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최종편집일 2024-11-24 2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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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이박스] FA컵을 향한 세 가지 바람

기사입력 2008.05.23 14:07 / 기사수정 2008.05.23 14:07

전성호 기자

[엑스포츠뉴스=전성호 기자] 21일 열린 2008 하나은행 FA컵 32강에서도 어김없이 이변이 연출됐다.

K-리그 팀인 FC서울, 인천유나이티드, 대전시티즌, 제주유나이티드가 N-리그(실업리그)와 U-리그(대학리그) 팀들에게 고배를 마신 것이다. 해당 팀 팬이나 서포터즈들이야 속이 뒤집힐 일이지만, 제3자나 일반 축구팬들은 이런 이변에 FA컵 토너먼트만의 재미를 느낀다. 또한, 라이벌은 떨어졌지만 자신들은 16강에 진출한 팀 역시 기쁨 두 배다.

수원팬들에겐 서울의 패배가 얼마나 달콤할 것이며 연세대학교 팬들은 고려대학교의 16강 탈락이 얼마나 고소할까! 그리고 만약 연세대가 FA컵 우승이라도 차지하는 날에는 엄청난 반향과 함께 꽤 복잡한 문제(AFC 챔피언스리그 출전!)가 생길 것이다.

이처럼 FA컵 대회는 많은 화젯거리를 주는 동시에 2000년 프랑스 '칼레의 기적'이나 2008년 잉글랜드 FA컵에서 2부리그 반슬리가 리버풀과 첼시를 연달아 꺾은 것과 같은 감동을 선사해 줄 수 있다. 그러나 우리의 FA컵을 바라보면서 이런 흥분과 기대보다는 아쉬움이 더 깊게 남는 것은 어쩔 수 없다.



21일 울산종합운동장에서 열린 '2008 하나은행 FA컵 전국축구선수권대회' 32강전 울산 현대미포조선과 천안시청의 경기 (c) 엑스포츠뉴스 김금석 기자  

대회의 권위, 사전 홍보의 부족

21일 오후, 고양KB와 FC서울과의 FA컵 32강 경기가 있을 고양 종합운동장으로 이어지는 일산 신도시의 가장 큰 도로에서조차 FA컵을 알리는 그 흔한 현수막이나 광고물 하나 보이지 않았다. 경기장 앞에 도착해서야 경기장 앞 사거리에 초라하게 걸린 현수막 두 장을 겨우 발견할 수 있었다. 경기장 안쪽은 피치에서 선수들이 나누는 소리까지 들릴 정도로 한산했다.

이 날 경기가 끝나고 1,600여 발의 불꽃축제가 벌어졌다. 밤하늘에 수놓아지는 불꽃을 보면서 저 돈으로 (어차피 무료입장인 경기의) '무료초대권'과 홍보물을 찍어내 대대적인 홍보를 벌여 수만 명의 시민에게 K-리그와 N-리그 강팀 간의 대결을 보여주는 것이 1천 명 남짓한 사람들에게 이렇게 썰렁하고 허무한 분위기의 불꽃놀이를 보여주는 것보다 훨씬 낫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프라인뿐 아니라 온라인에서의 홍보도 마찬가지였다. FA컵의 주최측인 대한축구협회는 홈페이지에 FA컵 32강에 대한 프리뷰나 기사 몇 개를 올려놓았지만, 그게 전부였다. 축구협회가 96년에 FA컵을 개최한 이래로 지금까지 대회 홍보를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였는지 잘 모르겠다. 올해만 놓고 보더라도 어떤 미디어 형태로든 FA컵 대회의 광고를 본 적이 없다.

언론에선 그다지 관심을 보이지 않았고 TV중계 또한 실현시키지 못했다. 대한축구협회 2008년도 예산안에서 FA컵을 포함한 K3리그, U-리그 등 국내 대회 개최 비용에 46억원이 투입될 것이라고 밝혔는데, 이 예산 중에 대회 홍보와 관련된 비용이 있었을지 의문이다.

구단 홈페이지에 FA컵에 대해 프리뷰를 올리거나 경기에 대한 광고를 한 K-리그 구단은 다섯 팀에 불과했다. 심지어는 다음 경기 일정이 수요일 FA컵 경기가 아닌 주말 K-리그 경기로 되어 있는 구단도 많았다. 그만큼 K-리그 팀들조차 FA컵에 대해선 무관심했다. N-리그 구단들은 말할 것도 없었다. FA컵은 프로와 아마추어가 모두 참가하며, 우승팀에게는 AFC챔피언스리그 출전 티켓이 주어지는 대한민국 최대 규모의 축구대회이다. 그럼에도, 이렇게 대회참가자들조차 무관심하다는 것은 그만큼 대회의 권위가 없는 것이다. 

FA컵의 권위는 대회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축구협회 스스로가 만들어가는 것이다. 대회의 권위는 임원 한 두 명이 경기장에 찾아 경기시작 전 선수들과 악수 몇 번 나눈다고 생기는 것이 아니라, 협회 스스로 대회에 가치를 부여해주고 대회의 부흥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보일 때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이다.

경기 방식의 문제

FA컵의 묘미는 당연히 약팀이 강팀을, 특히 하부리그 팀이 상위리그 팀을 잡는 것이다. 현행 FA컵의 8강까지는 전후반 무승부일 경우 연장없이 바로 승부차기로 들어가는 규칙은 이러한 가능성을 극대화시켜준다. 이는 21일 경기에서 K-리그 세 팀이 승부차기로 하부리그 팀들에게 패배했던 것을 봐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 때문인지 상대적으로 전력이 떨어지는 하부리그 팀들은 소극적이고 수비적인 전술을 취하는 동시에 극도의 시간끌기를 보여주었다. 수원삼성과 노원험멜의 경기에서는 노원의 퇴장당한 선수가 나머지 선수들을 모아 화이팅까지 외치고 나가며 시간을 끄는 진풍경을 보여줬고 골키퍼가 골킥으로 시간을 끌다가 경고를 받자 나머지 선수들이 돌아가며 골킥을 대신 차며 시간을 끌었다.

FC서울과 고양KB의 경기도 마찬가지였다. 선제골을 넣은 고양 선수들은 약간의 접촉에도 쓰러져 일어날 줄 모르다가 그라운드 바깥으로 실려 나가면 어느새 벌떡 일어나 그라운드로 돌아왔다. 동점이 된 이후에도 골키퍼는 공을 잡으면 굳이 반대편 페널티 에어리어 끝까지 천천히 걸어가서 골킥을 찼다. 정신력과 패기를 앞세워 K-리그 팀들보다 한 걸음 더 뛰면서 승리하려는 태도가 아니라 승부차기로 운 좋게 '대박'을 얻으려는 자세었다.

수원의 차범근 감독의 말처럼 이런 축구는 팬들이 원하는 것이 아니다. 최근 K-리그에서도 시간 끌기 등에 엄격한 인저리 타임을 적용하며 팬들에게 즐거움를 선사하려고 하는데 축구협회가 주관하는 FA컵이 이런 후진적인 축구를 보여서야 되겠는가.

따라서 지금의 제도를 개선해 연장전 제도를 도입하거나 외국의 경우처럼 무승부시 어웨이 경기를 펼친 팀의 홈에서 다음 경기를 치르는 방식을 채택해야 한다. FA컵이 권위 있고 팬들에게 사랑받는 대회가 되기 위해서는 본선무대의 질을 관리하는 것도 중요하다.

일정과 참가팀의 문제

FA컵 32강전에서는 하부리그 팀들에게 홈 어드밴티지를 부여했다. 즉 K-리그 팀이 N-리그 팀이나 U-리그 팀을 만나면 후자에게 홈경기 개최권을 주는 방식이었다. 그런데 연세대와 고려대 등 대학팀들은 경기장 문제 등으로 김천운동장을 사용하게 했다.
 
하지만, 서울에 있는 두 대학교의 경기를 경북 김천에서 벌인 것을 홈 어드밴티지라 볼 수 있을까?

물론 여러가지 어려운 점이 많았겠지만, 두 대학 학생들이 비교적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목동운동장이나 상암보조구장, 잠실보조구장 등에서 경기를 가질 수 있게 했었다면 어땠을지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5월에는 각 대학의 축제가 많이 벌어진다. 만약 대전시티즌:연세대와 전북현대:고려대의 경기를 서울에서 치르고 이들 경기를 각 대학의 축제와 연계시켰다면 얼마나 많은 잠재적 축구팬들이 학교 응원단과 함께 FA컵을 즐길 수 있었을까?

더 근본적으로는 대학팀들이 학교 내 경기장에서 홈경기를 치를 수 있게 잔디구장이나 선수대기실을 갖추도록 축구협회가 지원해 준다면 더욱 좋을 것이다. 이는 올해부터 시범적으로 실시되는 U-리그의 정착에도 도움을 주고 더 많은 축구 경기를 대학 내에서 치를 수 있게 해줌으로써 대학 캠퍼스에 축구가 하나의 '문화생활'로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해준다는 점에서도 한국 축구의 발전에 장기적으로 도움이 될 것이다.
 
또한, FA컵에는 너무 적은 숫자의 팀이 출전하고 있다. 현행 FA컵의 출전자격은 K-리그 14개팀, N-리그 14개팀, K3 상위 5개팀, 대학 5개팀, 일반인이 참가하는 대회 우승팀 2팀에게 주어진다. 그러나 사실 FA컵이란 말 그대로 축구협회가 개최하는 대회이고 그렇다면 축구협회에 등록된 모든 팀에게 뛸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 이치에 맞는 것 아닌가?

FIFA 월드컵은 FIFA에 속한 모든 국가가 의지만 있다면 예선에 참가할 수 있다. 하지만, FA컵에는 K3팀들조차 자유롭게 출전하지 못하고 있다. 물론 대회 일정과 현실상 대회 참가를 원하는 모든 팀들이 예선을 치르기엔 축구협회의 예산이 부족할 수도 있다. 그러나 FA컵이 대한민국의 축구 산업화와 축구 열기에 가장 큰 보탬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그 어떤 예산보다도 먼저 투입해야 할 곳이 바로 이곳이 아니겠는가.

국내 축구팬은 K-리그와 N-리그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고교팀, 대학팀, K3팀, 심지어는 동네의 동호인축구팀에도 팬은 존재한다. 이런 팬들까지도 FA컵이 모두 아우를 수 있도록 축구협회는 현재 제한적으로 출전을 허용하고 있는 FA컵에 훨씬 더 많은 팀이 예선부터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자신들이 응원하는 팀이 출전하여 평소에는 생각도 할 수 없던 상위리그의 강팀들과의 경기를 갖고 더 나아가 승리를 거둘 수 있다는 것은 FA컵에 대한 관심을 폭발적으로 증대시킬 수 있는 FA컵 만의 매력이 될 수 있다.

FA컵의 예선 일정을 늘려 세미프로인 K3리그팀 전부가 참여할 수 있도록 하고, 마찬가지로 세미프로나 다름없는 대학팀과 동호인 축구 클럽의 출전 자격을 확대하며, 2001~2002년에 잠깐 시행했던 고교랭킹 1~3위 팀에게 출전 자격을 주던 방식을 다시 한번 시행해보는 것을 생각해볼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강릉제일고-강릉상고의 라이벌전이 단오제가 아닌 FA컵 예선에도 일어난다면 큰 화제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 리버풀과 첼시를 연달아 누르고 잉글랜드 FA컵 4강에 오른 반슬리. 

마치면서

축구협회는 매년 우리나라 축구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한다). 이를 위해 가장 선행될 것 중 하나는 국가대표팀을 제외한 국내 축구에 대한 팬들의 관심을 높이는 것이다. 만약 축구협회가 국내에 축구 붐을 일으키고 싶다면, 가장 먼저 할 수 있는 작업이 바로 FA컵이다. 자신들이 주최하면서 단기간에 적은 노력을 가지고도 팬들의 관심을 동시다발적으로 끌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동네 축구 동호회 팀과 수원삼성과의 한판 승부, 고려대 응원단과 연세대 응원단이 프로팀 서포터즈들과 대등하게 맞서는 모습. K-리그의 FC서울과 K3의 서울 유나이티드가 잠실주경기장에서 벌이는 서울 더비 매치. 이런 즐거움은 FA컵이 아니면 결코 누릴 수 없는 기회가 아닌가. 축구를 우리 생활과 더 밀접한 곳으로 끌어내리고 모두에게 흥미를 제공할 수 있는 경기를 제공할 수 있도록 FA컵이 더 발전적인 구상 속에서 치러질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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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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