나 부실한 선수층은 더욱 얇아지고 팀의 주전을 맡고 있는 선수들은 그저 대장정의 V리그를 처음부터 끝까지 책임지며 뛰어야 합니다.

이렇게 혹사당하는 선수들을 위한 배려가 나름대로 있다고 각 구단들은 해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번 올림픽예선전에 결국 뛰지 못한 김연경과 황연주(이상 흥국생명)는 지난 2007~2008 V리그에서 재활이 덜 된 상태에서 초반부터 무리하게 시합에 투입됐습니다.

그리고 기나긴 레이스 동안 상당히 많은 팀 공격을 책임지며 무수한 점프와 스파이크를 감행했고 결국, GS 칼텍스와의 최종 챔피언결정전에서 이들은 체력적인 부담과 부상의 여파 때문에 100%의 기량을 발휘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김연경은 프로에 입단한 3년 동안 세 번 연속으로 큰 무릎수술을 받았으며 황연주 역시 양쪽 무릎 모두를 수술받는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면서도 황연주가 구단관계자와 무단으로 태릉선수촌에서 이탈했을 때, 황연주의 소속 구단은 ‘선수의 보호를 위해 어쩔 수 없었다.’라고 입장을 발표했습니다. 과연 재활이 덜된 황연주를 1라운드부터 무리시켜 출장시킨 구단 측이 국가대표에 합류한 황연주를 위해서 이런 말을 할 형평성이 얼마나 있을까요.

가장 중요한 올림픽을 앞두고 선수들을 이렇게 관리한 곳은 한국 이외엔 없었을 것입니다. 일본 측에서도 한국의 최고 에이스인 김연경이 어떻게 가장 중요한 대회에서 빠졌느냐며 한참이나 믿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던 것은 이번 올림픽예선전에 참가한 모든 국가들에겐 극히 상식적인 생각입니다.

여러 가지 문제로 인한 선수층의 열악, 그것으로 인해 주전선수들의 혹사가 불가피한 경기운영, 또한 이러한 엷은 한국배구계층을 염두에 두지 않고 무리한 프로리그 일정을 만들어낸 연맹의 문제 등이 카자흐스탄에 완패하는 수치를 낳고야 말았습니다.

국내에 배구의 프로화가 출범하고 나름대로 입지를 다지면서 연맹과 각 구단들은 여기에 상당히 의미를 두고 있는 것 같지만  지금 여자프로 경기가 그나마 관심을 얻고 있는 것은 남자리그와 함께 병행되면서 운영되는 점이 큽니다. 만약 지금의 상태에서 여자배구가 따로 독립해서 리그를 가진다면 경기장을 찾을 팬들은 정말 드물 것입니다.

한국 여자배구의 미래에 조금이라도 빛이 보이려면 국내리그에만 국한된 운영안과 구단들의 지나친 이기주의를 버리고 중, 고등학교에서부터 프로에 이르기까지 여자배구선수들에 대한 폭넓은 시선을 가지고 최상의 국가대표를 만들기 위해 체계적으로 노력해야 합니다.

몇몇 선수들에게 거액을 안겨주는 것만이 여자배구의 활로를 찾아가는 길이 아닙니다. 서른 넘어서도 꾸준하게 선수활동을 할 수 있는 선수들이 점점 늘어나야 그것이 진정으로 성공한 리그입니다. 여기에 국제대회에도 꾸준히 참가해서 많은 경험을 쌓고 좋은 성적을 내는 것이 여자배구가 살 수 있는 길입니다.

그동안 국내리그에서 통해왔던 플레이는 국제무대에서 경쟁력이 되지 않고 있습니다. 아무리 주전선수들이 대거 빠진 한국팀이라지만 그야말로 좁은 국내리그에서만 우물 안 개구리 배구를 했던 한국 여자배구는 지금 혹독한 시련을 겪고 있습니다.

5개 팀이 존재하는 국내리그에서 여러 번 우승했다고 한국 여자배구가 흥행이 일어나고 팬들이 관심을 가져주길 바란다면 그것은 배구 팬들에게 바랄 수 없는 기대입니다. 선수 본인들의 기량 향상을 위해서라도 국제대회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일본 여자배구가 자국 팬들에게 절대적인 사랑을 받은 것은 결코 일본의 프리미어리그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바로 일본배구 계가 치밀하게 완성해낸 조직력이 강한 일본 국가대표팀이 세계의 강호들과 선전을 벌이며 재미있는 시합을 많이 했기에 지금과 같은 관심과 사랑을 불러 모을 수 있었습니다.

만약 국가대표팀의 중요성을 외면하고 금전적인 수입이 들어오는 프로팀의 경기에만 매진하는 풍토를 보여준다면 한국 여자배구를 외면하는 팬들은 점차 늘어만 갈 것입니다.

[사진 (C) 한국배구연맹]



조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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